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티켓을 손에 쥘 땐 행복하다. 그것이 영화관이든, 극장이든, 미술관이든, 공연장이든 어디론가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영수증을 쥘 때는 참혹하다. 영수증에 찍힌 숫자들을 덜어내기 위해 오늘도 뛰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슬프게 만든다.

소설과 무슨 상관이냐고.

소설은 추리성격을 띠고 있다. 각 장마다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은 해결고리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반전이라고 할 수도 있는 사건의 결말은 그 단초가 이미 깔려져 있기에 놀랍다고도 또는 전혀 놀랍지않다고도 말할 수 없다. 대충 짐작가는 것이 맞을 때도 있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때도 있다. 그래서 일단 재미있다.

추리소설적 측면의 재미를 떠나 소설속 등장인물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바로 이 색다른 즐거움이 티켓과 영수증의 차이를 보여준다.

각자 애인과 도망치면서 쌍둥이의 부모는 단 한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서 가정을 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열세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나는 절절이 생각해본다. 인생이란 결코 드라마틱한 연애나 격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인생은, 기한이 지나지 않은 건강보험증이나 주택융자금 상환이 이달에 무사히 지불되었다는 은행의 통지서 같은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184쪽)

소설 속 주인공들은 색다른 가족 형태를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각자의 사랑을 찾아 아이들을 남겨둔 채 떠나버린다. 이 집에 도둑이, 소설 속 내가, 지붕 위에 올라섰다 벼락을 맞고 추락해 아이들 덕분에 살아난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가짜 아버지 노릇을 하게된다. 쌍둥이 아이들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만만치않다. 아마 소설이 계속 시리즈로 이어진다면 아이들의 여자 선생님과의 로맨스를 위해 결국 가짜 아버지 역할은 벗어나야 할 터이다. 아무튼 가족은 이리도 쉽게 분열되고, 새로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러지 말자. 서로 외로운 인간끼리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아닌가.(259쪽)

그러게 말이다. 핏줄이 주는 찐득함으로부터 벗어날 필요도 있다. 꼭 서로 부대껴야 할 필요도 없다. 관계를 맺는 방식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하늘을 흐르는 강이 어디서 끝나는지 누가 알까. 운명도 미래의 일도 그와 같은 것이다. 가야 할 곳으로 갈 따름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흘러가면서 즐겁게 살자.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니까.(358쪽)

영수증 때문에 슬퍼할 일이 있더라도, 티켓의 흥겨움을 잊지 말자. 비록 갈기갈기 영수증을 찢어버릴 수는 없더라도, 우리에겐 아직 티켓을 손에 쥘 여력이 남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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