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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들고 달리기
어거스텐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당신이라면 살 수 있겠는가? 13세. 어머니는 정신분열증을 겪는 시인.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족을 살해할 것이라는 과대망상증에 시달린다. 그래서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핀치 박사. 하지만 이 정신과 박사는 오히려 정상이 아닌듯하다. 그리고 또 그 가족은 어떤가. 자유방임 가족이다. 이 가족 밑에서 살아야하는 아이. 30대 사내와 동성애에 빠진 아이. 이건 소설이다. 하지만 실화다.
과연 주인공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었을까? 차라리 자살을 꿈꾸는 것이 나을법도 하건만, 그는 그 가족들 사이에서 자기 방식대로 끝까지 버텨냈다. 아니, 살아냈다. 그리고 희망을 찾아냈다. 그것이 절망이 아닌 체념으로 비쳐질지라도 그것은 그에게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컬트 무비를 보는듯한 소설은 정말 현실인가를 의심하게 하지만, 사람이란 얼마나 끈질긴가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핀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학교라는 이 똥통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큰 낭비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별다른 계획이나 생각이 없는 아이들을 가둬두는 감방일 뿐이었다. (121쪽)
핀치 가족은, 규칙은 자기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몸소 가르쳐주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며 어떤 어른도 대신 내 인생의 틀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122쪽)
바로 이 깨달음이 주인공을 현실에서 버티고 나아가게 만든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혼돈 속에서 지켜내고 믿을 것은 오직 자신밖에 없다.
넌 자유의지를 가진 자유인이다. 핀치 박사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왜 늘 그렇게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을까? (중략) 무엇보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그것이 문제였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지 알 수 없으니, 콱 막혔다. (358쪽)
자유의 참뜻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부분이다. 세상을 버텨나가기 위해 스스로 세운 규칙으로, 다시 말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지만, 그것이 오히려 삶을 막막하게 만든다.
우리 인생은, 가공식품 패스트푸드와 가끔 생기는 위기나 재미있는 호기심으로 쉼표가 찍히는 끝없는 불행의 연속이다.(379쪽)
그의 인생을 돌이켜보건대 필시 그럴 것이다. 막막함 속에서 암흑 속에서,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 굳건히 살아갈 수 있었는가.
물론, 세상이 달랐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을 굴리고, 어쩔 것인가? 어깨를 으쓱한다.(417쪽)
그렇다.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그 으쓱한 어깨 사이로 희망이 찾아온다. 붉은 태양과 같은 희망이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