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엔리오 모리꼬네 음악. 실은 이 두사람이면 영화를 볼 가치가 충분하지가 않나? 더더군다나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이 말하듯이 음악에 관련된 영화라면 모리꼬네의 실력이 여실없이 드러날 것이고.
주인공 나인틴 헌드레이드(1900년에 태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는 여객선 무도회장 피아노위에 버려져 있다 배의 석탄꾼에게 발견된다. 그리고 평생을 배에서 피아노를 치며 지낸다. 누구한테 한번도 배우지 않았던 피아노이지만 8살(?)때 그냥 아름답게 친다. 30이 넘은 나이에 딱 한번 뭍으로 발을 내디디려 하지만 끝내 다시 발길을 돌려 배로 돌아온다. 그리고 배가 폭파되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재즈를 만들었다며 기고만장해 있는 피아니스트와의 피아노 연주 대결이다. 서부시대 건맨들의 총싸움이나 춘추전국시대 칼잡이들의 대결같이 목숨을 걸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 흥미진진하다.
실은 이 대결이라는 것이 도시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끝없이 자기 확장을 해야만 하는 도시 말이다) 영화 전체를 흐르는 바다와 도시의 대조. 가장 인상적인 화면은 뉴욕의 고층빌딩을 뒷 배경으로 배 위에 혼자 남은 주인공이 깡통을 차며 나아가는 장면이었다. 그의 쓸쓸함이 고층빌딩의 불빛으로 인해 더 적막감을 드러낸다.
항상 바다위에 떠 있으면서 바다의 소리(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는 격려의 소리다)를 듣기 위해 뭍으로 오르려 했던 주인공은 끝없는 도시의 풍경에 짓눌려 끝내 되돌아선다. 도대체 도시의 끝은 어디인가? 배위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가 희망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그 희망의 소리 '아메리카'를 외친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희망을 찾았는가? 그렇다면 왜 또 다시 배에 오르는가?
영화는 마치 조용필의 <꿈>이라는 노래를 옮겨놓은 것 같다.
빌딩숲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본다.
이셋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영화속에선 한번도 도시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지만 그 보이지 않는 풍경은 이 노래가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