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2022년 제7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럼에도 찬반이 엇갈리고 실제 수상작 발표 때도 환호와 야유가 뒤섞였다고 한다. 전문가와 관객 평점 또한 어중간.
영화는 호화 크루즈에 협찬을 받아 승선하게 된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을 중심으로 각양각색의 부자들과 이들을 손님으로 모시는 승무원들이 배가 난파되면서 겪게 되는 권력에 얽힌 이야기이다. 블랙코미디 장르로 사회 풍자류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강추. 포복절도하는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비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주인공 격인 모델 커플을 다룬다. 여자 모델인 야야와 그녀의 남자친구인 모델 칼은 연인이다. 하지만 야야는 칼을 사랑하기 보다는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로 대하고, 칼은 야야가 자신을 진정 사랑하도록 만들겠다 다짐한다. 칼의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야야를 이기기 위한 사랑으로 보인다.
실제 남성 중심의 현 사회에서 모델의 경우 소득이 남자 모델이 여자 모델의 1/3 수준인데다, 보통 모델 하면 여성을 말하고, 남성의 경우 남자 모델이라 부르는 등 권력의 양태가 전도(?)되어 있는 드문 업계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설명. 칼은 야야에게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야야를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사랑을 열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힘에 대한 관계는 영화 속에서 밥값을 누가 내느냐로 나타난다.
2부는 칼과 야야가 협찬으로 호화 크루즈에 올라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처럼, 크루즈의 승객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승무원에 대한 한 마디 불평만으로도 일자리를 잃게 만들 정도다. 칼은 자신의 불평으로 승무원이 퇴선 조치되는 것을 보며 마음이 불편하다. 을에 가까운 처지에서 협찬의 힘으로 절대 갑이 되자 벌어진 일에 당혹스럽기도 하다. 주어진 권력은 가차 없다. 한 승객은 승무원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승무원들이 모두 수영을 즐기라고 명령을 내린다. 승무원은 자신의 할 일을 멈추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을 마지못해 즐긴다(?). 갑의 생각 없는 배려가 폭력이 되는 순간이다.
승객과 승무원의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크루즈가 폭풍우에 휘말리고, 해적까지 등장, 난파하게 된다. 이때 선장 토마스와 러시아 출신 비료회사 CEO 드미트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어록을 인용한 말싸움을 벌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장은 자본주의를 러시아 출신 드미트리는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수류탄을 만들어 부자가 된 승객 부부가 해적이 던진 자신들의 회사 수류탄이 터져 죽는 모습에서도 보여진다.
3부는 난파된 크루즈의 승객과 승무원 중 8명이 한 섬에 다달아 살아남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섬에서는 승객이 왕이었던 상황이 전도된다. 생존 기술을 가진 크루즈의 청소 담당자였던 여 승무원 애비게일이 권력을 틀어쥔다. 자신을 '캡틴'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만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 철저하게 권력의 맛을 즐기는 것이다. 영화의 종반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애비게일은 이 상황이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것인지 갈등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며 끝을 맺는다. 그 결말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 놓았다. 뜻밖의 반전이 주는 영화적 재미라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것은 관객들마다 제각기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론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권력을 탐하는지를, 그리고 그 권력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전도될 수 있음을, 따라서 권력의 토대가 생각만큼 탄탄하지 않고 부실함을, 영화 [슬픔의 삼각형]이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생각한다. 그와 함께 과연 인간은 권력의 관계를 넘어서서 정말로 평등을 원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