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일 13도~25도 맑음


아침에 밭에 물을 주다 깜짝 놀랐다. 체리나무 옆에 있어야 할 백합이 안 보이는 것이다. 잠이 덜깼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안 보인다. 가만, 이곳이 아니었던가. 순간 백합의 위치마저 의심했다. 하지만 역시 안보였다. 



백합이 심겨졌던 자리로 가보니 백합줄기가 모두 쓰러져 있다. 그리고 뿌리 부분은 파헤쳐져 있다. 도대체 뭐야, 이건?



보아하니 누군가 백합의 뿌리, 구근을 먹어치운 것이다. 누구? 멧돼지? 고라니? 꿩? 누가 범인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멧돼지나 고라니가 지나갔다면 개들이 짖었을텐데... 한밤중에 왔다면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수도 있고. 최근엔 꿩들이 많이 보이기도 했고. 



뿌리를 잃어버린 백합들을 보니 속이 쓰렸다. 아까웠다. 체리나무 주위에 길드를 형성하기 위해 심은 것인데 말이다. 백합의 구근이 땅속벌레의 침입을 억제해 줄 수 있다고 해서 심은 것인데 땅 위 동물에게 침입을 받은 것이다. 길드는 이렇게 땅 위 동물의 침입을 저지할 수 있는 식물도 함께 심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작동시키도록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아직 시험단계고 초창기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서 이런 변(?)을 당했다. 백합이 아까운 것은 백합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지난해부터 키워온 것인데.... 그 시간이 얼마인데...


자꾸만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본다. 멧돼지든 고라지든 꿩이든 누가 먹었든 배부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잘 먹었을거라고. 인간이 자신들의 거주, 먹이 환경을 침입해 자기 땅이라고 우기지만 실은 자신들의 것이었음을 알리는 일이라고. 이미 먹어버린 것을 어떡하겠는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미련을 가져봐야 속만 아플 뿐이다. 


자, 그럼. 대책을 세워야 한다. 뭐, 계속 나눠먹을 생각이면 그냥 백합을 실컫 뿌려두고 먹이주듯 주면 될테지만 이건 자포자기의 대책이고. 백합을 심고 테두리를 망으로 쳐서 침입을 막아야 할지. 아니면 백합 심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 백합과 함께 멧돼지나 고라니, 또는 꿩이 싫어할만한 무엇인가를 함께 심어야 할지 고민이다. 묘책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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