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특집영화로 [광대들;풍문조작단]을 딸내미와 함께 봤다. 이 영화는 세조 때 발생한 것으로 기록된 국토 이곳저곳에서의 신비스러운 사건이 실은 광대들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영화 말미에는 이런 이야기와 연관된 실제 모습, 즉 정이품송, 고양이상, 문수동자좌상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방학기간 동안 전자기기에 파묻혀 살고 있는 딸내미에게 콧바람이라도 쐬어줄 겸 영화에서 등장했던 곳을 가보는 것도 좋을듯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다.
먼저 월정사 전나무숲길부터 찾았다. 봄날씨같은 따듯한 기후 속에서도 오대산 속이라 그런지 아직은 숲길 옆 계곡물은 곳곳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나서 금강교 쪽이 아닌 주차장 바로 옆으로 난 순환로를 걸었다.
전나무숲길과 이어지는 1.9키로미터의 길이다. 이쪽부터 시작하면 절반정도에서 일주문을 마주치고 숲길을 지나 월정사로 들어갈 수 있다.
월정사의 일주문은 웅장했다. 기둥이 하나라서 붙여진 일주문인데 그 기둥옆으로 기교를 부린 장식물이 덧붙여져 웅장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전나무 숲길 초입에선 쓰러진 잣나무를 소재로 한 조각품도 보인다.
이 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한 손 한 손 쌓아올렸을 조그마한 돌탑도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욕망을 덜어내는 길일진데, 오히려 민초들의 소망을 고스란히 품은 돌탑들이 놓여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아니, 그렇게 소망의 무거운 마음을 이곳 돌탑에 놓아두고 절로 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대산 전나무숲길은 전북 부안의 내소사와 경기 포천의 광릉 전나무숲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드라마 [도깨비]가 촬영되기도 했다. 딸내미는 도깨비의 어느 장면이 촬영됐느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도깨비가 촬영됐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며, 산책의 재미를 더한다. 마침 다행히 소나무와 전나무, 잣나무를 비교해주는 안내판도 있어서 잠깐의 공부도 한다.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나무 그림을 주로 그리는 딸내미인지라 3 종의 나무 비교 안내판도 유심히 쳐다본다.
전나무숲길을 지나 월정사로 들어서면 팔각구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 풍파를 이겨낸 석탑 속에서 고뇌를 털어내고자 석탑 주위를 돌았을지도 모를 선조들을 떠올려본다.
월정사를 나와 비포장도로로 9키로 가까이 산쪽으로 올라가면 상원사가 나온다. 도로가 아닌 스님들이 실제 걸었던 선재길이 있는데, 지난 태풍과 장마로 유실된 곳이 있어서 현재는 폐쇄되어 있다. 이십여년 전쯤, 그리고 십여년 전쯤 오대산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면서 들렸던 상원사에 대한 기억이 얼핏 떠오른다. 딸내미는 경사가 급한 길을 오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습이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고양이 석상을 보아도
우리나라 종의 원형이라 할 통일신라시대 동종을 보아도 시큰둥하다. 다만 원형은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고, 복제된 종은 다행히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것에 흥미를 보인다.
마음이 머무르냐가 좋고 싫음을 결정할 것이다. 좋고 싫음의 구분은 결국 좋음을 탐하고 싫음을 거부하는 욕망을 일으켜, 우리를 고뇌에 빠뜨린다. 그러하니 결국 마음자리가 없어야 고뇌도 일어나지 않을 터이다.
“집에 언제 가?” 하는 딸의 물음에서 아비와 딸의 마음자리가 다름을 깨우친다. 나의 마음자리를 고집하지 않는 것에서 행복은 시작할 터이니, 이제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