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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 기후변화, 금융위기, 인간을 이해하는 불확실성의 과학
팀 파머 지음, 박병철 옮김 / 디플롯 / 2024년 10월
평점 :
1. 어렸을 적 일기예보는 내일 '비가 온다', '맑다'와 같이 명확했다. 하지만 자주 틀리는 바람에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기예보에서 확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일 비가 올 확률은 30%입니다. 60% 입니다. 등등.
아니, 도대체 비가 온다는 것이야, 만다는 것이야? 확률로 이야기하는 일기예보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일기예보가 틀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했다. 비가 올 확률이 80% 였음에도 비가 오지 않으면, 나머지 20%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까 말이다.
2. 아니었다. 일기예보에 확률이 등장한 것은 회피의 수단이 아니었다. 앙상블 예측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비로소 가능해진 일이었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기본으로 혼돈기하학이라는 학문이 연구되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선 앙상블 예측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미래란 결코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기에 100% 어떤 일이 발생하기는 어렵다. 소위 나비효과 이론처럼 홍콩에서의 나비 날갯짓 한 번이 북미에서 폭풍우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러가지 변수를 도입해 향후의 변화를 예측하다보면 결코 같은 결과가 계속해서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비가 온다, 안온다가 아니라 비가 올 확률이 몇 %인 것이다.
3. 결정적으로 비가 온다, 안온다가 아니라 확률론적으로 비가 온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일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만약 내일 비가 올 확률이 60%라고 치자. 내일 세차를 할 계획이었다면 이를 밀어붙여야 할까. 취소해야 할까. 이럴 땐 먼저 세차비용과 세차를 했을 때의 만족도의 값(측정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개인별로 다르겠지만 그 다른 값도 좋다)을 정하고, 비용X0.6(비 올 확률)을 해서 이 값이 만족도의 값보다 큰지 작은지를 계산하면 된다. 이 값이 만족도보다 크다면 세차를 안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 값이 작다면 세차를 하는게 좋다.-정확하게 이해하고 예시를 한 것인지 자신은 없다 ^^;;;;
4. 확률을 통해 비용과 효과를 비교 계산함으로써 행동의 여부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앙상블 예측 시스템을 적용한 사례로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국경을 봉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 경우이다. 코로나19 전염이 봉쇄시 퍼지는 속도와 개방시 퍼지는 속도를 예측해 비교하고, 이때 미치는 국가경제적 피해 등을 따져본 것이다.
이 앙상블 예측 시스템은 전염병 사례를 비롯해, 기후위기(앙상블 예측으로는 중립적인 모양새다), 금융위기, 갈등과 전쟁 위기 등의 경우에도 적용 가능하다.
5. 여기에 더해 인간의 뇌의 작용까지도 혼돈기하학의 앙상블 예측의 원리를 도입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창의성이 신경세포의 작용 중 나타나는 일종의 잡음(변수)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창의성 측면에서 인간의 뇌를 뛰어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컴퓨터의 작동에 있어 잡음은 성능 저하를 의미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인간의 뇌에서 더욱 확장해 인간의 삶과 죽음, 어쩌면 신의 영역까지도 혼돈기하학적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다.
6. 솔직히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이 책의 중반부부터 설명되어지는 앙상블 예측 시스템과 혼돈기하학의 원리는 문과생으로 이해하기에는 벅찼다. 반복되어 설명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위에 적은 글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맛은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라는 '타타타' 노래가사와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 사이의 아슬한 줄타기처럼 느껴지는 재미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부처님의 연기법이 생각나기도 한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어떤 사건은 명확한 결과가 예측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사는 모든 일들이 명확하게 예측된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나름의 원인이 있었을 터이다. 우리의 삶이 결정론적이진 않지만 지금의 결단이 원인이 되어 미래의 어떤 사건이 결과로 나타나듯, 현재의 사건 또한 과거의 결단이 원인임을 안다. 그것이 어떤 잡음(변수)으로 인해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지금의 일기예보처럼) 확률적으로 미래를 가늠하며 현실을 일구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