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맘때면 전국 어디를 가나 울긋불긋 단풍들로 반짝인다. 이불 밖이 위험하다고 집에 콕 박혀있기엔 아까운 시간이다. 감성이 묻어나는 가을 여행, 딸내미와 함께 오랜만에 경기도 양평을 찾았다.

양평하면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두물머리를 비롯해, 연꽃들이 가득한 세미원, 두물머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운길산의 수종사, 11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사, 여운형과 이항로 기념관 등등 가볼 곳이 많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을에 감성을 자극하며 첫사랑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드는 소나기 마을의 황순원문학관을 다녀왔다.

 

 

황순원 문학관 건물의 전체 모습은 소나기에 등장하는 수숫단 움집의 모형을 떠서 지었다고 한다.

 

황순원 작가의 고향은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대동군이다. 그런데, 황순원 문학관이 왜 양평에 있는걸까? 혹시 소설 속에서 양평을 배경으로 한 것이 있어서일까.

1953년 발표된 소설 <소나기> 중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라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양평에 황순원 작가를 기리는 문학관이 생기게 되었다.

황순원 문학관에는 황순원 작가의 연혁과 서재, 훈장,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 안에는 황순원 작가의 연혁과 유품, 훈장, 서재, 친필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 눈길을 끈 것은 평생동안 썼다는 면도기. 그분의 청렴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잘 정돈된 서재는 글쓰는 공간이 갖는 매력을 뿜어낸다.

이외에도 문학관 안에서는 작품의 배경을 재현한 전시 공간과 '소나기'를 비롯해 황순원 작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애니메이션 관람관, 소나기 체험을 위한 우산 만들기와 터널북 만들기나 소원편지 등등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소나기 마을에서는 매시 정각마다 소나기를 맞아볼 수 있는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황순원 문학관을 둘러보는 것은 아이들에겐 조금 따분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준비된 것이 바로 소나기 체험. 광장에서 매 시 정각마다 분수가 쏟아져 소나기를 맞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햇빛이 내리쪼일 때는 무지개도 볼 수 있다. 동그런 구에 달린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는 모두 4군데 인데 아이들이 이 분수를 찾아 쫓아다니는 모습은 마냥 신난다. 소나기의 아련한 첫사랑이야 어른들의 마음에 있고, 아이들에겐 소나기의 유쾌한 물장난이 좋을 뿐이다.

 

소나기 마을을 둘러싼 숲길을 걸으며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을엔 소나기 마을을 둘러싼 숲길을 걷는 것도 좋겠다. 10~15분 정도의 산책길에서 황순원 작가의 작품 속 글귀를 만나고, 또 소설 속 조형물도 마주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을 숲길이 주는 낭만적인 모습이 걸음을 느릿느릿하게 만든다.

소나기를 모티브로 한 조각같은데..어째 서양아이들 모습같아 낯설어 보인다 ㅜㅜ;

 

아이가 체험에 빠져 있는 동안 소설 '소나기' 속 아련하고 애틋한 첫사랑을 떠올리며 소나기 마을을 거닐어본다. 두근두근 대던 가슴, 죽을 때 꼭 함께 옷을 묻어달래던 잔망스럽던 아이의 그 마음을 언제부터 어디에다 혹여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가을 단풍은 이제 마음에도 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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