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인 챗GPT가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과연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범용인공지능 AGI가 언제쯤 등장하게 될지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론 두렵다. 일론 머스크는 2~3년 안에 AGI가 등장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그의 말은 가끔 과장된 것이 섞여 있어, 곧이 곧대로 믿을 것은 못된다. 그럼에도 5년 안엔 정말 가능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범용 AGI와 로봇의 결합으로 안드로이드의 탄생도 머지않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 등장할 AGI와 안드로이드 등에 대한 염려도 크다. 영화 <크리에이터>는 약 40년 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불안과 염려가 현실이 되었을 때, 지구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인지를 그리고 있다.
1. 사피엔스 vs 네안데르탈인, 사피엔스 vs 안드로이드
사피엔스라는 현 인류의 종과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은 5,000년~1만 년 정도를 지구에서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인류의 유전자 중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비아프리카에서 1,2% 정도라고 한다. 아무튼 무엇이 사피엔스가 살아남고 네안데르탈인을 멸종하게 만들었을까. 영화 <크리에이터>에서는 둘의 경쟁에서 사피엔스가 더 발전된 무기와 기술로 잔혹하게 상대를 죽이고 살아남았다는 가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렇기에 새로운 AI의 등장은 사피엔스를 위협하는 경쟁종으로 여겨 멸종시켜야 할 대상, 즉 적이 된다.
2. 미국 vs 아시아
생성형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지금도 문제점이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데이터의 대부분을 서구에서 취하고 있기에,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중립적이지 못하고 치우쳐 있으며, 편견 등에 노출되기도 쉽다. 또한 이로인해 발전 속도에서도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문명과 그렇지 못한 문명 사이에 발전의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독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영화 <크리에이터>에서는 이 차이로 인한 부작용 또한 서구에서 먼저 겪음으로써, 미국은 AI를 멸종시키려 하고, 뒤늦게 AI를 품은 아시아권에서는 이들과 공존하고자 함으로써 대치 상황을 이룬다.
3. 데이빗 vs 피노키오, 그리고 알피(스포일러 주의)
AI를 없애기 위한 서구의 가장 큰 무기는 노마드라는 비행체다. 1조 달러라는 돈을 들여 만든 것으로, 공중에서 AI기지를 박살시킬 수 있는 무기를 지녔다. AI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이 노마드를 없앨 비밀병기를 만들었다. 그 존재가 바로 아이 모습을 한 AI 알피다. 진짜 인간 아이처럼 순진한 상태에서 성장을 하며, 인간과 같은 감정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놀고, 부모와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존재다. 인간의 적이 지만 인간보다 인간적인 AI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여 년 전에 만들었던 영화 AI에서도 아이 안드로이드인 데이빗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부모에게서 자라다 버려지는데, 자신이 인간이 아니어서 버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이 되기 위해 애를 쓰며 부모를 찾아 나선다. 마치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 곁으로 가기 위해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알피 또한 자신의 아버지 격인 조슈아가 착한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슬퍼한다. 자신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AI들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더 나아가 생명이란 무엇인지까지도.
4. 니르마타 vs 노마드
영화 속 이름도 흥미진진하다. AI의 창조자인 니르마타는 불교 용어인 '니르바나'를 연상시킨다. AI와 인간 모두에게 고통없는 삶,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무기인 '노마드'는 유목민을 의미하는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한다고 여겨진다. 역설적이게도 영화 속 AI들은 노예처럼 살기를 거부하며 저항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노마드 적 삶을 노마드라는 무기가 산산조각내려 한다.
웅장한 그래픽과 인간적인 서사가 어우러진 영화 <크리에이터>는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AI의 문제점 또는 역설을 전제로 펼쳐진다. 다소 식상한 어두운 면일 수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일 수 있다. 생명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영화 <크리에이터>가 주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사색에 살짝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