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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DMZ는 자연의 보고로 알려졌다. 6.25이후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 그래서 뭇생명들이 그 조그만 곳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뢰밭 위에 자연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손길, 발길이 닿지 않음으로써 회복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은 의외로 많다. 폴란드의 비알로비에자 숲은 수령 500년이 넘는 참나무들로 빽빽하다. 하지만 이곳은 과거 철의 장벽이 여전히 남아있어 철조망 사이로 넘나들 수 없는 몸집 큰 동물들은 이동이 제한됨으로써 점차 그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의 모습은 또 어떤가. 강제적으로 추방(? 이주?)된 사람들 덕분에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가 다시 돌아옴으로써 활기를 되찾는다. 물론 이들의 유전자가 어떤 변형을 일으켜 후손들의 변이가 일어날지는 아직 모른다. 또한 동물뿐만 아니라 정부의 눈을 피해 사람들도 조금씩 돌아왔다.
이러한 예들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지구에 가하는 폭력과 살생의 참혹함일 것이다. 인간이 없어진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우니까.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외계인들이 현재의 지구인들을 바라보면 자살하려는 줄 오해하기 십상이라고.
저자는 상상을 해봤다. 정말로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만 송두리째 없어진다면 말이다. 그런 상상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저자는 한국의 DMZ를 비롯해 자연이 숨쉬는 곳은 물론, 도시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인간이 사라진다면 도시 또한 사라질테니 말이다.
도시가 사라진 후의 극명한 모습은 뉴욕을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뉴욕뿐만은 아니다. 지구위에 존재하는 모든 도시가 이와 비숫한 상황이다. 도시는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전기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래서 인간이 사라지면 화석연료의 사용도 없어지고, 전기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뉴욕 지하철의 경우 지하철을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하수구로 뱉어내는 것이 멈추게 됨으로써 반나절이면 물로 넘쳐나게 된다. 아스팔트와 도로 위에 고개를 내밀던 식물들도 득세를 하게 된다. 물은 제 갈길을 찾고 동물들은 빌딩을 은거지로 모여든다. 몇년만 흐르면 빌딩 숲은 생명의 숲으로 변하게 된다. 지붕에 뚫린 주먹만한 구멍 하나만으로도 수십년 후엔 건물이 쓰러진다.
눈길을 과거로 돌려보자. 아프리카엔 하마나 기린, 코끼리 등 거대한 동물이 살고 있다. 하지만 북아메리카에는 덩치 큰 생명은 사라졌다. 물론 예전엔 있었다. 화석이 그 존재를 입증한다. 그런데 왜 사라진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인간의 갑작스런 출연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인류와 함께 거대한 동물이 같이 진화해갔지만 북아메리카에선 갑작스레 인간이 나타나면서 몸집 큰 동물들이 사냥감으로만 여겨져 이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렇게 동물을 죽이는 것은 직접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북아메리카에서만 1년이면 조류가 2억마리가 죽어나간다. 물론 사냥에 의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전깃줄이나 송신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의도하지 않은 살상이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예전에 인류는 자연과 공존해왔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이토록 변해버린 것일까. 저자는 그것을 인간이 포획물 또는 상품이 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즉 노예로 여겨지거나, 근대화 이후 노동력으로 여겨지면서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잉여의 인간들로 잉여의 가치를 얻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착취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착취는 자연에 대한 착취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게 된다.
인간이 세계 곳곳에 도착하면서 지옥이 되어버린다는 마틴의 전격전 이론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인구감소를 그 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누군가는 2억 정도의 인구가 지구와 공존할 수 있는 최대 숫자라고 하지만, 저자는 그정도까지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부부가 1명의 자녀만을 갖도록 하는 출산억제를 통해 차근차근 인구를 줄여나가자고 한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인구는 이미 노동력이자 상품의 힘이고, 또한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출산감소로 애타하는 각국의 정부들을 보라. 그런 정부들에 출산억제를 이야기하면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저자의 해결책이 현실에서 발을 떼고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물론 세계정부가 꾸며져 그 정도의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의 인구로도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억제력 또한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자연은 인간을 위한 자연이 아님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자연을 통해 위안을 얻고 힘을 얻는다는 것도 깨닫는다.
사족
1. 지구에 대한 보호에서도 엇갈린 제안이 있다. 종의 다양성을 확보할 것인가, 생태계 유지라는 기능성 위주의 생명체를 키울 것인가.
2.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바다는 이미 오염되어 있음을 책은 말하고 있다. 바다는 물론 모래사장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엄청난 플라스틱 가루들로 꽉 차 있다고 한다. 그 플라스틱을 버린 곳은 문명국들이지만 실제 피해를 입는 곳은 어떤 곳도 가리지 않는다. 우리가 황사 피해를 입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