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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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은 죽어나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휘청거린다. 재난은 취약계층에게 더욱 잔인하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업상태에 빠져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영끌해서 코인과 주식에 투자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 늘어난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은 아직도 견고하고, 결혼과 출산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은 사다리를 부숴놓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주저되고, 출산률은 최저를 경신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헬 조선'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위태로움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베이비붐 세대와 청년세대, 남성과 여성 등등의 불평등의 격차가 커짐으로써 더욱 위험해졌고, 그 불평등은 불공정이라는 화두를 낳았다. 공정을 향한 열망이 불평등한 것으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열망과 맞닿아 있는지, 아니면 불평등함 속에서 최상위로 가는 길이 열려있기를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정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분노로 폭발하고 있다. 


도대체 왜(?), 어쩌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불공정과 불평등으로 인해 화가 잔뜩 쌓여 비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저자인 이철승 교수는 그것의 원인으로 연공제를 들고 있다. 물론 연공제 단독범은 아니다. 세대와 인구구조와 맞물리면서 이 연공제가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와 2차 베이비붐 세대는 연공제의 단 맛을 최상으로 즐기는 위치에 서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연공제의 단 맛 이면에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가 도사리고 있다. 직무와 직능제로의 변화를 통해, 그리고 직무와 직능간 평가의 차이의 제한을 통해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결할 단초가 있음에도 우리는 연공제에 묶여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연공제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쌀 생산국가로서의 문화, 제도로 설명한다. 밀의 재배는 한 개인이나 가족이 거뜬하게 해낼 수 있지만, 쌀은 엄청난 규모의 물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수로 체계와 수자원의 확보를 위한 마을 전체를 넘어선 국가적 규모의 계획과 노동이 필요로 한다. 이는 자연스레 협력을 필요로 하며, 이 협력은 표준화와 평균화가 개입된다. 즉 내가 다른 이의 논에 딱 내가 받은만큼의 기술과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쌀 농사에 있어서 기술이란 경험의 축적이 큰 영향을 미침으로써 나이를 먹은 농부들은 자연스레 대접을 받는 위치에 선다. 이 농부들은 또한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 기술을 대물림하는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 한편 쌀 농사에 있어서 공동의 노동은 오히려 수확의 차이에서 개인의 노력 차를 반영함으로써 질시의 씨앗이 된다. 또한 이런 노동의 동원을 조정하는 권력에 얼마나 가깝게 있느냐에 따라 노동력의 조달이 손쉬워지면서 수확의 격차는 벌어지게 된다. 이런 문화적 전통은 아마도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벼 생산의 체계가 고스란히 공장으로 옮겨지면서 우리는 연공제라는 제도를 자연스레 이식했다. 이 연공제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이보다 오래 근무한 이에게 보다 많은 보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산업생태계를 바꿀 정도로 변모했다. 연공제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활약했던 전성기에 우리의 산업생산력을 이끌었던 제도였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독이 되어버렸다. 


<쌀 재난 국가>라는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위기의 근원은 연공제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철승 교수의 진단은 곱씹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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