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킹덤 - The Kingdom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킹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과 미국의 석유기업, 그리고 미국 정부간의 밀약을 바탕으로 구축되어져 온 평화가 모래성과 같이 위태롭다는 것을 살~짝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영화 초반 몇분 사이에 요약되어지고 영화의 대부분은 FBI 요원과 테러집단과의 액션신으로 구성된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이 액션이 주는 긴장감의 밀도에 집중되어져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이건 사회비평 영화가 아니라 액션영화라는 장르의 관습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는 편이다. 게다가 영화가 주는 인상 또한 강렬하다. 특히 마지막 엔딩 장면은 왜 이들간의 평화가 공고하지 못하는 가를 구조적이기 보다는 개개인적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사우디의 외국인 거주지역에서 테러가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이 테러로 FBI 요원이 죽게되고 미국의 동료들은 미국 행정부의 거부의사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역량을 발휘해 사우디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테러를 일으킨 주동자를 밝혀내고 끝내 사살한다.
영화의 시선은 FBI 요원의 관점에서 비쳐진다. 따라서 테러 집단들은 그저 없어져야 할 '악의 축'으로만 비쳐진다. 그러나 이런 불균등한 시점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엔딩의 액션신은 이들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들로, 딸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그리고 FBI와 테러집단과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복수는 대부분 세대를 이어가며 되풀이된다.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문처럼 앙숙은 개인끼리가 아니라 가문끼리의 문제인 것이다. 그 복수의 시발점을 찾다보면 아마 그것은 대의명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대의명분을 바라보는 입장이 서로 반대편에 서 있었기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출발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사회의 어처구니 없는 살인사건들처럼 말이다. 공중전화를 오래 쓴다는 이유로, 주차를 함부로 했다는 이유로, 옆집에서 너무 소란스럽다는 이유로 등등... 아무튼 대의명분에서 부터 발한 앙숙관계라 하더라도 대를 거듭할 수록 그 대의를 잊고 오직 개인적 복수의 시선을 갖게 되는 때가 온다. 영화는 우리가 어떻게 이런 복수의 시선을 갖게 되는지를 엔딩을 통해 보여준다. "꼭 다 죽여버릴 거야"라는 의지만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복수의 순환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킹덤>은 이것까지 말하고 있지는 않다. 다른 영화를 참고하자면 <밀양>에서는 종교에의 귀의를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복수는 그만큼 본능에 가까운 원초적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순환의 끝은 자타 공멸이거나 또는 사회로부터의 이탈일 수밖에 없음에도 말이다. 그렇기에 거꾸로 복수는 개인이 아닌 조직이나 구조적 문제로의 접근을 통해야 할지도 모른다. 두 당사자보다 더 큰 힘을 지닌 자의 중재가 필요한 것이다. 그 중재의 힘이 세대와 세대를 거듭하면 복수의 칼날/총알은 무뎌지기/녹슬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중재에 나설 수 있는 도덕적 중간자들의 집합이다. 일본만화 <침묵의 함대>에서는 핵잠수함이라는 힘을 이용한 중재가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다소 위험한 꿈을 그리고 있다. 비록 무력이 동원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힘있는 중재자를 통해 복수의 고리를 끊고자 한 것이다.
중재자의 힘. <킹덤>은 한번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나선 복수의 순환고리와 그것을 끊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잠깐 생각하게끔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