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천둥
더글라스 보이드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미국 서부의 황량한 사막. 마차는 달리고 그 뒤를 인디언들이 쫓는다. 이때 카우보이 모자를 쓴 보안관이 나타나 총을 쏘아댄다. 인디언들은 하나둘씩 쓰러지고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인디언들은 괜히 사람을 죽이는 야만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인디언들이 점차 원주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말 그대로원래 땅의 주인. 서구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보호 울타리에 갇혀 사는 처량한 신세. 이제 인디언들은 동정의 대상이다.

가엷게 쳐다보던 인디언들이 또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들은 항상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를 내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신비한 대상으로...

이 책은 자칫 이런 신비주의를 부추길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이 진실일망정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여 신비화에 빠져들 수 있는 요소가 여기저기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 이른 사람을 살리고, 원하는 시간에 비를 내리는 것을 읽고나서 누가 이것으 신비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머릿속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계속 추론을 해 나간다. 아마도 이들은 비가 오는 징후를 주위의 동물들이나 공기의 변화로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병자의 치유에 있어 심리적 요인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옛부터 전해받아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신비주의의 위험을 무릎쓰고 필자가 인디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이 삶을 얼마나 신성시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병과 고통 또한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며 왜 그 일이 일어났는가를 깊이 이해하는 일을 중요시 하는 것(P162)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을 따르는 바 고통과 병 또한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또한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기에 나타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그들에게 있어 삶의 모든 것이 성스로운 의식인 것이다.(P362)' 라는 생각으로 표현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경건함으로 가득차 건조한 삶을 살아간 것은 아니다. 삶의 여행을 즐기라는 인디언의 십계명이 말해주듯이 삶은 즐거운 또한 성스러운 여행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현재 우리들의 삶처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잊고 속도에 미쳐서 살아가지 않는다. 무엇인가 결정할 사안이 있으면 적어도 3일동안을 생각한후 결정한다는 그들의 방식은 그래서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얼마나 조급하게 살고 있는가? 그것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의 종착역을 알지도 못하면서 빨리빨리를 위치며 살고 있지 않나?

구르는 천둥과 함께 지내면서 늦어지는 것이란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P160)

그리고 그 때에 이르렀을 때는 행동해야 한다. 어떤 일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개입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해의 핵심이며, 이런 행동이 카르마를 해결한다.

다시 말해 세상이 우리를 즐기도록 하지말고 우리 스스로가 세상을 즐겨야 한다는 것(P137)이다.

세상에 종속되지 않고 삶을 신성시하며 인과의 법칙을 저버리지 않는 행동을 취했을 때 우리는 신비롭게만 여겨지던 인디언의 삶을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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