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내리실겁니까"
"아... 네..."
시내버스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곤혹스러워 하신다. 버스 뒷문이 열린지 한참이 됐는데도 어르신은 내리지를 못하고 연신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계신다. 하지만 단말기는 고장이 난 상태. 어르신은 한참을 단말기와 씨름하며 그렇게 서 계시고 있었던 것이다.
출입문 바로 뒷좌석의 남자가 보다못해 한마디 건넨다.
"이쪽이요"
다른 쪽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대라고 알려주니, 그제서야 어르신은 카드를 대고 급히 버스에서 내리신다. 그때 버스 문은 닫힐 뻔했다. 그냥 출발할 태세였다.
사람들은 가끔 실패 속에 갇혀 살 때가 있다. 빨리 다른 방법을 택하거나 다른 길을 걸어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그 한가지 방법만을 고집하다 낭패를 당하곤 한다. 아니면 실패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하던 일을 되풀이 하고만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말이다.
버스에서 전전긍긍했던 어르신은 단말기가 카드를 읽지 못하자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수십번 카드를 대본다. 하지만 단말기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때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냥 포기하고 내리거나 다른 단말기를 선택하거나. 그냥 계속 카드만 대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해결 될 것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시도하고 있는 일이 무의미하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보통 단말기에는 붉은색 글자와 녹색 글자가 있다. 처리된 금액과 잔액으로 구분되는데 보통 잔액란은 녹색숫자로 시간이 표시된다. 그런데 어르신이 카드를 댔던 단말기는 녹색숫자의 시간 대신에 이상한 영문자가 떠 있고, 붉은색 글자란에도 숫자가 잔뜩 쓰여 있었다. 평소 단말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고장난 것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심코 카드를 단말기에 대고 오르내리다 보니,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지 못했기 때문에 고장난 것이라는 것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되풀이 되는 일상을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다 보면 일상의 어딘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갈 것이다. 아무런 성과없는 또는 보람없는 헛된 시간만이 흘러갈지도 모른다. 잘못된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대체할 수 있는 능력, 또는 빨리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란 평소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그 환경을 유심히 살펴본 사람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단말기가 고장 나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선 단말기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