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 구경은 됐다, 신나는 나만의 예술하기!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4
채운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에 대해 정의한다는 것은 경계를 짓고 한정짓는 작업이다. 이런 정의가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위한 방편때문인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상은 경계지어진 그 안에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경계를 뛰어넘으려 한다. 예술에 대한 정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예술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는 순간 그 이외의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은 얼마나 많이 그 의미를 확장해왔는가.

어쨋든 이 책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예술일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얽매이지 않은채 관심을 쏟으며, 이런 과정에서 나는 물론 타인과의 관계가 확장되고, 공감하는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의 확장은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천재란 쉼없이 움직이는 또는 노력하는 사람들일 뿐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듯 말이다. 천재에 대한 찬탄은 자신의 게으름을 감추기 위한 술수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애정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한번 알아보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는 사랑을 매우 흥미롭게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이란 상대방이 방출하는 모든 기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 관심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든 얼굴을 감싸든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걸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저 사람이 피곤한가, 일이 잘 안 됐나,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건가 등등 사랑하는 사람의 몸짓 하나가 우리의 해석 의지를 마구 자극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마치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문헌학자들처럼 사랑하는 이의 몸짓 하나, 말 한마디도 심혈을 기울여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언제나 부지런하다.

예술이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세상과 사랑에 빠진 예술가는 세상이 뿜어내는 기호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한다. 예술은 거창한 어딘가가 아니라 자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건강한 예술은 그러한 삶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예술을 사랑하는 방법은 삶을 사랑하는 방법만큼 많다. 삶과 사랑에 빠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눈부신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랴.(134쪽)

그렇다면 삶을 또는 예술을 행하는 나는 누구일까.

자신이 감지하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만큼이 자신의 세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공명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계는 넓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아 보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밭을 가는 말은 광야를 달리는 말보다는 밭을 가는 소에 가깝고, 들판을 달리는 소는 밭을 가는 소보다는 광야를 달리는 말에 더 가깝다. 그럴진대 소나 말이라는 규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들이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가보다 중요한건,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에 무덤덤한지, 또 무엇을 만나면 기쁘고 무엇을 만나면 슬픈지, 어떤 일을 하면 능력이 커지고 어떤 일을 하면 작아지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지를 아는 일이다. 거미처럼 나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미세한 떨림들을 번개처럼 포착하는 일이다. (208쪽)

결국 살아가는 것도 예술이라는 것도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들에게 다가가, 한없는 애정을 쏟아가며 그 움직임을 타인과 공유, 공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바로 이런 공감능력의 확대를 통해 도달할 수 없는 무한한 것을 지속가능하게 내 손에 닿을 수 있는 무엇인가로 바꿔놓는 일일테다. 그러므로 먼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을 알아채기 위한 마음의 문을 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빗장을 걸어 잠근 사람은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테니.

그런데 그 흔들리지 않은 삶이 바로 깨달음의 세상은 아닐까 하는 우문을 던져본다. 아니면 흔들리고 흔들리는 것들이 마구 뒤섞여 도저히 흔들리지 않은 그 흔들리지 않음일까. 예술인이 광인으로 또는 현인으로 비춰지는 것은 이것의 차이는 아닐련지... 이 책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까지 떠올리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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