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끝나갈 때면 노오란 은행잎을 비롯해 오색의 단풍잎들이 땅바닥에 나뒹군다. 길을 걷다 그 화려한 색에 놀라 단풍을 하나 집어들어 책사이에 끼워 놓기도 한다. 그 아름다움이 그냥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일 터이다. 단풍은 그렇게 찬란했을 때 땅에 떨어지는 걸로만 알았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요즈음. 산을 오르다 갑자기 낙엽이 되지않고 끈질기게 가지에 매달리고 있는 나뭇잎을 보게됐다. 단풍나무의 그 화려한 잎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졌고 칙칙한 갈색의 쪼그라든 잎들만이 처량하게 매달려 있었다. 단풍의 색을 유지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색을 다 잃어버리면서도 가지에 매달려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추레한 그 잎은 탐욕에 대한 깨우침을 준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야 했음에도 기어코 자리를 지키려 한 그 잎의 욕망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듯했다. 퇴색의 끝자락까지 버텨보았자 그것은 안타까움조차 자아내지 못한다.

단풍나무 옆엔 소나무가 그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솔잎은 어떻게 독야청정할 수 있을까. 솔잎은 보통 2~3년에 한번씩 물갈이를 한다고 한다. 즉 솔잎 또한 낙엽이 되고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솔잎이 나오는 것이다. 그 순환의 물결이 푸루름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솔잎이 말해주는 청정한 마음이다.

퇴색은 누구나가 겪어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퇴색이 주는 초라함에서 벗어나 청청하고 맑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변화시키는 자세에 있다.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언제나 젊은 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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