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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얼굴 - 시드니셀던시리즈 8
시드니 셀던 지음 / 청목(청목사) / 1990년 8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의 매력은 독자가 그 범인을 알아챌 수 있는 충분한 힌트를 주지만 결코 쉽게 그것을 알아내지 못했을 때 갖게되는 흥분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범인이 쉽게 드러나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리송하지도 않은 정도로 그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을 때 추리소설은 그 빛을 발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힌트주기와 딴청피우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적절한 힌트를 줌으로써 범인을 추적하게 만들다가도 갑자기 딴청을 피움으로써 확신이 가던 범인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추리소설이 지녀야 할 미덕인 것이다. 만약 어느 한 쪽이 더 강하게 소설 속에 드러난다면 그 소설은 매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시드니 셀던의 <벌거벗은 얼굴>은 그런 점에서 조금은 추리소설로서의 빛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힌트주기가 딴청피우기보다 과다해 쉽게 범인을 짐작케 하고 게다가 그 결말까지 일사천리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게 만든다. 또한 딴청피우기란 정말로 엄격한 계산하에 이루어져 그 딴청에 독자가 놀아나도록 해야하는 엄밀함이 필요한 것인데 이번 소설 속에선 그 딴청을 딴청으로 쉽게 받아들임으로써 긴장의 강도가 떨어지고 말았다.
즉 범인은 바로 환자와 관계된 가족일 수 있다는 힌트는 금새 누구의 가족인지 알게 만들어버리기에 딴청은 도저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이 자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을 걸 하며 딴청피우는 것은 도리어 딴청피우고 있군 하며 바로 이 놈이 범인이야 하고 가르쳐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책을 읽게 만든건 아마도 주인공과 환자 앤과의 로맨스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기대는 그냥 기대로 남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책을 놓지 못하는 것, 아마도 그게 바로 시드니 셀던이 가지고 있는 글쓰기의 힘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