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열린사회
김용환 지음 / 철학과현실사 / 1997년 8월
구판절판


'부정적 행위의 자발적 중지'가 '용납'보다 소극적인 표현인 것은 사실이나 관용 개념의 복잡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소극적 표현이 보다 유용할 것이다. 부정(반대)하면서 동시에 긍정(용납)하는 관용의 공식에서 생길 수 있는 모순과 역설적인 느낌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용납이라는 개념의 모호성을 피하기 위해서 용납이라는 말 대신에 '부정적 행위의 자발적 중지'로 대체하는 것이 적절하다.
-26쪽

반대하는 것(대상)에 대해 부정적인 행위를 자발적으로 중지했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용납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인종 차별 정책에 대해 반대, 저항 같은 부정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용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용납은 '복종', '강제적 시인', '묵인' 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관용 이외의 유사한 개념들로부터 관용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일을 곤란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관용은 본래 자발적 행위 또는 자유와 관련되어 있는데 복종, 강제적 시인, 묵인은 자유의 결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허가나 허용은 권리 개념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자유의 확대라는 관용의 기능과 어울리지 않으며 관용이 상호 교환적 행위임에 비해 일방적이다. 따라서 관용을 정의할 때 외연의 양이 많은 용납보단느 내포의 양이 증가된 '부정적 행위의 자발적 중지'를 택하는 것이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26-27쪽

관용되는 것에 대해 우선적으로 내려지는 부정적 평가(반대)는 개인의 존재론적 결점 같은 내재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불충분한 정보의 제공, 통치 집단에 의한 이데올로기적인 조종, 사회적 관습 같은 외부적인 요인들 때문에도 생겨난다. 실제로 사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ㅇ가하는 일과, 갈등을 일으키는 사물, 이념, 가치 체계들에 대해 불편부당하기란 곤란하거나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어떤 대상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내리거나 그것에 대해 전면적인 거부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30-31쪽

"도덕적으로 말해서 관용은 보다 많은 도덕적 자각을 제공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우리의 도덕적 공감을 확대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관용은, 인간을 목적으로서 그리고 존엄성과 고유한 가치를 지닌 합리적 존재로서 간주하도록 명령하는 칸트의 정언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일과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토마스 헌) -37쪽

... 관용과 불관용의 문제가 발생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의견, 행위 또는 행위가 예상되는 신념들이 동시에 주장되어야 한다. 충돌이 없이 서로 다른 의견을 단지 개진하는 한 관용과 불관용의 선택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둘째,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의견이 다르고 이해 관계도 서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다른 의견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동시에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제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57쪽

관용은 '권리'의 일종이 아니며 권위를 바탕으로 해서 A가 B에게 제공하는 '허가'(PERMISSIVENESS)의 일종도 아니다. 관용은 자유와 관련되어 있으며 자유를 확대하는데 목적이 있다. 자유없이는 관용도 있을 수 없다. 또 관용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반대'와 '부정적 행위의 자발적 중지'라고 했을 때 자발적 중지 속에는 이미 관용하는 사람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종교적 관용을 말할 때 이는 종교적 자유와 동일시될 수 있으며 근대 이후의 자유주의의 신장과 종교적 관용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77-78쪽

"정치적 행위들은 선한 삶에 대한 경쟁적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는 서로 다른 기질과 포부 그리고 종교적 신념들과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립성의 요구는 사람들에게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요구이며, 정부는 특정한 집단에 더 우호적이어서는 안된다."(수잔 멘더스)-81-82쪽

우리는 '다양성의 원리'로부터 한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더 우월하다는 독선주의가 그릇되며, 제도나 문화가 여러 가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독점적이고 유아적인 종교관을 고수하는 일이 위태롭다는 것을 배운다. -87쪽

가치 상대주의는 다양한 가치를 서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나의 가치도 다른 사람의 가치 못지 않게 옳고 좋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킬 필요가 없고 또 그런 가치에 근거를 둔 자신의 삶의 방식도 바꿀 필요가 없다고 믿게 만든다. 이런 믿음은 정체성을 띠기 쉽고 그런 정체성은 자기 반성력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반성력의 결핍은 '완전주의'로 나가게 만들며,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던 원래의 태도에서 오히려 배타적인 태도로 변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가치 다원주의는 상대적 가치들을 충돌시키고 비교하고 검토해서 보다 나은 가치의 창출을 기대한다.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해 가치의 탐구를 지속하려는 것이 가치 다원주의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상대주의에 머무는 순간 진보는 중단되고 논의는 정체되고 만다. 어떤 가치 판단도 완전하지 않다는 고백을 해야 하고 보다 나은 판단이나 이론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관용은 이런 가치 다원주의가 상대주의로 빠지지 않고 지속적인 실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117쪽

각주 6) 완전주의라는 말은 '어떤 사람 또는 그의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삶의 방식보다 본질적으로 더 열등하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본질적 차이와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평등주의와 대립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열등한 사람이나 삶의 방식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불관용적 태도가 이미 완전주의자의 의식 안에는 자리잡고 있다. - vinit haksar, Equality, Liberty, and Prefectionism, Oxford. 1979, p.1. -117쪽

규모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선의 의사 결정 방식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 다수결의 원칙이 종종 '다수의 전제'(tyranny of majority)로 전락하는 이유는 소수에 대한 정당하고 공정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소수 집단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언젠가는 소수도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다수결의 원칙이 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119쪽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란 달리 말하면 종교 선택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리고 선택은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지 강요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주의는 종교를 정통과 이단, 유일신 종교와 다신 종교, 토착 종교와 외래 종교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종교는 자율적 존재인 각각의 개인들이 자기의 양심과 성향에 따라 결정하는 선택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 경우 선택의 행위는 배타적 행위가 아니라 선택되지 않은 것과의 공존 관계가 반드시 성립되어야만 하는 포괄적 선택 행위인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적 자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교적 공존이 선행되어야 하고 모든 종교는 끊임없이 선택을 기다리는 열려진 상태로 남아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은 1회 이상 종교적 선택을 할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한다.-141쪽

'무한 경쟁 시대', '경쟁력 강화'라는 현실 인식이 개인의 생존 방식으로 강요되었을 때 발생하는 세 가지 도덕적 결함은 공통적으로 관용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경쟁의 논리를 극복하는 길은 관용을 실천함으로써, 그리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움으로써 가능하다.

첫째 무한 경쟁 또는 경쟁력 강화의 논리는 최소한의 생존이나 타자와 함께 공존하겠다는 방책이 아니라 '죽기 살기 경쟁'이며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겠다는 이기심과 탐욕을 그 바탕에 감추고 있는 전술이다. ... 중략 ...

둘째, 경쟁이라는 결정 방식 자체에 결함이 있다. 즉 경쟁은 불공정하기 쉽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다. 처음부터 경쟁은 공정한 게임이 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의 경우 그 게임의 규칙은 경쟁자 개인들의 차이성과 개별성을 대부분 무시한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라 비판될 수 있다. ... 중략 ...

셋째, 현실은 무한 경쟁의 시대이며 경쟁력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적자 생존의 법칙은 평등한 분배의 원칙 또는 분배적 정의 실현의 당위성을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결함을 가진다.-143-145쪽

대부분 이들이 보이는 배타성과 불관용성은 자기 충족적 확신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배제하고 불관용하는 것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거나 무엇이 사실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판단하려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에 그 불관용성과 배타성은 강화된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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