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여곡절 끝에 영화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됐다. 큰 스크린과 스피커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영화이지만, 음향만 조금 손을 대고 그대로 TV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영화산업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지, 하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는 [사냥의 시간]에 대한 관객들의 평에 달려있을 듯하다. 

 

2. 영화 [사냥의 시간]을 총평하자면 한마디로 지루하다.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네 젊은이들이 도박장을 털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하기까지, 후반부는 이 네 젊은이들을 쫓는 사냥꾼과의 대결이 큰 줄기를 이룬다. 문제는 도박장을 털 때의 긴장감, 사냥꾼과의 대결에서의 긴박함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문제의 핵심은 리듬이다. 좀도둑 수준이던 그들이 한마디로 간덩어리가 부어서 도박장을 털기로 하고 무장강도가 된다. 이들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표현해내기 위해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의 떨림이나,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 등을 담아내지만, 이 모습 이외의 장면들과 잘 버무려지지 못한다. 

특히 사냥꾼과의 대결은 프로로 총을 쓰는 사냥꾼과 아마추어 사냥감의 대비된 모습을 통해 긴박함이 드러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여유롭게 걸어서 찾아오는 추격 장면, 적이 다가올 것이라는 극도의 흥분 대신 맥을 끊어버리는 사냥감들의 당황한 모습은 영화 전체를 지루하게 만들어버린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듯 박자감을 갖추고 리듬을 맞추어 사냥의 순간을 포착해야 하지만, 편집은 나사풀린 태엽마냥 늘어진다. 

 

4.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려고 한다. [사냥의 시간] 속 젊은이들은 궁지에 몰린 쥐였을 뿐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곳, 발버둥쳐도 헤어날 수 없는 늪, 오직 한 탕만이 전부인 인생이다. 하지만 한 탕에는 댓가가 따랐다. 언제 죽게 될 지 모르는 사냥감 신세가 된 것이다. 도망다닌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이 없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 죽음뿐이다. 고양이를 상대로 하더라도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 세상 젊은이들의 신세가 [사냥의 시간] 처럼 궁지에 몰린 쥐와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처럼 물어뜯고 대항할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먼저 고양이부터 찾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고양이를 찾게 되면, 한바탕 으르렁대기라도 해볼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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