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닥에 탐닉한다 작은 탐닉 시리즈 8
천경환 지음 / 갤리온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사진은 몇분의 1초에서 몇천분의 1초까지 찰나의 순간을 담는다. 그 찰나는 온전히 빛이 주는 세상이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빛 속에서 눈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풍경 속에는 일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 비쳐지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몇백년 몇천년이고 굳건하고 묵직하게 버텨내고 있을 것 같은 바닥을 통해 빛이 주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지하철 철로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 찬겨울 유리창에 반사된 빛이 바닥에 드리운 빛의 찬가, 지하철 통로의 타일에 부닥친 빛이 어그러진 모습, 유럽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벽과 바닥에 흩뿌려진 아리따운 햇빛 등등. 바닥에 드리워진 빛의 찬가와 함께 바닥 그 자체에 탐닉하고 있는 저자의 눈초리가 매섭다.

건축가인 저자는 건축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바닥이 갖는 의미에 탐닉하고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 전해주는 빛의 향연 속에서 삶을 생각한다. 그것은 낯섬이 주는 깨우침이다.

현대미술이 감상자에게 던지고자 하는 감흥의 본질은 낯섦일 것이리라.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여준다는 것.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예술은 새로운 생각거리, 고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많은 예술가들이 누가 더 낯익은 풍경을 낯선 풍경으로 잘 포장해 내느냐를 놓고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96쪽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상으로부터 나오는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낯설고 신비스러운 풍경,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가는 인식의 과정이 머릿속 엔진을 재시동하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그래서 내게는 무척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된다. 104쪽 

 

일상은 매우 지루할 듯하고 매일 지나치는 길은 그 일상을 더욱 지루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오늘 걷고 또 걷는 그 길 속에서도 빛은 한번도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쏟아져내리지는 않았고 그렇기에 풍경 또한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삶의 길도 마찬가지다. 뚜벅뚜벅 생각없이 걷다보면 일상이라는 이름의 하루하루가 지나갈 뿐이다. 그 속에서 단 한순간의 미묘한 순간을 잡아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눈을 뜨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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