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도네시아 영화.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인도네시아 영화를 구경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OTT의 장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국경선에 있는 한 마을에서 목이 잘린 시체가 발견된다. 뒤이어 계속된 목 잘린 사체의 발견. 자카르타에서 파견된 경찰 산자가 이 사건을 파헤친다. 영화 <안개에는 국경이 없다>는 이 과정을 그린다. 화려한 액션도 긴박한 극의 전개도 깜짝놀랄만한 반전도 없지만, 결말이 궁금해지는 영화다.


2. 먼저 많이 들어본 보르네오섬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국경선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각각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하면서 국경이 정해졌고, 이후 두 국가 간의 협상을 통해 현재의 국경선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우거진 정글 등으로 여전히 모호한 국경선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사체가 국경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자로 재어서 관할을 인도네시아에서 할 지, 말레이시아에서 할 지를 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꼭 국가 간의 경계가 아니더라도 복잡한 사건을 맡지 않으려 하는 관료주의적 모습과 두 나라 간의 왕래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함께 보여준다.


3. 문제는 국경선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숲을 벌목하고 기름야자나무를 심는 플랜테이션 사업가와 이를 가공할 공장을 짓는 과정을 통해 원주민들이 쫓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주민들은 인도네시아 쪽에 속한 다약족인데, 식민지 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의 침략, 그리고 독립 이후 농업 개발 등으로 인해 토지권을 잃고 자신들의 전통문화도 상실될 위기에 처하자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투쟁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투쟁 과정에서의 핍박과 함께 아이들이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하는 비극을 겪고 있다. 이 아이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4. 말레이시아 사라왁 지역에서도 이반족이라는 원주민의 독립운동가이자 전사인 암봉이 유명하다. 그가 죽은 이후에도 국경 지역의 숲의 망령이 되어 원주민을 지킨다는 전설이 떠돌 정도다. 영화 <안개에는 국경이 없다>에서도 암봉은 곳곳에서 튀어 나온다. 현재의 원주민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반면 이들을 억압하는 이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스포일러 주의)

5. 국경 지역으로 파견나온 형사 산자에게도 숨은 사연이 있다.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경찰 내부의 권력이 동원되었다. 자신의 양심을 지켜내려는 행동은 경찰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첫 발이 잘못 놓여지면 되돌리기는 너무 힘들다. 국경 지역의 원주민들에 대한 탄압도 잘못 놓여진 첫 발이었다. 많은 이권과 얽히고설키면서 돌이키기가 쉽지 않다. 이 실타래를 누가 끊을 수 있을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린 알렉산드로스의 칼이 필요해 보인다. 영화 <안개에는 국경이 없다>는 국경선의 현황이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은 상황임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원주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 국경 없는 응원과 지원을 보내달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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