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공이 "정치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공자는 "백성이 먹을 양식을 충분하게 하고, 국방력을 갖추며,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자공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뺀다면 무엇을 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군대'라고 답했다. 나머지 둘 중 하나를 뺀다면 '양식'이라고 답했다. 즉 정치의 근본은 왕과 백성간의 신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덕여왕이 끝났다. 미실의 죽음 이후 미실에 대적할만한 카리스마가 없어 드라마의 힘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마지막은 장렬했다. 이연걸이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동료들의 희생으로 10보 앞까지 전진한다는 영화 '영웅'을 연상시키는 비담의 최후가 멋드러졌다. 덕만을 연모하면서도 덕만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오해를 한 비담. 그 오해는 전적으로 비담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담의 잘못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그만큼 갖기 어려운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에서 덕만은 백성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 당시 국가의 힘이란 결국 백성의 수와 직결된 것인만큼(군사력 또한 백성이 있어야 가능하고 군사미 또는 식량문제.세금 등을 비롯한 모든 문제가 백성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백성이 국경선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던 시대였다는 점에서) 믿음이 있어야지만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공자도 믿음을 강조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 믿음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요, 100년 1000년 지속되기도 힘든 것이 아니던가. 백성뿐만 아니라 유신과 비담과의 믿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무 하나 옮기면 1000냥을 준다는 믿기 어려운 왕명이 떨어지고 이것을 지킨 백성에게 실제로 1000냥이 주어지면서 임금과 백성간에 신뢰가 생겼다는 고사를 비롯해 많은 옛날 이야기들이 이런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믿음은 항상 설마와 싸운다. 설마는 간혹 사람을 잡는다. 믿음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은 순간 믿음은 설마에게 칼을 겨눌 수 없다. 설마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설마가 문득 머릿속을 차지하는 순간 우리는 믿음이라는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설마를 쫓아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쫓아내는 힘이 또한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과 설마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설마는 간혹 가짜를 물리칠 힘이 되지만 진짜를 멀리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반면 믿음은 때론 가짜에게 속아 넘어가고 진짜를 돈독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믿음이 설마를 완전히 내칠 수 없는 것이리라. 믿음과 설마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사람을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