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계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조직은 과두체제를 형성한다. 즉 일명 피라미드 구조를 띠고 있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담당자의 수는 줄어들고, 결국 그 직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떨어져나가야 한다.

군대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고 한다. 이때의 줄은 복불복의 줄이다. 앞에도 뒤에도 서지 않는 중간을 형성하는 줄. 그러나 조직에서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한다. 그것이 중간에 떨어질지라도 혹시나 조금이라도 위로 끌어올려줄 수 있다면 썩었더라도 상관없다. 만약 그것이 튼튼한 동아줄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을 것 같은, 확실한 계급으로 움직일 것 같은 일본 경찰의 조직원들을 그리고 있다. 소위 경찰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경찰이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경찰내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자가 주인공으로 나서고 있다. 경찰이라는 것도 일반 회사와 같아 줄이라는 세력이 형성되어 있고, 그 안에서 갖가지 권력싸움이 생겨난다.

조직내에서 버티려고 하는 자, 올라서려고 하는 자, 남을 짓누르려 하는 자 등등. 아귀다툼은 끝이 없다. 물론 이런 조직의 권력싸움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이 책이 아닌 같은 저자의 다른 책 속에서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주인공인 검시관은 사건 해결에 있어서 인간적 감동을 준다. 사건 해결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한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아는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물론 이 책에서도 인사 담당자의 이런 감성적 측면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러나 오히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선 따듯한 감성보다는 차가운 조직의 논리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같은 조직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가왔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점차 세력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미래의 불투명성과 그것을 헤쳐나갈 방책도 조금은 눈에 보인다. 하지만 그 방책을 위해 해야 할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알 것이며, 이것은 끝없이 개인의 도덕성이나 신념, 가치관과 충돌하게 만든다. 문제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조직의 논리와 자신의 가치관과의 충돌지점.

양자택일의 입장에 처해있다면 당신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물론 이 입장 또한 현재 자신의 개인적 상황을 또다시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또한 조직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조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피라미드의 꼭대기 근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개인과 충돌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조직이라고 하는 거대한 괴물에겐 피가 흐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꼭대기를 향해 질주한다. 피라미드에서의 추락, 또는 도주는 결국 실패자의 모습일까.

그늘의 계절에 한숨을 쉬지않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계속 걸어가다보면 그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을련지, 썩었는지 튼튼한지 모를 줄을 잡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피라미드에서 뛰어내려야 할 것인지. 물론 이런 선택의 결과 또한 자신의 의도대로 결코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생은 역시 알수 없다는 것을 또다시 깨우치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