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이 지구의 동식물들 중에서 미루는 것을 발명한 것은 인간뿐이다. (P141)

 

아마도 류시화는 미루지 말자는 뜻에서 이 말을 했을 것이다. 책 속의 기억으론 한 마을 사람들이 순례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각자 핑계를 대다 결국 나치들에 의해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후회를 했다는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맞다. 인간만이 미룬다. 인간만이 어떤 목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정해놓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럼 시간에 구속받지 않고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삶을 산다면... 그렇다, 아무것도 미루는 것은 없을 것이다. 무엇인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산꼭대기로 바위를 끌고 올라가야만 하는 시지푸스와 같은 인간. 바위를 바다에 던져버려라. 그리고 맨 손으로 산으로 오르라. 거기서 바위가 빠진 바다를 내려다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바위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미룸은 그래서 우리에게 한줌의 휴식을 준다. 결국 바다에 빠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바위를 짊어져야 할 사람들에게 땀을 씻을 한 줌의 휴식이 어찌보면 미룸이다.

난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내일 하리라. 지금 당장은 그저 눕고 싶다. 바위마저 버려버리고 싶지만 그건 아직 내가 이룰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떠밀지만 말아다오. 난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니. 지금은 그저 쉬고 싶은뿐이니. 아직 그것은 나에게 절실함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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