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
이용한 지음, 심병우 외 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10여년 전만해도 오지가 아닌 평범한 농촌이나 산촌, 어촌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 꼼꼼히 국토의 구석구석을 뒤져서야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사진을 볼때마다 새록새록 솟아나는 그리움들. 그 그리움은 항상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겹쳐져 있다. 그래서 그리움은 주름잡힌 늙은 손의, 그러나 아픈 배를 살살 문질러 주시던 그 손의 애절함과 함께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론 수동 탈곡기인 호롱기의 사진이 가슴에 남는다. 외할아버지께서 지게로 짊어지고 논으로 가져간 그 탈곡기를 발로 밟으며 돌리면서 털어내는 낟알들. 아직 어렸을때라 볏대를 잡고 있는 손에 자꾸 탈곡기로 빨려가 애를 먹으면서도 도움이 되겠다며 (실은 굉장히 재미었어하며 ) 1,2시간을 땀을 뻘뻘 흘리며 버티던 생각이 난다. 해가 저뭇저뭇 기울어가면 다시 그 무거운 호롱기를 지게에 짊어지시고 외할아버지가 구부렁 논길을 걸어가시면 난 졸레졸레 뒤를 따라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뚝뚝한 외할아버지는 농기구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간혹 시키셨는데 사투리에다 한번도 보지 못한 기구들이라 실수를 자주했다. 그러면 고등학생이나 된 녀석이 그것 하나 모른다며 꾸지람을 해대셨는데 뭐라 항변도 못하고 그저 몇번씩 눈치를 보며 발품만 팔았어야 했다. 이렇게 사진 하나에 추억 하나를 떠올리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모든 장면장면이 구수한 옛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이런 옛이야기 말고도 이 책이 주는 선물은 우리가 편리함을 찾다 버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우리가 왜 그런 불편을 참으며 살아왔는가 하며 현재의 문명에 대해 감사의 마음도 간혹 갖긴 하지만-그래서 이 책은 굉장히 감성적인듯 하면서도 정직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놓쳐버린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갯벌과 뒷간에 관련된 것들이다. 갯벌이 사라지면서 갯생명도, 그것을 밭으로 알고 살아가던 사람들도, 그리고 바다로 들어가는 물의 정화력도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것. 뒷간이 사라지면서 논이 죽고, 메뚜기가 죽고, 사람이 죽어가는 것.

불편하지만 지켜가야 하는 것이 분명 있다. 헉헉 거리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들을 찾아내 생명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이 사진책은 그러한 숨 불어넣기에 대한 감성을 충분히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들이 새록새록 솟아나 이것이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에 숨을 줄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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