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열린사회
김용환 지음 / 철학과현실사 / 1997년 8월
구판절판


'부정적 행위의 자발적 중지'가 '용납'보다 소극적인 표현인 것은 사실이나 관용 개념의 복잡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소극적 표현이 보다 유용할 것이다. 부정(반대)하면서 동시에 긍정(용납)하는 관용의 공식에서 생길 수 있는 모순과 역설적인 느낌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용납이라는 개념의 모호성을 피하기 위해서 용납이라는 말 대신에 '부정적 행위의 자발적 중지'로 대체하는 것이 적절하다.
-26쪽

반대하는 것(대상)에 대해 부정적인 행위를 자발적으로 중지했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용납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인종 차별 정책에 대해 반대, 저항 같은 부정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용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용납은 '복종', '강제적 시인', '묵인' 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관용 이외의 유사한 개념들로부터 관용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일을 곤란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관용은 본래 자발적 행위 또는 자유와 관련되어 있는데 복종, 강제적 시인, 묵인은 자유의 결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허가나 허용은 권리 개념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자유의 확대라는 관용의 기능과 어울리지 않으며 관용이 상호 교환적 행위임에 비해 일방적이다. 따라서 관용을 정의할 때 외연의 양이 많은 용납보단느 내포의 양이 증가된 '부정적 행위의 자발적 중지'를 택하는 것이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26-27쪽

관용되는 것에 대해 우선적으로 내려지는 부정적 평가(반대)는 개인의 존재론적 결점 같은 내재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불충분한 정보의 제공, 통치 집단에 의한 이데올로기적인 조종, 사회적 관습 같은 외부적인 요인들 때문에도 생겨난다. 실제로 사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ㅇ가하는 일과, 갈등을 일으키는 사물, 이념, 가치 체계들에 대해 불편부당하기란 곤란하거나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어떤 대상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내리거나 그것에 대해 전면적인 거부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30-31쪽

"도덕적으로 말해서 관용은 보다 많은 도덕적 자각을 제공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우리의 도덕적 공감을 확대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관용은, 인간을 목적으로서 그리고 존엄성과 고유한 가치를 지닌 합리적 존재로서 간주하도록 명령하는 칸트의 정언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일과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토마스 헌) -37쪽

... 관용과 불관용의 문제가 발생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의견, 행위 또는 행위가 예상되는 신념들이 동시에 주장되어야 한다. 충돌이 없이 서로 다른 의견을 단지 개진하는 한 관용과 불관용의 선택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둘째,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의견이 다르고 이해 관계도 서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다른 의견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동시에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제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57쪽

관용은 '권리'의 일종이 아니며 권위를 바탕으로 해서 A가 B에게 제공하는 '허가'(PERMISSIVENESS)의 일종도 아니다. 관용은 자유와 관련되어 있으며 자유를 확대하는데 목적이 있다. 자유없이는 관용도 있을 수 없다. 또 관용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반대'와 '부정적 행위의 자발적 중지'라고 했을 때 자발적 중지 속에는 이미 관용하는 사람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종교적 관용을 말할 때 이는 종교적 자유와 동일시될 수 있으며 근대 이후의 자유주의의 신장과 종교적 관용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77-78쪽

"정치적 행위들은 선한 삶에 대한 경쟁적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는 서로 다른 기질과 포부 그리고 종교적 신념들과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립성의 요구는 사람들에게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요구이며, 정부는 특정한 집단에 더 우호적이어서는 안된다."(수잔 멘더스)-81-82쪽

우리는 '다양성의 원리'로부터 한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더 우월하다는 독선주의가 그릇되며, 제도나 문화가 여러 가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독점적이고 유아적인 종교관을 고수하는 일이 위태롭다는 것을 배운다. -87쪽

가치 상대주의는 다양한 가치를 서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나의 가치도 다른 사람의 가치 못지 않게 옳고 좋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킬 필요가 없고 또 그런 가치에 근거를 둔 자신의 삶의 방식도 바꿀 필요가 없다고 믿게 만든다. 이런 믿음은 정체성을 띠기 쉽고 그런 정체성은 자기 반성력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반성력의 결핍은 '완전주의'로 나가게 만들며,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던 원래의 태도에서 오히려 배타적인 태도로 변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가치 다원주의는 상대적 가치들을 충돌시키고 비교하고 검토해서 보다 나은 가치의 창출을 기대한다.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해 가치의 탐구를 지속하려는 것이 가치 다원주의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상대주의에 머무는 순간 진보는 중단되고 논의는 정체되고 만다. 어떤 가치 판단도 완전하지 않다는 고백을 해야 하고 보다 나은 판단이나 이론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관용은 이런 가치 다원주의가 상대주의로 빠지지 않고 지속적인 실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117쪽

각주 6) 완전주의라는 말은 '어떤 사람 또는 그의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삶의 방식보다 본질적으로 더 열등하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본질적 차이와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평등주의와 대립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열등한 사람이나 삶의 방식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불관용적 태도가 이미 완전주의자의 의식 안에는 자리잡고 있다. - vinit haksar, Equality, Liberty, and Prefectionism, Oxford. 1979, p.1. -117쪽

규모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선의 의사 결정 방식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 다수결의 원칙이 종종 '다수의 전제'(tyranny of majority)로 전락하는 이유는 소수에 대한 정당하고 공정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소수 집단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언젠가는 소수도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다수결의 원칙이 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119쪽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란 달리 말하면 종교 선택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리고 선택은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지 강요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주의는 종교를 정통과 이단, 유일신 종교와 다신 종교, 토착 종교와 외래 종교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종교는 자율적 존재인 각각의 개인들이 자기의 양심과 성향에 따라 결정하는 선택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 경우 선택의 행위는 배타적 행위가 아니라 선택되지 않은 것과의 공존 관계가 반드시 성립되어야만 하는 포괄적 선택 행위인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적 자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교적 공존이 선행되어야 하고 모든 종교는 끊임없이 선택을 기다리는 열려진 상태로 남아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은 1회 이상 종교적 선택을 할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한다.-141쪽

'무한 경쟁 시대', '경쟁력 강화'라는 현실 인식이 개인의 생존 방식으로 강요되었을 때 발생하는 세 가지 도덕적 결함은 공통적으로 관용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경쟁의 논리를 극복하는 길은 관용을 실천함으로써, 그리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움으로써 가능하다.

첫째 무한 경쟁 또는 경쟁력 강화의 논리는 최소한의 생존이나 타자와 함께 공존하겠다는 방책이 아니라 '죽기 살기 경쟁'이며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겠다는 이기심과 탐욕을 그 바탕에 감추고 있는 전술이다. ... 중략 ...

둘째, 경쟁이라는 결정 방식 자체에 결함이 있다. 즉 경쟁은 불공정하기 쉽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다. 처음부터 경쟁은 공정한 게임이 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의 경우 그 게임의 규칙은 경쟁자 개인들의 차이성과 개별성을 대부분 무시한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라 비판될 수 있다. ... 중략 ...

셋째, 현실은 무한 경쟁의 시대이며 경쟁력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적자 생존의 법칙은 평등한 분배의 원칙 또는 분배적 정의 실현의 당위성을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결함을 가진다.-143-145쪽

대부분 이들이 보이는 배타성과 불관용성은 자기 충족적 확신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배제하고 불관용하는 것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거나 무엇이 사실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판단하려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에 그 불관용성과 배타성은 강화된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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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자의 글쓰기 - 책이나 논문을 쓸 때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낼 것인가?
하워드 S.베커 지음, 이성용ㆍ이철우 옮김 / 일신사 / 2006년 3월
품절


퇴고를 수없이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신은 초고의 엉성함과 일관성 결여에 대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초고는 발견을 위한 것이지 발표를 위한 것은 아니다.-45쪽

개요는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개요를 가지고 글을 시작하면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개요에 의존하여 시작하는 대신에, 모든 것을 적어 가면서, 가능한 한 빨리 아이디어를 토해내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 당신이 작업해야만 하는 미완의 부분은 당신이 방금 적어놓은 다양한 것들이다 - 을 발견할 것이다.-100쪽

'가장 쉬운 것부터 하라'는 원칙을 지킨다. 가장 쉬운 부분부터 쓰고, 논문들을 분류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허드렛 일들을 먼저 하는 것이다. ... 중략 ... 우선 당신이 써온 것에 관해 메모를 하고, 각각의 생각을 카드에 적는 것부터 시작하라. 원고에 적혀 있는 어떤 생각도 없애버리지 말라. 그런 생각들은, 그 순간에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 수 없을지라도, 여러 가지로 유용하다. –-101-102쪽

연구자는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기본적인 생각을 명료하게 해놓아야 한다. 연구자의 생각이 명료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은 이미 영향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최고 또는 최악으로 만들어 준다.-198쪽

* 여기서부터는 <한국 사회과학자의 존재 이유>(이성용 역자후기)에 관한 밑줄긋기입니다.
-0쪽

각주 : 그 강사는 저서의 변환과정을 아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그것은 '번역물->편저->저서'라고 웃으면서 말했다(이한우, 1995 : 311-314는 번역물이 저서로 바뀐 책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우선 교수는 대학원생과 박사실업자에게 논문을 나누어주고 번역을 시킨다. 이것이 번역물이 생성되는 첫번째 단계이다. 두번째 단계에서 박사실업자는 번역물을 총괄적으로 다듬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러 사람들이 번역했기 때문에 출판사에 편저로 출판하기로 결정한다. 책이 출판될 무렵, 원고가 괜찮다고 생각되면 교수는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저서로 바꾸라고 말한다(우리는 교수업적의 평가에 있어 번역물, 편저, 그리고 저서가 차지하는 점수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교수의 행위가 얼마나 합리적(?)인 행위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논문을 진짜로 번역해 주었던 사람들에게 저서를 작성하는데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머리말에 적는다. 교수가 저서에서 진짜로 작성한 글은 머리말 뿐이다. ... 중략... 이것은 우리 학계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교수의 권위주의적 폭력과 비양심적 자세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278쪽

학자들은 왜 표절과 짜깁기로 글을 쓰는가? 나는 전공에 대한 자부심의 결핍과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의무를 망각하는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학문세계가 없는 사이비학자들이 주도권을 잡은 학계에서는 표절과 짜깁기로 쓰여진 글들이 판치기 쉽다.-280쪽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사이비 학자가 자신의 상품을 과대 포장할 수 있도록 '간판'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간판의 정당성은 우리 사회의 피라밋 유형 구조에 의해 합리화되고, 교육제도에 의해서 강화되어 왔다. 사실상 우리 나라 사람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할 수있는 위치의 상당한 부분은 일차적으로 대학입시에 의해 결정된다. 고졸자보다 대졸자가, 그리고 비일류대학의 졸업생보다는 일류대학 졸업생이 좋은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에서 부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개인 또는 집단이 간판 또는 그 간판이 중심이 된 집단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챙긴다는 데 있다. 최근 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고학력자일수록 학연과 같은 연고에 집착하고 질서의식과 비판의식도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똑똑한 자일수록 자신의 연고를 이용하여 자신의 밥그릇을 더 확실하게 챙긴다는 것이다.-282쪽

우리 학계 피라밋의 최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일류대 교수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대개 일류대 출신이고 박사학위는 한국의 일류대나 외국의 유명대학에서 취득한 자들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일류 대학에 입학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우리 나라의 일류대학은 매년 그 당시에 가장 똑똑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선발하여 정원을 채워왔다. 이렇게 선발된 똑똑한 대학생 가운데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대개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원 과정에서도 경쟁에 승리한 자만이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국내 박사는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학위를 취득한다. 한편 외국 박사는 학부시절부터 외국어 공부를 하고, 외국의 유명대학에서 유학하여 학위를 취득한다. 일류대학의 교수는 이렇게 뽑고 또 뽑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한 일류대학 출신 박사학위자 가운데에서 또다시 선발된다. 이러한 과정 때문에 일반 사람(특히 비일류대학의 학생)은 일류대학의 교수를 거의 신적인 학문의 권위자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저술한 교재 또한 거의 '성경'처럼 생각한다. -283쪽

사이비 전공자는 자신의 성품을 '내용'으로 팔면, 고객이 자신의 상품이 불량품인 것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책의 내용보다는 자신의 업적과 지위를 강조하는 '껍데기'(또는 간판)로 자신의 상품을 선전한다. 자신에 대한 비판 역시 비판 내용보다는 비판 자체를 가지고 반박한다. "내가 누군데 감히 너 따위가 나를 비판해." 이와 같이 사이비 교수는 오직 '껍데기'(결과)만 중요시하지 '내용'(과정)은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암기식 교육을 선호하기 쉽다. 게다가 이치를 따지고 창의력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다보면 자신의 정체가 들통나기 쉽다. 자신의 지식을 최대한 포장함과 동시에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교육을 시킨다. 이러한 교수한테 교육을 받은 학생은 논리적 모순을 발견하고 표절과 짜깁기를 비판할 수 있는 '감시의 눈'을 가질 수 없다. 결과적으로 사이비 교수는 학계의 피라밋 구조뿐만 아니라 교육방식까지도 악용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시켜 왔던 것이다.-286쪽

각주 10 : 한국사회에서 교재의 질은 주로 조직의 힘에 의해 평가되지, 교재의 '내용'에 의해 평가되지 않는 것 같다. 출판사는 일류대학 교수의 권위와 연줄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저서를 출판하기를 희망하고, 또한 책의 출판을 결정할 때,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의 간판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많다. 출판사의 이러한 행위는 비도덕적인 교수와 합세하여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고객은 과대포장에 한번 속지 그 이상은 속지 않는다. 출판사는 편집과정에서 글이 표절과 짜깁기로 일관되었거나, 또는 논리적인 모순이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출판사는 저자의 간판보다는 저자가 쓴 내용을 가지고 출판 결정을 해야 한다. 저자 역시 출판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말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286쪽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이 말의 이면에는 교육이 잘못되면 그 나라의 국민은 100년 이상 고통의 나락 속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혼과 그것을 유지하고 창조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부실경영을 해서 회사를 부도낸 기업가들에게 사재를 털어 노동자에게 보상을 하라는 주장을 많이 해 왔다. 이제는 교수 자신이 부실교육을 한 대가에 대해 과연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온 것 같다.

각주 11 : 학계가 공멸할지라도 자신은 정년이 보장되어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교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교수조차 기억해야 할 법원의 판결이 있다. 자유당 말기, 많은 여성을 농락한 박인수 사건에서, 판사는 "법은 보호해줄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해 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교수의 정년보장도 학생과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하려고 노력하는 교수를 위한 것이지, 학생과 국민을 기만하고 자신만의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사이비 교수를 위한 것은 아니다.-289쪽

학계에서 논문의 질은 주로 논문이 실린 곳이 어디인가에 근거해서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출판된 경우 학술지에 실린 글에 최고 점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국내 학술지보다는 외국 학술지에 실린 글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평가방법에는 고려되어야 할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사회과학자의 글이 과연 누구를 위한 글인가? 사회과학자인가 아니면 사회과학에 관심있는 일반 대중인가?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과학자의 논문은 '해외수출용'보다는 한국인의 이익을 위한 '내수용'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291쪽

왜 대부분의 학술지들이 동료학자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글로 가득차 있을까? 학술지는 주로 학회회원들에게만 배부되고, 사회과학에 관심있는 일반 대중들은 구입하기 매우 어렵다. 그 결과 학술지의 주고객은 '국민'이 아닌 '학술지 회원'이 된다. 학술지 회원은 동료이지만 보이지 않는 경쟁자이다. 경쟁에서는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진짜 전공자가 드문 사회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서구에서 개발된 '최신 무기'를 과시하여 상대방의 기를 죽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이비 전공자들은 그 최신 무기가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고, 최신 무기를 보여준 사람을 어설프게 공격하다가는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 수 있다는 두려움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최신 무기를 가지고 남에게 폼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최신 무기를 소개한 신진학자들에게 입발린 칭찬을 하기 쉽다. 바로 이것이 학술지가 온갖 '서구의 최신 무기'들이 난무하는 학자들의 '지식과시의 전투장'으로 전환된 이유일 것이다. -291-292쪽

미래의 지식사회는 평생직장보다 평생직업이 강조되는 사회이다. 평생직장이 강조되는 현대 산업사회는 자신의 학문세계가 없는 학자일지라도 직장이란 울타리를 통해 자신의 일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 하지만 평생 직업이 강조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학문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자신의 무기가 없는 학자는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무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교수와 과목을 찾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사이비 전공자도 학생에게 생존무기를 내용대신 '간판'으로 줄 수 있다. 이는 미래 한국 사회에도 사이비 학자들이 영속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의미한다. 반면 진짜 전공자는 '내용'으로 학생의 무기를 만들어주며, 학계의 도덕성을 회복시켜 탄탄한 미래의 지식사회를 형성해주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제 학생들은 자신의 무기를 형성할 요인이 '간판'인가 아니면 '내용'인가를 결정할 중대한 시기에 왔다. 이러한 학생들의 결정에 따라 우리 나라의 미래는 크게 좌우될 것이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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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09-12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글도, 아프님도.

이잘코군 2007-09-13 00:17   좋아요 0 | URL
이 책 본문 보다는 역자의 후기가 더 멋집니다. :)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요즘 대학을 간다, 대학원을 간다, 하며 학력을 쌓는 것은, 대개는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인 경우이지 않을까. 나 역시 이기호씨의 이 글을 보고서 "등록금과 세월을 바친 만큼, 내 지식이, 내 의식이 한 뼘쯤이라도 성장했는가, 자문해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만다."  학력을 위조한 사람의 잘못을 탓할게 아니라, 자신의 학력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이들을 비난하기보다, 자기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나는 내가 획득한 학력과 학벌만큼이나 내 지식과 의식이 성장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봐야한다.

  나 역시 이기호씨의 이런 물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대학원을 다니는거야 학문의 목적보다는 - 물론 학문의 욕심도 있긴 하지만 -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 때문이고, 결국 대학원은 그 수단이 된 상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대학에 가고 대학을 졸업한게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남들이 수능시험 보고 대학에 가니깐, 나도 수능시험 보고 대학에 간거지. 고등학교 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대학을 가야할까, 왜 가야할까, 가서 뭐할건데, 라고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해봤다. 그리고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고, 그다지 열심히 공부에 임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목표의식이 없으니까. 

  그런데, 막상 고3이 되고, 수능시험을 보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게되더라. 그리고는 목표의식 없이 다니는 대학 대신에 밴드와 동아리에 열중했고, 결국은 목표를 찾기 위해 과를 바꾸는 시도까지 하게 된다. 이후로는 대학을 다니는 의미를 발견했다.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깨우침으로 다가왔고, 철학사적 지식은 깨우침을 위해 이용하고 버리면 된다, 지식은 중요치 않다, 그걸 통해 생각을 해라, 라는 마음가짐으로 나머지 3년을 다녔다. 그러나 다시 졸업 후 사회에 내던져진 상태에서 나의 최우선 관심은, 취직이었다. 결국 나 역시 "남들에 비해 뒤쳐진다는 두려움과, 사회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하길 바라는 욕망, 그 마음이 늘 학문보다 앞섰다."

 학력을 위조한 사람들은, 학력이 사회에서 얻어낼 수 있는 부분을 얻어내고자 했을 것이며, 그들은 위조된 학력으로 꽤 오랫동안 쉽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위조된 학력 덕분이 아니라 실제로 능력이 있고, 위조된 학력은 그것을 발휘할 기회를 잡는데 도움을 줬을 수도 있지만, 기회의 획득 마저도 위조된 학력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확실히, 사회에 나와 몸으로 느낀 점은, 사람의 됨됨이나 능력, 성실성 등과 관련없이 학력과 학벌은 기회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사실상 투덜거림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누군가를 평가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은 불공평해요, 라고 하기보단 에이씨, 정도로 그칠 수 밖에 없다. 좀 더 나은(?) 학력과 학벌을 갖춘 이보다 기회는 덜 오겠지만, 기회가 왔을 때 다른 걸로 잡을 수 밖에는 별 다른 수가 없다.

 이야기가 좀 샜지만, 이기호씨의 물음,"졸업장을 갖는다 해서 학력 위조에서 자유로운가? 너는 그래 대학을 나온 사람으로서, 얼마나 대학을 나온 사람처럼 행동했는가? 대학에선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라는 물음 앞에 나 역시 그와 같이 묵묵부답으로 고개를 떨군다. 

 * 학력위조 (이기호씨의 관련 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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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7-08-3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똑똑이들이 많다보니 사회가 참 피곤해 지는거죠.
알라딘 메인에 뜬 우석훈씨 인터뷰 봤어요? 의견은 많이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싸가지 없다고(잘난 체도 많이 하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인터뷰에는 괜찮은 내용들이 많이 보여요.

이잘코군 2007-08-30 18:30   좋아요 0 | URL
음 우석훈씨가 88만원 세대 쓰신 분이죠? 아직 인터뷰는 못봤는데.
저도 헛똑똑이에 들어가는지라 부끄럽습니다. 하핫.

비로그인 2007-08-3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을 나온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뭔가요?
질문이 마구 생기네요,대답은 쉽지 않으면서..

이잘코군 2007-08-30 18:34   좋아요 0 | URL
이기호씨의 의도는, 뭔가 더 알고 더 배운 사람답게 행동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지적하는거겠죠. 저는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요즘 대학진학율이 높고 예전의 고등학교 진학율만큼이나 되니 사실상 대학이 대학답지 못하게 되고, 대학의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는 거겠죠.

대학의 역할이란 것이, 시대가 변했으니 기업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는 직업훈련장으로 이해해야한다는 시각도 있을테고, 실용적 지식보다는 자기성찰과 사색을 유도하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을테고.

저는 시대야 어떻게 변하든 후자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사회가, 기업이, 사실상 전문대가 해야 할 역할을 일반 대학에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leeza 2007-08-3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이 지적 성장을 보증해주지 못하죠.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건 지적 성장이 가능하다 해도 지적 성장이 인격 성장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학력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단 하나일 거라 생각합니다. 주류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구~ 남들도 다 하는데 나만 하지 않으면 왠지 뒤떨어진다는 느낌~ 그리고 사회에서 그걸 인정해준다는 인정욕~
이번 사건을 볼 때 그런 사회를 먼저 탓해야겠지만, 그러기전에 우리의 '소위 대학 나온 사람은 뭔가 다르겠지? 그것도 일류대학이라면 더더욱~~~'이런 편견을 탓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락사스님의 의견은 어떤지도 궁금하고..해서 의견 남겨요. 좋은 글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네요~

이잘코군 2007-08-31 08:44   좋아요 0 | URL
지적 성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격 성장이 더 큰 문제군요. 결국 대학 나온 답게, 라는 말은, 기본적인 예의나 상호 존중의 태도 등을 비롯한 '인격'을 염두에 두는 거겠죠. 어쩌면 님 말씀처럼 대학 나온 이들에 대해 뭔가를 요구하고,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어떤 편견을 가진 의식이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을 나왔건, 서울대를 나왔건, 박사학위를 취득했건 우리는 사람이라면 의당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상호존중의 태도를 '누구에게나' 요구해야할텐데. 이런 기본도 지켜지지 않는데 그 이상의 뭔가를 요구하는건 또 무리인가도 싶군요. 언제나 바람뿐이죠.

2007-08-31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즈행복 2007-08-31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나온 사람이 뭔가 다르다면, 잇속에 더 밝은것이 다른점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사실상 요즘의 대학은 아프님 말씀대로 예전의 대학이 아니잖아요. 정말 예전 고등학교밖엔 안되는데요,뭐. 얼마 안 있으면 대학 정원이 신입생수보다 많아질거라는 얘기도 있고.
대학에 너무 많은것을 기대하고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전에 정말 아무나 못 가던 그 시절을 생각하고서?
사회전반적으로 학력상승은 이뤄어졌으나 의식상승은 커녕, 모두 돈에 더 얽매이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명문대를 나온 것과 소득과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말도 하잖아요? '저 사람은 S대 나왔는데도 지방대 나온 사람보다도 못버네?' 하고 말예요. 전적으로 대학을 경제적인 잣대로만 보고 있잖아요. 심지어는 연예인도 S대 나왔다는 이유로 뜨고... 누가 그랬더라? 미모와 연기만 보면 되는 연예인은 학력을 보고 있고, 학력과 실력만 보면 되는 회사에서는 미모를 보고 있다고.
어디 학력문제 뿐이겠어요?
아~ 모르겠다. 수습이 안되네요. 그냥 쉬어야겠네요.

이잘코군 2007-08-31 08:39   좋아요 0 | URL
어쩌면 대학에 너무 많이 바라는 게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일까요. 대학, 학력, 학벌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확 모든 대학의 이름을 없애버리고, 서울 1대학, 서울 2대학 이러면 어떻게 될까 싶어요. 또다른 부작용이 생기려나요.

비로그인 2007-08-3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

이잘코군 2007-08-31 11:24   좋아요 0 | URL
하하 아니 테츠님 뭐하시는거에요. 크크. 저도 7.

2007-08-31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방마니아 2007-08-3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글 잘 읽었다.

이잘코군 2007-09-02 11:36   좋아요 0 | URL
:)
 


 요새 검색로봇이 도는지 아니며 다른 이유 때문인지 방문자 숫자가 부쩍 늘었다는 분들이 많으시다. 얼마전 무화과나무님께서는 서재 즐찾은 얼마 없다고 하시는데 하루 방문객이 천 명이 넘기도 했다고. 즐찾 대비 방문자가 몇이나 되느냐를 스스로 따져보면 검색로봇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지를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다. 내 경우는 즐찾 대비 방문자 숫자는 무난하게 나오는 편이다. 언제나 즐찾 숫자를 넘긴 적이 없고, 즐찾의 대략 절반에서 2/3 수준 정도가 매일 방문해주시는데, 페이퍼나 리뷰를 작성할 경우 많을 땐 2/3 에서 3/4 정도가 찍히고, 글을 안쓰는 날에는 절반 못미쳐까지도 나온다. 

  알라딘이 서재 2.0으로 변신하면서 달라진 부분 중 방문자 숫자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는데, 페이퍼 작성시 자동체크되는 '블로그 메타사이트(올블로그, 블로그코리아)'가 그것이다. 이곳을 통해서 알라딘 외부의 방문객들도 해당 서재를 드나들 수 있는건데, 개인적으로 나는 예상치 못한 불특정 다수의 방문은 달갑지 않은지라 페이퍼 작성시 자동체크 되는 이곳을 항상 제거해내고 있다. 다른 곳에도 물론 블로그를 개설해놓고 있는데 - 거의 요새는 활동 안하고 있지만 - 그곳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올블로그니, 블로그코리아니 기타 등등의 블로그들의 집합소가 되는 메타 사이트로 트랙백을 보내지 않는다. 네이버면 네이버, 예스면 예스 그곳의 사람들하고만 교류를 희망하기 때문에. 

  올블로그나 블로그코리아 등의 메타 사이트와 각각의 블로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불특정 다수인것은 사실이고, 최초 만남에서 그 분들이 누군인지는 모르지만, 느낌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각각의 블로그들은 구성된 형태에 따라서 각기 다른 소통 구조를 갖고 있고, 이것을 뛰어넘는 방식이 메타 사이트라고 생각한다. 불특정 동네 주민들과 조우하느냐, 아니면 배타고 기차타고 산넘고 물건너 먼 곳에 있는 낯선 사람들에게까지 나를 공개하느냐의 차이랄까. 물리적인 거리로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블로그 내 존재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를 내보이는 것 이상으로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길 원한다면 나는 메타사이트에 체크된 상태로 글을 작성하겠지만, 아직까진 그런 필요를 못느끼고, 지금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들의 동네 주민들과 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현재는 다른 네이버나 예스 같은 곳은 활동여력이 닿지 않아 - 오프에서 신경 쓸 것, 할 것이 많아 - 당분간 중지한 상태다. 요말은 달리 해석하면, 내가 가장 놀기(?) 좋아하는 곳이 알라딘 서재라는 말이기도. 네이버는 운영해본 결과 꾸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판단에 창고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찾아올 분은 찾아오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식. 

  어떻게 보면 메타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닫혀있는 서재라는 느낌도 들지만, 어차피 보여주는 차원 밖에 되지 않는다면, 활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블로그의 개설 목적은 또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꾸는 것인데, 일회적인 소통구조 방식이거나, 나만 노출하고 불특정 다수는 바라보는 식이라면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고, 따라서 목적이 상실되었으니 차라리 외관상 닫혀있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지금 이곳에서만도 충분히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고, 그 분들도 나를, 나도 그분들의 생각을 보고 댓글을 달고 함으로써 대화가 가능하다. 물론, 방문자 숫자에 비해서 소통을 하는 분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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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즐찾의 의미
    from 아프락사스, 자유를 찾아서 2007-09-15 10:58 
      로쟈님의 페이퍼를 읽다가 든 생각. 현재 즐찾이 1300까지 늘어났다시면서 앞으로 몇백이 더 늘어나면 스스로 떠나야하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듯 하다. 한쪽으로 쏠리는건 바람직하지 않다시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떠나는게 좋을거라고. -_- 해서 로쟈님의 페이퍼에 댓글을 달다가 즐찾이 뭘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개인적으로 로쟈님이 떠나시는건 원치 않는다. 떠나고 말고야 로쟈님의 선택이지만, 지금 떠나시겠다는 것도 아니지
 
 
하이드 2007-08-30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얘기가 있지요. 내 방문자 수가 많으면 날 찾아온거고, 남의 서재 방문자수가 많으면 검색로봇인거고 ㅋㅋ

근데, '체크 안하는' 게 아니라, '체크 해야' 등록이 안 되지요.
올블로그 같은 경우에는 외국의 블로그같이 전문적인 분들도 많더군요. 올블이 싸이나 알라딘등으로 인해 '오염?'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많고, 요즘 인기있는 글 중 하나는 '네이버 블로그는 블로그도 아니다' 라고 하니, 뭔가 또 다른 세계더군요. 재미있어요.

즐찾개념도, 즐찾수는 꾸준히 늘고 있긴 하지만, 제 서재를 찾는 분들이 이제는 알라딘 즐찾이 아니라, 인터넷 즐찾을 얘기하는 경우도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즐찾수에 일희일비 하던 시절은 가는 것인가? 두둥-

그나저나, 이왕 '올블로그, 블로그코리아' 체크 '안 하시는' 분들이라면,이제 이유도 알았으니, 촌스럽게 이제 그만 놀랍시다.

이잘코군 2007-08-30 00:08   좋아요 0 | URL
하하. 그렇게도 볼 수 있군요. 클클.

아, 표현이 -_- 그게 그렇게 되나요. 음. 브이 표시를 제거했다는 의미해서 체크를 안했다라고 표현했는데. 오해의 소지도. 올블로그 이런데는 거의 안가요. 가서도 소통을 이루는거라기 보다는, 그냥 어떤 글이 있나 유람차 가는거죠. 일회적인.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꾸려가면 될거 같아요. 저도 네이버는 블로그도 아니다, 에 동감입니다. 근 1년 꾸렸나, 꾸려보니 그냥 개인 창고에요. -_-

즐찾도 음 그쵸. 알라딘 내에서나 '즐찾'이지, 외부로 나가면 주소를 즐찾하겠죠. 오래 전에는 즐찾 100 넘으면 막 자랑질하던 때가 있었는데, 하하. 이젠 별로 신경 안씁니다. 저는 검색로봇 지나간 적도 별로 없고, 방문객이 예상보다 많은 적도 없어서, 놀랄 일이 없어요. 크크.

하이드 2007-08-3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도 1000넘으면 막 자랑질 할꺼에요. ㅋㅋ

아,그리고, '체크' 에 대한건 '체크되어 있는 것'이 디폴트라, 그걸 제거하려면 부러 '체크를 지워' 줘야 되는 귀찮음이 있고, 버릇되면 괜찮겠지만, 자꾸 까먹는 것도 있고, 글쵸 뭐

이잘코군 2007-08-30 00:16   좋아요 0 | URL
하하하. 천 넘으면 자랑질 할 만하죠. 지금까지는 로쟈님하고 바람구두님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면 다른 분들이 자랑질을 안했거나. 천은 어휴 바라지도 않아요. 부담스러워요 지대한 관심이.

저도 올블로그 체크 그거 까먹고 그냥 글 쓰고 저장 눌러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다시 원글 지워버리고 복사 해다가 새창에 옮겨서 체크를 제거하고는 글을 저장합니다. 전 워낙 개인사를 이곳에 많이 드러냈기 때문에 여기저기 트랙백 보내고 싶진 않아요.

뽀송이 2007-08-3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글 작성하고는 체크를 풀어야 다른 동네로 안 간다는 거 맞죠?
저야 워낙~ 평범한 이야기라 별 상관은 없지만,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불편하거든요.^^;;

이잘코군 2007-08-30 10:28   좋아요 0 | URL
네. 작성하고 체크를 풀어줘야 메타 사이트로 가지 않아요. 괜히 쓸데없이 방문자 숫자만 늘리고 싶진 않아서 전 항상 빼요. 나중에 거기로 보낼만한 글에 대해서는 또 선별적으로 작업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필요를 못 느낍니다.

비로그인 2007-08-3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알았네요.
좋은 정보 고마워요.

이잘코군 2007-08-30 12:41   좋아요 0 | URL
앗, 이거 의외로 모르시는 분들 많더라고요. 그냥 글 쓰면 저장 눌러버리시는 분이 많은듯. 저는 이게 뭘까 뭘까, 하다가 2.0 개편 이후 알고선 체크된거 제거하고 저장해요.

잉크냄새 2007-08-3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거 체크하고 올립니다. 알라딘 말고 다른곳에 노출된다는 것이 왠지 싫더군요. 근데 저번에 노출해도 전체 즐찾의 50% 정도의 방문자가 생기더군요.

이잘코군 2007-08-30 13:08   좋아요 0 | URL
음, 네 저도 꺼림칙해요. 이곳 사람들과의 교류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더 이상 눈팅 방문객을 늘리고 싶진 않아서. 방문자 숫자는 즐찾의 절반에서 2/3 정도면 딱 좋습니다. 즐찾 숫자를 넘어서는건 원치 않고.

비로그인 2007-08-3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괜한 거품방문객은 사절이라
체크표시 귀찮긴 해도 꼭 제거한답니다. :)

라로 2007-08-3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거였군요~~~. 저두 넘 개인적인 얘길 많이 하는 편이라
모르는 방문은 부담스러워요.
이젠 가려가면 체크를 해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해요.

로쟈 2007-08-30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타블로그란 걸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메타블로그에서는 알라딘에 무얼 제공하는 건지 궁금하네요. 흠...

이잘코군 2007-08-30 15:32   좋아요 0 | URL
아래 한꺼번에 댓글 달고 나니 로쟈님 댓글이. :)
로쟈님도 모르셨던건가요? 그럼 여태 페이퍼에 체크된 채로 내보내셨겠군요.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메타블로그에서 알라딘에 뭘 제공하는지는. 뭔가 오가는게 있긴 하려나요?

하이드 2007-08-30 16:44   좋아요 0 | URL
그마만큼 알라딘을 많이 노출시켜 주겠지요. 그 메타블로그 유저들이 고민은 메타블로그(제가 본건 올블로그의 글이었습니다만) 의 글의 질이 떨어진다. 는거. 알라딘 뿐 아니라, 싸이하고도 알라딘처럼 연동되어 있는데, 포스팅을 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메타블로그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잘코군 2007-08-30 18:29   좋아요 0 | URL
신변잡기식의 글들이 질을 떨어지는 대상이 될 거 같은데, 음 대개는 글쓰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거 같습니다. 그러니 글 쓰는 사람 탓하기도 뭣하고, 올블로그 측은 최대한 많은 블로거들을 확보하려다보니 이런걸 방치하고 있는 거겠죠. 저는 올블로그나 또 뭐지, 음 이런 메타블로그엔 가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어떤 글이 또 메타 블로그에 올라갈만한건지에 대해서도 사람들마다 의견이 또 다르겠죠. 신변잡기여도 뭔가 꺼리가 있는 글은 괜찮으냐, 아니면 또 정치나 시사적인 이야기만 되느냐. 등등. 알라딘에도 모르고 체크된 채로 글 내보내시는 분 많은거 같습니다.

이잘코군 2007-08-3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냐옹씨 / 나도 귀찮아도 항상 제거. 거품 목욕은 좋아하는데(?) 거품 방문객은 별로라. 므흣.
나비님 / 넵. 개인적인 야기들이 넘 많아서, 뭣해요. 미니홈피에서보다 더 저를 드러내기 때문에.
크리에이터님 / 히키코모리 이신가요? :) 저도 댓글도 로그인한 사람만 허용했어요. 어차피 여기에 둥지 틀은 사람들 밖에 안오고, 외부인이 온다하더라도, 계정만 만들면 댓글 달 수 있는거니깐 열려있다고 봐야죠. 닫혀있는거 같아도 닫혀있는게 아니에요.

비연 2007-08-3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런 기능이었군요. 뭔가 했네..ㅋㅋㅋ 알려주셔서 감솨~

이잘코군 2007-08-31 10:24   좋아요 0 | URL
모르는 분들 의외로 많아요. :) 비연님도.

프레이야 2007-08-3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사로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니 체크를 풀어야겠다 싶어 오늘은 풀었어요. 그랬더니
그 이상하고 어지럽던 숫자가 사라졌어요. ㅎㅎ

이잘코군 2007-09-20 11:26   좋아요 0 | URL
^^
 

  
  어릴 적 우리집은 주인집에 세들어 사는 방 두 칸 짜리의 공간만을 가진, 집이라 하기엔 부엌도 거실도 화장실도 없는 부족한 공간이었다. 연탄 아궁이에서 연기가 폴폴 올라오며 퀘퀘한 냄새를 풍겼다. 종종 티비 속에서 아나운서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이 사망했습니다, 라는 멘트를 내보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이러다 우리 가족도 그리 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리부터 연탄가스를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꼼꼼한 어머니 덕분에 언젠가부터는 마음 놓고 편히 잘 수 있었다. 가끔 연탄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도 했지만, 그건 우리에겐 으레 있었던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럼 가게에서 번개탄을 하나 사다가 연탄과 함께 집어넣기도 했다. 그럼 곧 살아나는 불꽃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밤 10시가 되면 우리집 네 식구는 좁은 방에 낑겨 누워 어두운 방구석을 환히 비추는 텔레비젼 화면만을 뚫어져라 봤다. 아버지는 제일 아래서 가로로 누워서, 나와 동생과 어머니는 세로로 누워서, 고개를 바짝 들고 티비로 눈을 모았다. 그땐 무슨 특공대 같은 외화시리즈를 밤 10시에 내보내줬는데, 나는 이걸 보기 위해 졸린 눈을 부비며 어떻게든 깨어있으려고 해봤지만 반은 보고 반은 보지 못했던거 같다. 티비는 유일한 놀이기구였다. 네 식구에게. 어머니는 드라마를 봤고, 아버지는 중국 무협 시리즈물이나 홍콩영화를 빌려와 매일같이 비디오를 봤고, 나는 딱히 보고자 하는거 없이 여기저기 끼어서 다 봤더랬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르고, 인터넷이란게 생기고 난 뒤, 내 개인 컴퓨터가 생기고 난 뒤, 나는 식구들과 함께 티비를 시청할 일이 별로 없었다. 내게 장난감은 이제 인터넷 되는 컴퓨터였으니까. 밖에서 어머니가 드라마를 보면, 난 그 시간에 다른 뭔가를 보기 위해 어머니를 조르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와 방송국 사이트에 접속해 온라인  팝업창을 띄우고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티비를 잘 안보지만 집구석에 홀로 남았을 때, 방에서 나가 과자 부스러기라도 먹을라치면, 입은 심심치 않아도 눈이 심심해 티비를 켜곤 했다. 주로 보는 채널은 케이블 영화채널이나 YTN. 며칠 전에도 나는 역시나 마찬가지로 빵 부스러기를 주워먹다 심심해 티비를 켰는데, 이게 웬일. 화면이 지지직 거리고 안나온다. 고장나있었던거다. 며칠전부터. 못해도 13년은 사용한 듯 싶다. 고장날 때 됐지. 암.

  그날 저녁, 어머니에게 티비가 고장났다 말했다. 며칠전부터 그랬다고 한다. 고쳐야 되지 않겠느냐 말했다. 너무 오래 써서 고치기도 힘들거라 말씀하셨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봤지만 출장비를 일단 주고 와서 봐야하고, 그 다음에 진단을 내릴 수 있다 했다. 나는 혹시라도 싸게 수리할 수 있지 않느냐 했다. 어머니는 너무 오래써서 안될거라 했다. 어차피 수리비 주느니 그냥 이참에 새 걸로 사자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아침, 결국 우리집은 최신형 디지털 티비를 구입했다. 어머니가 일 나가시기 전 아침, 부랴부랴 내가 출력한, 인터넷 구매가가 인쇄된 종이를 들고, 함께 하이마트로 가서 티비를 구경했다.

  인터넷가 보다는 확실히 비쌌지만, 점원은 유통구조가 다르고, 부품도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는 쓰여져있는 가격보다 몇 만원을 내려 불렀고, 결국 어머니는 삼성 29인치 디지털 티비를 고르셨다. 오늘 설치해주면 좋으련만, 물류창고가 인천에 있는 관계로 시간이 걸린다고 내일 아침에 설치해주겠단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우리집엔 13년 넘은 덩치 커다란 낡은 티비 대신 삐까뻔쩍한 29인치 디지털 티비가 들어온다. 2007년 봄에 나온 상품이니 최신형 티비다.

  좁디 좁은 집안 구석구석의 낡은 전자제품들이, 지녀온 세월만큼이나 신호를 보내고 있다. 티비를 시작으로 서서히 하나 둘 그들을 대체할 새 제품들이 들어올테지. 정겨움이 낯섬으로 바뀌는 아쉬움 보다는, 옛 물건을 버리고 새 물건을 들여놓는 즐거움보다는, 이번엔 얼마의 목돈이 나갔을까 하는 계산이 앞선다. 내 돈은 아니지만 언제까지고 일할지 알 수 없는 어머니에게, 돈이 있어야, 나도 집구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깔려있달까. 그래서, 집안의 전자제품이 바뀌는건, 새로운 제품이 들어오는건, 내겐 별로 달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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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ei 2007-08-26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내셨군요. 울집에 테레비가 들어온건 아마 고2때인가?

이잘코군 2007-08-26 21:13   좋아요 0 | URL
흐흣. 그렇게 되는건가요? :)

2007-08-26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6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즈행복 2007-08-2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이유로 TV를 거의 못봤죠. 대신 그래서 지금도 TV를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불행이 역으로 행이 된 것인가?
TV에 정붙이시지 마시고 논문에 정을 붙이세요~^^

이잘코군 2007-08-27 09:55   좋아요 0 | URL
티비는 밥 먹을 때나, 쉴 때, 좋아요. 집이 고요하면 외롭잖아요. 전에 어떤 프로그램 보니 일본에서는 밥 혼자 먹으며 외로워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를 쳐다보면서 밥을 먹는 사람을 찍은 비디오도 팔고 있더라고요. 티비 속의 사람과 같이 눈 마주치면서 밥 먹으라는거죠. -_-

네꼬 2007-08-27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 페이퍼 읽으니까 입에서 쓴 맛이 났어요. 이 맛은, 나이의 맛일까요. 이런 건 쏘주로 헹궈야 하는데. (아저씨 고양이 모드)

이잘코군 2007-08-27 18:58   좋아요 0 | URL
엇, 소주를 줄라고 했는데, 그림 끌어오는게 없네. -_- 에디터가. 왜 이제 알았을까. 냐옹이 담에 보면 소주 줄게.


다락방 2007-08-28 00:07   좋아요 0 | URL
냐옹이 소주 줄때는 다락방도 함께 하기!!

이잘코군 2007-08-28 07:40   좋아요 0 | URL
다락방도 소주 물려야돼? 크크크.

도넛공주 2007-08-2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의 이 글을 보니 저도 막 추억에 얽힌 글이 쓰고싶어지네요.

다락방 2007-08-28 00:08   좋아요 0 | URL
저는 도넛공주님 추억에 얽힌 글이 막 읽고싶어지네요. :)

이잘코군 2007-08-28 07:40   좋아요 0 | URL
도넛공주님의 과거사를 끄집어내세요. :)

leeza 2007-08-28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비에 대해서 쓴 글인데도 왠지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네요~ 티비하면 어렸을 때 그걸 못 보게 하려고 티비를 숨겨 놓으신 부모님과 했던 실랑이가 생각나요. 그 땐 티비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큰 일처럼 느껴지던지ㅋ 삼일간의 단식투쟁으로 결국 티비를 돌려받던 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었더랬죠. 좋은 글 감사하고요. 다음엔 어떤 담론이 펼쳐질지 은근 기대되네요~

이잘코군 2007-08-28 07:41   좋아요 0 | URL
아 저희는 숨겨놓고 그러진 않았는데. 원래 감추고 숨기면 더더욱 하고싶은게 마음인지라. 티비 없으면 정말 심심해요. 본인이 티비에 몰입하지만 않고 알아서 골라 볼수만 있으면 유용한 기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