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기를 오직 몸을 쓰는 행위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또 경험으로 깨친 것, 즉 경력이 실력과 비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생각들이 틀린 생각은 아니다. 다만 절반정도만 맞다.
농사도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키우고자 하는 작물을 잘 알아야 농사도 잘 지을 수 있다. 물빠짐이 좋아야 잘 자라는 작물을 진흙밭에다 심어놓으면 헛일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실패를 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단지 실패만 하지 않을뿐 작물을 통해 최대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공부해야 한다. 식물 성장의 기본 원리는 물론이거니와, 작물별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연구소에서 내놓는 교과서만을 통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대학에서 배우는 식물생리학을 비롯한 원론, 개론서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식물이 자라는 환경, 즉 흙을 비롯해 햇빛과 강우량, 바람의 세기 등등에 따라 작물은 적응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에 대한 기본 지식에 더해 자신의 농장에 대한 철저한 파악과 아울러 새로운 시도를 통한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
청주에서 유기농으로 파프리카, 샐러리, 토마토 등을 재배하고 있는 김봉기 씨는 "내 밭에서는 내가 박사가 되어야 한다. 대학의 어떤 박사가 찾아와도 내 밭에서 농사짓는 것은 나보다 뛰어날 수 없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김 농부는 다른 이들이 유기농으로 키우기 어려워하는 작물들을 도맡아 키우면서 그 실력을 입증해오고 있다. 김 농부의 특징은 2~3년에 한번 꼴로 밭을 갈아서 숯가루를 집어넣는 방식에 있다. 다양한 토양 개량을 시도해왔지만 자신의 밭에서는 이 방법이 최상의 결실을 맺어왔다고 한다.(각자 밭의 환경에 따라 그 결과치가 다를 수 있다. 숯이 좋다고 무조건 밭에다 숯을 뿌리진 말아야 한다.)
충북 음성에서 유기농으로 고추와 인삼 등을 재배하고 있는 성기남 씨는 유기농 고추 재배에 있어서 손꼽히는 농부이다. 아마 전국 최초로 고추 재배에 있어 오이망과 같은 그물망을 이용해 고추를 지지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식물도 숨을 잘 쉬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을 고추에 적용한 사례이다. 기존 고추지지줄을 사용해 조여매는 방식이 아닌 그물망을 통해 자연스레 줄기가 뻗어나가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를 통해 고추가 건강하게 자라고 수확량도 크게 늘었다.
전북 완주의 영광포도원 강혜원 대표는 포도의 특성을 잘 활용함으로써 포도 스스로 건강하게 자라도록 재배하고 있다. 두둑 없이 풀을 키우는 방식으로 3,700평의 과수원을 혼자서 재배한다. 포도나무 한 그루당 12~50미터의 키를 자랑하고, 30종이 넘는 포도가 어울려 자라고 있다. 강 대표는 “포도나무가 스스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게 농사”라고 말한다. 그래서 일반 포도농장에서 하는 알솎기, 적심, 봉지 씌우기 등을 하지 않고도 고품질의 유기농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노동력 투입이 평균대비 1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퇴비나 비료 등 외부의 투입없이 풀을 키워서 그 풀을 자른 것으로 땅의 힘을 기른다. ‘풀이 보약’이라는 것이다. 좋은 땅을 만들어 병해충이 없도록 생산하고, 나무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농사 기술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생산량이 떨어지는 것은 대상 작물에 대한 이해와 기술 부족이기에,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유기농업이라고 해서 못생기고 벌레먹은 상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건넬 수 있도록 공부하고 연구하며 실천하는 것이 농부의 사명이지 않을까. 귀농하는 이들도 이런 마음자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