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3
장정일 지음 / 하늘연못 / 1997년 1월
평점 :
절판


전 편에서 소설이란 그 주인공들의 변이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작가는 이번엔 소설가란 악을 다루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이 의사소통이라면 진정한 의사소통은 악과의 대화를 포기해서 안 된다. 진정한 작가는 문학에게만 유일하게 허여된 그 능력과 특권을 자랑스럽고 고통스레 받아들인다. 악과 의사소통하는 문학, 그것은 이미 유죄이다. 사드나 보들레르가 그랬듯이 문학의 유죄성을 벗겨 줄 것은 시간밖에 없다. (P234)

아마도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책이 가져다 준 고통이 그에게 계속해서 작가의 변을 늘어놓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적 요인에 따라 그는 지금 자신이 다루고 있는 것은 금기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기에 대한 도전은 이 시대의 악일 수밖에 없지만 시대적 악이란 것은 그 시대가 변하면 오히려 선이 될 수도 있다는 뜻에서 절대 악이랄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어찌보면 선구자적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지만 진정한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소설이 가지는 의사소통의 힘은 그 내용에 있지만은 않음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즉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그것의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는냐 하는 형식의 문제도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택한 포르노라는 형식은 이 시대가 그것을 용납치 않기에 선택한 하나의 방편일 수 있는 것이다.

실상 지금까지 소설이나 그 밖의 책을 읽어오면서 그 내용에 온갖 나의 주파수를 맞춰왔지만 형식은 항상 뒷전이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으면서 내용은 결코 형식과 동떨어져 이야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실감케됐다. 포장이 중요해져버린 시대에 가감히 그 포장을 포기하고자 했던 나의 책읽기 습관이 도리어 독이 되어버린 것임을 실감하며 뒤늦게나마 장르라는 것에 대해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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