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걸
마이조 오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당신은 살인마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소설은 살인마마저도 이해하는 친절한(?) 아이코가 주인공이다. 물론 처음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오면서 낙관론자로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삶이란 안개속을 걸어가는 길. 그저 죽지않고 살아가기 보다는 길을 걷는 즐거움을 얻는 게 좋을 것이다. 

걸어가야 할 길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만, 그 거리는 불화실하고 덧없는 거니까. 말하자면 길은 멀지만 거리는 무상하다는 거네. 바로 그거야. 자꾸 세상과의 거리감 따위를 생각하면 노구치 씨나 하스미 씨처럼 높은 데서 뛰어내리거나...(21쪽)

아이코는 아마도 중학생인 것 같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아니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사랑을 얻지 못하고, 화가 나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소문날까봐 근심걱정이다. 다음날 학교에서 아이들이 그 다른 남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를 화장실로 끌고 가고, 아이코는 먼저 선수를 쳐 마키의 얼굴을 박살낸다. 그런데 잠을 잔 그 남자아이는 실종됐다. 잘린 발가락만이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최근 세간에 빙글빙글 마야라는 살인마로 인해 시끄럽다. 세쌍둥이를 토막내고 유기한 살인범. 또 하늘소리 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폭동이 야기된다. 소설에선 살인마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대목이 한 부분을 차지한다. 세상이 온통 괴물이라면 괴물을 바라보는 삶을 살 것인지, 차라리 괴물이 될 것인지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혼자 부들부들 떨기보다는 차라리 괴물의 일부가 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262쪽)

가엾어와 귀찮아가 늘 서로 싸우고 있어. 요지의 소중한 가엾어가 꼴사납고 시시껄렁한 귀찮아한테 지지 않았으면 좋겠어.(95쪽)

아이코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 폭동이 일어나는 어수선할 때 자신을 찾아온 마키에게 망치로 일격을 당해 병원에 실려간다. 그러면서 마키가 죽음의 강을 건너는 장면이 환상으로 나타난다. 그 환상은 자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이 환상의 공간에 아이코를 살리고자 하는 사람과 그녀를 죽음쪽으로 데려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유혹 작전이 펼쳐진다. 이 공간은 순전히 자신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이 상상력 속에서 갑자기 아이코는 빙글빙글 마야라는 살인마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의 영혼이 살인마에게 빙의가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어떤 끈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이 부분 또한 상당히 재미있는 상상이다.

겨우 현실로 돌아와 숨을 쉬게 된 아이코. 그는 살인마의 머릿속을 경험한 덕분인지 살인마의 심성까지도 이해하게 된다. 살인마의 행위 그 자체도 결국 자신을 찾고자 하는 행복하고자 하는 즐겁고자 하는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로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지 어떤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즐겁다고 느끼는 마음이 진실이라면, 더 이상 문제될 게 없다. 만사 오케이. 나는 내 존재를 의심하는 것조차 즐기고 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건 즐거움이다....그러니까 지금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동은 본인들이 택한 가장 즐거운 일이다. .. 즐겁다. 여전히 멍청한 짓만 하고 있지만.(312쪽)

인간은 뭔가 즐거움을 찾아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314쪽)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다면 아이코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저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인 일들이니까 말이다. 그것이 모두 용납될 수 있을까? 귀찮아에서 벗어나 가엾어로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소설은 그 시선을 희생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돌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세상이 그토록 고리따분하게 돌아가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더라도 이해하라고...

 

사족:실은 가해자의 심리를 이해하기 보다는 인터넷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나게 만든 소설이기도 하다. 가상의 현실이 현실을 어떻게 유린해 가는지 소설은 조용히, 그리고 살며시, 그리고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니, 그냥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워낙 다른 이야기들이 강렬하다보니 잘 드러나지 않은 것 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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