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의 말 - 파리에서, 밥을 짓다 글을 지었다
목수정 지음 / 책밥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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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식은 추억과 결부된다. 졸업식날 먹었던 자장면, 결혼식장에서 먹는 가락국수, 장례식장에서 마주치는 육계장 등등 인생의 굵직굵직한 사건에는 음식이 함께 한다. 모두에게 공통되는(한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되기도 하지만) 음식이 있는가 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음식들도 있다. 소위 '집밥'이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음식은 다른 집에서 먹는 그 음식과는 다르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또 어떤가. 이런 음식들에는 '정성'이 깃들여 있다. 그리고 그 정성은 어찌보면 '시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한끼 밥상을 차리기 위한 어머니의 또는 할머니의 시간 말이다(물론 이젠 어머니나 할머니라는 여성에 한정된 것이 아닌 아버지, 할아버지의 밥상도 우리 아이들의 추억 속에 한 켠 자리잡아가야 할 것이만).

 

이책 [밥상의 말]에서는 목수정 작가의 음식에 깃든 추억이 반짝인다. 그리고 그 추억 속 음식은 결코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슬로우푸드로 충만한 음식들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그 집의 것이다. 책의 작가뿐만 아니라 그 전 시대나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이런 음식과 관련된 추억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밥상은 점차 밥상을 차리는 데 들어가는 시간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개성의 폭도 줄어들고 있다. 음식을 차리는 기술, 즉 요리를 그 집안의 풍습이 아닌 온라인(인터넷 요리백과나 유튜브 등등) 속 레시피나 TV속 백선생을 따라하기에 바쁘다. 집밥의 재등장이 반갑긴 하지만 그 집밥이 어느 집에서나 똑같이 마주치는 집밥이라면, 과연 그것이 진짜 집밥인 것이 맞을까. [밥상의 말]을 읽다 이런 상념에 마주친다. 


2. [밥상의 말]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의견에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가지만, 현실적으로는 고개를 젓게 된다. 지속가능한 유기농 재료와 가축들의 행복을 위한 동물복지를 주장하는데 이견을 달기 힘들다. 하지만 유기농과 동물복지가 이뤄지기 위해선 인간의 탐욕에 대한 절제를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보다 많이 보다 맛있게를 꿈꾸는 본능적 욕구를 제어하지 않는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동물복지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현재와 같은 고기 소비량을 유지하기 위해 가축을 키운다면 한반도 땅덩어리로는 어림도 없다. 세계인을 대상으로 확대한다면 지구가 몇 개는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소를 키우기 위해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물의 양과 곡물, 그리고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 돼지의 똥오줌 처리 등등 지구의 환경에 미치는 나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양적, 질적 측면에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육류 소비를 절대적으로 줄이는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저기압일때 고기앞으로 가는 식사에 익숙해져 있다. 본능에 가까운 탐식과 과식을 억제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정책은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유기농은 또 어떤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장에 맞춘 유기농은 단일작물에 과다한 농자재를 투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농자재 투입을 위해 수입하는 원료의 양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종의 다양성과 저투입을 기본으로 하는 유기농업은 대농이 아닌 소농일 때 가능하다. 하지만 소농은 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쉽지않다. 자본의 유통 구조가 대농에게 유리한데다, 농정 또한 대농을 살리기 위한 정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는 물론 합리적으로도 옳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현장 속에서는 도덕과 이성이 제 갈길을 못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의 탐욕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올바른 길을 찾는다는 것은 어렵다. 우리의 밥상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인간의 탐식과 환경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우리의 밥상도 달라질 것이다.[밥상의 말] 속에서 드러난 작가의 밥상이 때론 따듯하게, 때론 냉정하게, 우리의 밥상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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