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1917]은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새로운 촬영, 편집 기법으로 관객의 눈길을 끈다. 마치 단 한 번의 촬영으로 영화 전체를 찍은듯하여, 관객은 주인공들과 함께 영화속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중간에 딱 한 번 암전을 제외하곤 컷팅된 흔적없이 화면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현장에 함께 있는듯한 몰입감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원 컨티뉴어스 숏은 영화 촬영과 편집 기술의 과도기적 출연으로 보아야 할듯하다. 돔 형태의 거대한 세트장을 짓고 천장에 수십대에서 수백대의 카메라를 설치한 후 촬영을 하는 볼류메트릭 기법이 곧 도입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볼류메트릭 기법이 일반화된다면 3D 영상은 물론 주인공 각각의 시선이나 심지어 말이나 자동차 등의 관점에서 끊기지 않는 화면을 얻을 수 있게된다. 초점은 연기자들이 어떻게 연기할 것이냐와, 수많은 정보데이터를 어떻게 편집하느냐로 옮겨갈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이런 촬영에 동영상정보데이터를 수집할 슈퍼컴퓨터 등 비용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엔 카메라 1대와 컴퓨터 1대로도 이런 촬영이 가능한 기술이 개발됐다고 한다. 머지않아 영화 [1917]은 원 컨티뉴어스 숏의 고전이 되거나, 또는 원시인의 돌도끼 정도의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2. 영화는 1917년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배경으로 한다. 독일군의 함정을 알아채고 멀리 떨어진 부대의 공격명령을 취소하도록 두 병사를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이 두 병사의 동선을 따라가며 일어나는 사건과 심리적 변화를 보여준다.

전투 중에도 목숨을 잃을 뻔한 적군을 살리려는 양심과, 두려움이 그 양심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호의를 살의로 되갚는 모습 속에서 전쟁의 참상을 비치고 있다. 또 함정 속으로 들어가는 작전을 말류하는 상관의 명령조차 무시하고, 오직 적군을 없애겠다는 맹목적 목표아래 전진을 외칠 지 모르는 장교가 등장한다. 반대로 지금이 절호의 기회임을 모르고 후퇴를 외쳤다가, 불리한 조건 속에서 죽음으로 내몰지 모르는 공격을 외치는 지휘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쟁은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를 죽이는 행위인 것이다.

 

3. 영화 [1917]은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는 스코필드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또한 나무에 기대어 쉬는 스코필드의 모습으로 끝난다. 영화 중간에선 폐허가 된 마을 언덕에 체리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열매를 수확할 수는 없지만 내년엔 더 크고 튼튼하게 자라나 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한자 휴休는 나무에 기대어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휴식이란 스코필드처럼 나무에 기대어 숨을 내쉬는 것이다. 휴식 속에서 평화를 느낀다. 생명이 자신의 생명력을 온전하게 쏟아붓고 나서의 평온한 휴식.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 이상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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