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가 죽었다>를 보고나서 첫 느낌은 '이거 웹툰 원작이 있는 거 아니야?'였다. 하지만 원작은 따로 있지 않았다. 실제 사건에서 가져온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느낌이 이 영화를 웹툰 원작으로 느끼게 만든 것일까. 이야기 전개의 신선함, 또는 사건 전개의 빠른 속도감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이야기의 반전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됐지만, 그렇다고 그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영화는 전반부 공인중개사인 구정태(변요한)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구정태는 고객이 맡긴 집 열쇠로 몰래 고객의 집을 방문해 인증샷을 찍고 타인의 비밀을 훔쳐본다. 일종의 관음증. 관음은 남들은 모르는 사실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우월성과 함께 몰래 행하는 짜릿함이 주는 쾌감, 즉 도파민 샤워를 맞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이 지나치면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구정태는 관음중독자라 할 수 있다. 


영화 후반부는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의 시선과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오직 돈을 필요로 한 한소라는 초기엔 명품으로 치장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하지만 실제 명품을 구입하고 이용할 만큼의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계속하기도 힘들고, 돈벌이에도 한계가 있다. 인생 자체를 포기하려는 순간 자신의 사진 속 배경의 헌혈 포스터 사진이 눈덩이 효과를 가져온다. 명품만 아는 '된장녀'에서 버려지고 다친 애완동물을 구하는 개념있는 여자로 변신한다. 여기에 더해 구독자들로부터 기금을 모아 사치스럽게 살아간다. 


문제는 관음증 구정태가 관종 한소라를 만나면서부터다. 구정태는 한소라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고자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한소라는 자신의 가면, 페르소나가 벗겨진 민낯을 구정태가 봄으로써 자신의 관종 활동이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한 가지 계략을 쓴다. 이 계략으로 인해 구정태는 위험에 빠진다. 과연 구정태는 이 위험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스포일러 주의-

관음과 관종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사건. 그리고 관음과 관종을 일으키게 만든 도파민의 과잉. 사건이 끝나고 매듭지어질 즈음, 감독은 갑작스레 형사의 입을 통해 시니컬한 한마디를 던진다. 관객의 마음 한 구석에 구정태가 누명을 벗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 즈음, 관객들을 정신 차리게 만든 호통이다. 관음증 또한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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