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산은 자신의 몸뚱아리를 벗은채로 온전하게 보여줍니다. 나뭇잎과 풀과 꽃과 열매로 치장하지 않은 민낯의 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눈으로 살짝 몸을 가리지만, 오히려 자신의 형태를 더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볼품없는 겨울산일 수 있겠으나, 그 산속으로 발을 내디딘 다른 누군가에게는 맨몸으로 겨울을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한겨울 나무들도 나체를 드러냅니다. 그런데 가끔은 강렬한 색의 열매를 여전히 달고 있는 것들을 마주칩니다. 수확하지 않고 놔둔 구기자의 주황색 열매가 눈에 들어옵니다. 햇볕을 받았다 찬바람에 얼었다 하면서 쪼그라든 것들도 보입니다.
산수유의 붉은 색 열매도 눈을 찌릅니다. 모두가 땅으로 돌아가는 이때 열매는 어찌 찬바람이 매서운 이때까지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일까요.
겨울에 열매를 달고 있는 것들은 새들의 눈에 잘 뜨이기 위한 것일지 모릅니다. 새들이 열매를 발견해서 먹고 어디론가 날아가 그 씨앗을 배설하면, 나무는 발이 없지만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새들의 먹이가 되지 못한 열매들은 어찌할까요. 겨울을 난다 하더라도 아마 이듬해 봄 새잎과 열매들에 자리를 내주겠죠.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남겨진 것들이 애처로워보입니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무는 봄이 되면 온힘을 다해 다시 열매를 맺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