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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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되어버린 실화에는 감추어진 것들이 많다. 필사의 과정에서도 수많은 오탈자로 뜻의 변화가 발생하는데 구전의 과정에선 오죽하겠는가. 특히 시대의 영웅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 덧붙여지는 것과 제외되는 것들로 인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일본 에도 시대 아코 무사 47명의 충혼에 대한 이야기는 <가나데혼 주신구라>라는 이름으로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사랑받는 작품이다. 자신들이 모시던 주군의 원한을 갚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충성심은 회자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발단이 된 사건에 대해선 정확하게 전해진 것이 없다. 오직 연극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추측될 뿐이다. 그러나 그런 추측들은 충성심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일 수밖에 없다.  

소설 <흔들리는 바위>는 아코 무사들이 죽은 후 100년이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갑작스레 유아살해라는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아살해와 아코 무사와의 관계가 도대체 이어질 것 같지 않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뜻밖의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  

유아살해라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인물은 오하쓰라는 처녀와 우쿄노스케라는 젊은이다. 오하쓰는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마음이 남아있는 곳에서 과거를 볼 수 있고, 사령 즉 유령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쿄노스케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학에 재능을 가진 심약한 젊은이로 논리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이 둘은 유령이 씌운 사람이 유아살해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게되고 그 유령의 억울함이 아코 무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밝힌다.  

책은 판타지와 추리, 활극이 잘 버무려져 읽는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진중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예외없는 절대명령으로 인한 희생, 집단에 따라야만 하는 개인의 희생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미야베 미유키는 아코 무사의 이야기의 발단이 한 무사의 정신착란으로 인해 벌어졌을 때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영토 안에서 칼부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명령이 정신착란 무사로 인해 어겨졌다. 무사는 할복을 명령받고, 칼부림의 대상이 됐던 무사 또한 피해를 입는다. 칼부림을 했던 무사가 정신착란이었음을 번주가 인정만 했더라도 상관 없지만, 그것을 묻어둠으로 인해 무사의 부하들은 할복한 주인을 위해 상대를 베어야만 한다. 그 시대는 그랬다. 이 부조리를 모른 사람이야 충절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겠지만 전후사정을 알고 난 무사들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영지 내에서 생명을 죽이는 일을 절대 금한 곳이 있었다. 명령 자체는 훌륭해 보인다. 그런데 들개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촌민을 구하기 위해 칼을 쓴 무사는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분과 직장을 잃고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게 정당한 대우일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무사의 노력은 결국 억울함으로 인해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절대권력을 지니고 있던 중세 시대에만 벌어지고 있는 일일까. 혹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법이나 명령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지는 않을까. 공중파 방송에서 보여주는 시청자 칼럼이나 여러가지 고발 시사 프로그램들 속에서 우린 중세 못지않은 억울함을 마주치게 된다.  

그 영혼들을 어찌 위로할 수 있을까. 절대라는 단어의 척박함과 견고함이 망령이 되어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섬뜩해지는 세상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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