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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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 속에 나오는 감옥은 억압과 통제를 보여준다. 이 감옥은 학교, 회사, 병원 등의 모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누군가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이를 토대로 상과 벌을 주는 것은 인간이 이기적이며 악하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어진 것이다. 또한 현재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동력을 돈이라 여기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을 전제로 한다. 즉 현재 인간이 일궈온 정치, 사회, 경제의 토대는 성악설인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관점은 아우구스티누스, 마키아밸리, 홉스, 루터, 칼뱅, 벤담, 니체, 프로이트를 넘어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 되어버렸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범죄, 폭력이 이를 증명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성악설을 바탕으로 한 이런 감시와 통제는 오히려 냉소주의를 낳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했으며, 이기심을 자극하고 배제하며, 관료주의라는 악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이기적이지도, 경쟁적이지도 않다면 즉 문명사회를 이루고 있는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면 현재 우리의 권력체계와 자본주의는 인간의 세상살이에 적합한 제도일까. 반대로 망치는 제도일까. 만약 인간이 이기적이지도 악하지도 않고 선하다고 생각한다면 감시의 눈길은 사라지고, 통제를 위한 권력은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이책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인간이 결코 악한 존재가 아니라 긍정적인 면을 많이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이 책의 부제 <감춰진 인간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라는 말 속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제도와 문명을 꿈꾸는 토대가 되고자 한다.   


저자는 <휴먼카인드>를 통해 인간이 이기적이고 악하다는 증거로 거론되는 소설 <파리대왕>, 이스터섬의 수수께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 방관자 효과 등이 오해, 곡해, 조작, 의도된 것들임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 보여준다. 


반면 인간은 유전적으로 가장 우호적인 자가 생존해왔으며, 친화와 유대감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다른 동물과 달리 눈썹을 갖고 있는 것은 감정의 노출을 통해 공감하고자 하는 것이며, 공감을 동반하는 모방을 통해 사회적 학습능력을 키워옴으로써 현 인류의 문명을 가능케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인간의 특성을 호모 퍼피(강아지)라 칭한다.  


하지만 이런 공감의 능력은 진화의 역설에 부딪히기도 한다. 우리가 수렵, 채집의 시기 몸에 지방을 쌓아 굶주림에 대비하도록 진화해 온 것이 현재 패스트푸드를 비롯한 풍족한 식사로 인해 비만을 불러왔다. 공감의 능력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떨어지며 이로 인해 차이에는 민감해진다. 문명의 발달로 집단이 커지면서 타인에 대한 공감도는 떨어지고, 차이가 차별로 되는 부조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차별이라는 부조화는 인류가 농업을 통해 사유재산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무장한 선지자와 군대가 등장하는 등의 계층구조가 나타나면서 권력의 심화는 커져간다. 폭력의 위협과 강제력으로 대항하는 게 힘들고, 그들은 인간이 악하다는 잘못된 정보를 심음으로써 억압과 통제를 자연스럽게 만들어갔다. 호모퍼피라는 우리의 집단본능이 오작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 접어들면서 뉴스를 통해 더욱 강화되어진다. 뉴스는 일반적인 것이 아닌 특이한 것이 대상이 되며, 폭력과 잔인함, 이기적 성향과 끝없는 경쟁에서의 승리 등은 뉴스의 좋은 표적이 된다. 이런 정보에 노출되면 될 수록 우리의 잘못된 믿음은 더욱 힘을 얻는다. 가짜약의 효과인 플라시보처럼 잘못된 정보가 힘을 발휘하는 노시보가 우리를 감싸는 것이다. 믿는대로 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그 부정적 모습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골렘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이기적, 탐욕적이며 투쟁을 일삼지만은 않는다. 우리는 일상적 공산주의를 거의 매일 경험한다. 식탁에 있는 소금을 옆 테이블에 건네주면서 돈을 받지는 않는다. 자신의 아이를 키우면서 돈을 받지도 않는다. 공원과 해변에서 자신의 몫을 따지며 돈을 걷으면 폭력배라 여긴다. 즉 일상 속에서 공유의 가치는 빈번하게 접할 수 있다.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관리자와 보너스가 없는 기업, 참여 예산을 집행하는 포르투알레그리 지자체, 교도관과 범죄자가 함께 식사를 하며 여가를 즐기는 노르웨이 교도소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 사회를 재편성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접촉 가설을 통해 더욱 힘을 얻는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약탈과 전쟁, 폭력과 억압 등은 잦은 접촉을 통해 우리가 같은 인류임을 느낌으로써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우리는 타인을 모방하며 발전해왔고,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 성장해왔다. 자주 만나고, 친절하게 대하면 친숙해진다. 이 친숙함은 폭력과 억압, 약탈, 무한경쟁을 막는 저지선이 되어 줄 것이다. 

아참, 그러기 위해선 뉴스를 멀리하고, 공감을 누그러뜨리는 대신(공감은 차별과 쌍을 이룬다) 연민을 훈련하라는 것이 저자의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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