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885'라는 숫자를 기억하는지? 추격이라는 소재로 관객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던 2008년 영화 [추격자]의 대사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범인을 쫓는 전직 형사가 추격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단서를 찾아가다 범인을 확정하게 만드는 휴대폰 번호 뒷자리였다. 영화 [추격자]는 빨리 범인이 잡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영화를 지켜보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하드보일드 추격액션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인남(황정민)은 자신의 딸을 납치해 죽였다고 여긴 범인을 쫓는다. 레이(이정재)는 자신의 형을 죽인 인남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뒤를 쫓는다. [추격자]와 달리 쫓는자와 쫓기는자가 명확하다. 이들이 언제 만나게될지, 그리고 그 만남은 어떤 결말을 맺을지의 궁금증과 함께 두 배우의 액션이 볼거리의 전면에 나선다. 


즉 [추격자]는 심리극에 가까운 반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극이라 할 수 있다.


2.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액션장면은 배우의 움직임 보다는 시간의 움직임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요즘 최신 스마트폰은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슬로우모션을 집어넣을 수 있다. 화면의 빠르고 느린 장면은 평상시 우리가 접하는 시간의 흐름과 다르기에 흥미와 함께 집중도도 높인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배우간의 직접적 타격에서는 아주 빠른 화면으로, 사람이나 물건이 공중에 뜨거나 튀어오르는 장면에선 느린 화면으로 편집되어져 있다. 빠른 화면은 타격감을 더욱 배가시키고, 느린 화면은 세밀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적시적소에 쓰인 이런 시간의 재편집이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액션을 차별화 시켜준다.



3. 영화 [악에서 구하소서]의 재미는 황정민과 이정재라는 두 배우의 대결이 큰 축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살리는 것은 두 배우의 액션에 더해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등장이다. 정말 말 그대로 '네가 거기서 왜 나와?"다. 

뜻밖의 등장에다 캐릭터마저 상상을 뛰어넘는다. 아마 영화 홍보를 하면서 박정민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터이다. 아무튼 박정민의 능청스런 연기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영화의 전개에 가벼운 발걸음을 선물한다. 


4. 인남은 정부요원이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흔적을 없애야 하는 존재가 됐다. 대한민국을 떠나 외국에 거주하면서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고 지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쿠자를 죽이고 은퇴해 파나마로 건너가 여생을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살인이 하필이면 백정이라 불리우는 레이의 형이었다. 은퇴를 향해 걸어가지만 뒤에는 추격자가 쫓아오고 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영화가 어떤 메타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은퇴를 꿈꾸는 것은 커녕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을 떠올려본다. 쫓기듯 살아가는 삶. 인남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보면, '악'이란 내가 무엇인가를 쫓기에 오히려 쫓길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은 아닐련지. 다만 악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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