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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 Old Partn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40년을 함께 한 소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대한민국을 들쑤셨다. 독립영화의 지루함이나 난해함이라는 편견을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KBS의 <인간시대>를 연상케하는 내용과 영화적 재미를 느끼도록 만든 편집과 영상이 어우러져 눈물을 뽑아낸 데에는 이땅의 아버지들이 온몸으로 보여준 헌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 묵묵히 아버지를 견뎌낸 소가 진한 감동을 전한다. 그리고 그 감동이 힘을 얻는 것은 바로 우리의 아버지들이 바로 모든 아들들의 소였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속도에 대해
다큐 속에서는 유독 속도에 대한 은유를 내비치는 영상들이 많다. 할아버지를 태운 수레를 끌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소를 배경으로 그 앞길에선 오토바이가 씽하고 지나간다. 손으로 모내기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논 뒤로 이앙기의 속도는 더욱 빨라보인다. 추수 장면도 마찬가지다. 낫으로 일일이 벼를 베는 할아버지와는 상대도 안되는 빠르기로 콤바인이 지나간다. 할아버지는 넋두리로 "알갱이를 많이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낫으로 베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콤바인의 힘을 빌린다. 그나마 자식들의 성의라고나 할까. 그렇게 아버지의 속도는 결국 사라져간다.
생명에 대해
그래도 더디가는 걸음 속에선 생명이 살아 숨쉰다. 영화 속 인서트 컷 속에선 생명에 대한 찬가가 엿보인다. 개구리를 비롯해 논에서 살고 있는 생명들의 아름다움은 결코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다. 이것은 모두 할아버지의 고집 덕분이다.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의 참뜻을 보여 주고 있다. 소위 친환경, 유기농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것인지 또한 지켜볼 수 있다. 할머니의 한탄과 볼멘소리가 결코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할아버지의 고집이 더더욱 존경스러워진다.
삶에 대해
토사구팽.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버려지는 법. 자식들은 할아버지에게 다 늙어 소용없는 소를 팔라고 한다. 물론 토사구팽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가 불편한 몸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안쓰러워서였다. 소가 없으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구동성으로 소를 팔라 한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땅의 아버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오직 그것만이 전부라고 배웠으니까. 그럼, 아버지들의 피와 살을 먹고 자란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우직했던 소의 눈물을 흘리고 싶진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떠나는 길, 웃으며 갈 수 있는 그런 삶을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닐까. 실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 생명이요 느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헌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