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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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는 꽤 충격적이었다.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의 여부를 떠나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다. 거기에 더해 인간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겨보게 만드는 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시즌이 3개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원작이 3부작인 것을 감안하면 그럴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원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2015년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 작가가 쓴 SF 장편소설이었다. 이 책이 휴고상을 수상한 데는 켄 리우라는 작가의 번역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평도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켄 리우라는 작가가 누구인지 찾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종이동물원>이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거머쥔 유명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2. 긴 호흡의 글 보다는 짧은 글에 익숙해지다 보니, 단편 모음집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찾아본 켄 리우 작가의 단편 모음집 <종이동물원>은 흥미진진함으로 넘쳐났다. 물론 모든 단편집이 독자의 흡입력을 폭발시키지는 않았다. 어떤 단편들은 용어를 쫓아가기가 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편들은 중간에 잠깐 끊어서 읽기가 아쉬울 정도로 집중하게 만든다. 이야기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그 이야기 속에 보여지는 통찰력 또한 빛을 발한다. 


3. 예를 들면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의 경우엔 양자얽힘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뵘기리노라는 가상의 입자를 만들어 내고, 이것이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케 한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731부대의 만행을 고발한다. 하지만 뵘기리노의 과거 여행은 그 시간대에 딱 한 번만 이루어지고, 여행이 이루어진 그 시기는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즉 과거를 지움으로써 과거를 밝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목격된 과거의 사건은 과연 진짜 역사일까 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과거를 영영 잃어버리더라도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인지, 과거의 역사는 과연 누구의 소유인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 속에서 과거 역사 속의 만행을 잊지 말아야 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의 필력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일제 치하의 우리 역사에 있어 위안부의 슬픔을 부정하거나,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단편소설이기도 하다.


4. 단편모음집 <종이동물원>은 과학의 기술이 과거의 역사와 만나 빚어지는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루고, 또다른 축은 우리가 SF소설이라고 하면 익히 떠올리는 가까운 또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또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둘 모두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조마조마하게 만들면서, 기억, 이념, 역사, 추억, 사랑 등등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켄 리우의 또 다른 작품집을 얼른 만나보고 싶다는 유혹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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