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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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진시황은 불멸의 묘약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수고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불멸에 대한 욕망은 진시황만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스트럴드브러그는 불사를 얻었으나 노화는 계속 진행된 종족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티토노스는 신들로부터 영생을 약속받았으나 젊음을 약속받지 못해 백발의 몸으로 부패해가며 삶을 지속한다.

불사, 불멸에 대한 이런 집착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비롯된다. 모든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공포감이 죽음을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용기를 빼앗고,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욕망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죽음이란 것이 꼭 그렇게 피해야만 할 문제일까.

또하나, 만약 당신이 불멸의 힘을 얻었다면 그 긴 생애를 어떻게 지낼지 생각해 보았는가. 과연 진시황은 세계를 제패하고 나서도 죽지않는 삶을 계속 살아야한다면 무슨 일을 하며 보내려 했을까.

소설 두개골의 서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이다. 주인공 일라이는 유대인으로,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대학생이다. 일라이는 자신의 룸메이트 등 친구 세 명과 함께 두개골의 서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두개골의 서는 영생에 대한 기록이다. 네 명이 한 팀을 이루어 사원을 찾아가면 한 명은 나머지 친구들을 위해 자살을 선택하고, 한 명은 나머지 친구를 위해 죽임을 당하는 희생을 통해 나머지 두 명이 영생을 얻는다는 예언서. 일라이는 믿음에 대해 반은 진담, 반은 농담으로 친구들은 함께 여행을 나선다. 친구는 동성애자인 네드와 백인귀족 티모시, 시골 목장에서 자란 자수성가형의 올리버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않은 이 네 명의 친구들이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닿아 상상이라 여겼던 사원을 실제로 접하게 된다. 그리고 두개골의 서가 말한 시험에 돌입하게 된다.

두개골의 서가 말하는 두 명이 나올 때까지 지속되는 수련의 과정. 사원 밭을 갈고, 침묵 수행을 하고, 강의를 듣고... 따분한 일상처럼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그들을 가르치는 수도사들은 작은 체구에 나이를 알 수 없는 외모를 지녔다.

이들은 수련 과정 중 자신의 과거를 고백, 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단, 한 명이 한 명에게만 비밀에 부친 채 가르쳐주는 잘못이다. 그런데 이 고백이 충격적이면서도 또한 평범하다. (그 고백은 스포일러가 될 듯하여 밝히진 못한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일일 수도 있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일로 치부될 수 있는 마음 속의 짐. 그런 것이었다.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짐은 누구나 자신의 발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다. 남의 눈엔 그것이 10키로그램도 5키로그램도 안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자신에게는 100키로그램이 넘는 그런 것일 수 있다.

이 회개와 고백의 과정을 거치면서 두개골의 서의 예언은 완성될 계기를 얻는다. 그리고...

소설은 읽다보면 참 황당무계해 보인다. 영생이란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고, 길을 나설 수 있단 말인가.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믿는거야. 그것밖에는 희망이 없으니까(109쪽)

우리네 삶도 돌아보면 이런 경우가 얼마나 허다하던가.

 

그래서 혹 희망을 발견하게 됐을땐... 그땐 그 희망에 모든 것을 건다. 그것을 위해 내 발도 묶이는 것을 허용한다.

 

복종의 문제지. 복종으로부터 계율을 받아들이게 되고, 계율이 있어서 제어를 할 수 있고, 제어를 해야 육체의 부패를 정복할 힘이 생기는 거야. 복종은 반 엔트로피적인 거야. 엔트로피는 우리의 적이고. (334쪽)

고정된 것으로부터의 탈출구 영생은 인생의 미로에서 벗어날 묘약이 맞을까. 책을 덮고 나면 영생이란 죽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 진짜 영생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그래서 삶의 자유를 최대한 만끽하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영생을 얻은 소설 속 두 주인공의 미래가 우리에게 영생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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