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유인원, 인간을 말하다를 보고 있자니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인간들의 사냥에 죽어간 고릴라 가족과 침팬지, 그리고 남겨진 젖먹이 침팬지의 겁먹은 눈동자. 애완용으로 팔려간다는 그 젖먹이 침팬지는 자신의 어미를 죽인 사냥꾼의 발을 부여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직 따듯한 체온이 필요했기에 옆에 있던 사람의 발이라도 안고 싶었던 것이다. 사냥꾼은 매몰차게 침팬지를 떼어놓으면 낑낑 대고 다시 사냥꾼의 다리에 매달리려 한다. 그 사냥꾼은 소위 같은 하늘아래 함께 살 수 없는 부모의 원수인데도 말이다.
침팬지 새끼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죽어간다. 어미는 아이를 등에 걸쳐놓고 애지중지 먹이도 주고 애정을 주지만 결국 죽고 만다. 하지만 어미는 새끼가 죽은 것도 모르고 끝까지 안고 다닌다. 말라 비틀어진 미라가 되었건만 끝내 새끼를 놓지 않는다.
유인원들의 눈동자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하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괜히 눈물이 솟는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들에게 시련을 안겨준 인간만을 욕할 수는 없다. 숲사냥에 나선 사람들은 호사거리나 취미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냥 이외에는 생존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의 생존방식이 왜 사냥으로 몰리도록 만들었는냐에 있다 하겠다.
밀림이 개발되기 전에도 분명 사냥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이 뚫리고 나무가 베어지기 시작한다. 밀림이 사라지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유인원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개체수가 줄다보니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령이 등장한다. 하지만 토박이 주민들은 예전 그대로의 삶의 방식 이외에는 생존의 방법을 모른다. 사냥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굶어죽는다. 문제의 원인이 개발인 셈이다. 하지만 개발을 포기한다면 국가의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해결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 대안으로서 관광산업으로의 길을 방송은 제시하고 있다. 고릴라나 침팬지의 자연 환경 그대로를 관광상품화하고 현지 주민은 가이드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법.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정부가 부패하고 무능하다면 문제의 해결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 방송에서 이야기하고 있진 않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밀림의 개발이 누구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냐다. 밀림은 대부분 커피와 카카오를 키우기 위해서 사라진다. 커피와 카카오는 기호식품이다. 세계인의 기호식품을 위해 생존의 터전이 사라지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있다. 또한 그 기호식품의 혜택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농장을 소유한 자에게 돌아간다. 내가 먹는 커피 한 잔, 초콜릿 하나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선택인가? 나의 기호식품을 포기함으로써 유인원과 원주민들을 살릴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가. 그렇다고 어느 한국가의 발전을 무시할 수도 없다. 대안은 환경관광국가임을 학잗들이 제시하지만, 과연 그것은 가능한 일인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젖먹이 침팬지의 눈망울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기아와 에이즈로 뼈만 남은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