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셀러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영화화 했다. 책을 읽지 않았지만, 그 평을 보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습지에 대한 묘사가 탁월한 듯하다. 영화는 소설 속 습지를 영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과연 소설이 공들인 것 만큼의 영상을 표현해 냈는지는 책을 읽지 않았으므로 알 수 없다. 다만 영화 속의 습지 또한 매력직이긴 하다.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매력이 습지라는 배경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러가지 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굳이 장르로 표현해보면 성장물, 멜로물, 법정물, 미스터리물 등 다양한 장르가 합쳐져 있고, 관점에 따라서 중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정해질 듯하다. 


만약 주인공인  카야가 폭력적인 아버지를 떠나 가족들이 모두 도망가버리고, 결국 어머니와 아버지마저 잃어버린 채 습지에 위치한 집에 홀로 남아 자라는 과정에 집중한다면 성장물이 될 것이며, 이렇게 홀로 남겨진 카야의 외로움을 위로해 줄 두 명의 남자를 만나는 모습에 집중한다면 멜로물이 될 것이다. 또 이 두 남자 중 한 명인 체이스의 죽음이 어떻게 발생할 것인지에 집중한다면 미스터리물로, 살인자로 몰린 카야가 무죄를 받기까지의 과정에 집중한다면 법정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카야가 진짜 살인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카야를 바라보는 바깥(문명) 사회의 시선 속에 포함된 편견과 권력, 자연에 대한 경이와 함께 따라오는 상반된 두려움 등 다양하게 읽혀지는 재미 또한 크다. 


주인공 카야가 습지 집에서 홀로 자연을 통해 배우며 성장하는 모습은 사회 속에서 자란 이들에게 신비롭게 보여진다. 하지만 한편으론 거리껴지는 대상이기도 하다. 현대문명이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그대로 녹아있다 할 것이다. 자연을 두려워하면서도 정복해야 할 대상이자 도구로 바라보는 한편, 신비롭고 지혜로운 것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으로도 보여지는 것이다. 


카야 또한 자연 속에서 자랐지만 결국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테이트와 체이스라는 두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믿었던 사람들이 떠나버리는 배신 속에서도 또다시 사람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간은, 아니 생명이란 결국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 폭력에 의한, 또는 힘에 의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공감하고 이해하는 방식이기를 바랄 뿐이다. 두 남자 체이스와 테이트는 이 상반된 방식을 표현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폭력이 자신에게 가해졌을 때 과연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를 카야는 질문한다. 카야의 해결 방식에 동의를 할 것인지, 아니면 부정할 것인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끝을 맺을 때 그 결말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두 입장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의 입장에 따라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꽤나 매력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