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4월 5일 0도~18도 맑음


언덕마다 개나리가 피어나고 머지않아 진달래도 피어날 것이다. 따뜻한 남쪽은 벌써 진달래가 피었을 테지만. 진정 봄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간혹 가을에 이런 꽃들이 핀 것을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보통 우리는 그 꽃들을 철부지라 부른다. 철을 모르고 피어났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이 꽃들이 철을 모르고 핀 것은 아니다. 꽃이 필 조건이 형성되었기에 피어난 것이다. 기후변화가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기후 조건을 바꾸어 놓고선 개나리나 진달래 보고 철부지라 부르는 것이다. 개나리나 진달래 입장에서는 분통을 터뜨릴 일이다. 



거의 열흘 전 쯤 심었던 토종검은찰옥수수가 싹을 내밀었다. 같은 날 심었던 케일, 청경채, 호박은 감감 무소식이지만, 옥수수만 먼저 싹을 틔운 것이다. 옥수수싹이 날 만큼의 조건이 맞아서일 것이다. 물론 케일과 청경채의 경우 씨앗이 묵어서 발아율이 떨어진 탓도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발아에 필요한 조건이 맞았냐는 것이다. 

 

발아에 필요한 것은 물과 햇빛, 온도라 할 수 있다. 어떤 씨앗들은 해를 보지 않았을때 싹을 더 잘 내미는 것도 있다. 호박을 심어보면 항상 다른 식물에 비해 늦게 싹을 틔웠는데, 호박의 특성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궁금했다. 자료를 조금 찾아보니, 오이나 호박의 경우엔 그늘에서 싹을 틔우는 것이 보다 좋은 조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일단 늦었지만 호박씨를 뿌린 곳에는 그늘막을 쳤다. 씨앗을 심고 나서 싹을 틔우는 기간은 식물별로 차이가 크다. 어떤 것은 하루이틀 만에 싹을 내밀고, 어떤 것들은 수 년이 걸린다. 또 어떤 씨앗들은 몇 천 년을 묵혀 있다가도 조건이 맞으면 싹을 내밀기도 한다. 특히 연의 경우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어서 화제가 되곤 한다. 


아무튼 생명이 나고 자라는 데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이 조건을 잘 갖추어 주면 생명은 춤추듯 자라난다. 최상의 농부란 이런 조건을 잘 알고서 식물에게 그 조건을 형성 시켜주는 농부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사회도 사람마다 저마다의 개성과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회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최상의 조건을 갖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적용해왔을 것이며, 이런 과정이 역사를 이루었다 할 것이다. 인류의 발전이란 다름아닌 이런 조건의 발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최상의 행복은 조건과 무관하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 즉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산다면 행복할 수 있다. 다만 이 세상 누구든지 꽃 피게 만들 수 있는 조건을 향해 조건 없이 나아갈 수 있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행복은 나 혼자 만의 것이 아닐 뿐더러, 나 혼자서만 행복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수줍게 고개를 내민 옥수수싹을 보며 생명의 조건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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