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집은 주인집에 세들어 사는 방 두 칸 짜리의 공간만을 가진, 집이라 하기엔 부엌도 거실도 화장실도 없는 부족한 공간이었다. 연탄 아궁이에서 연기가 폴폴 올라오며 퀘퀘한 냄새를 풍겼다. 종종 티비 속에서 아나운서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이 사망했습니다, 라는 멘트를 내보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이러다 우리 가족도 그리 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리부터 연탄가스를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꼼꼼한 어머니 덕분에 언젠가부터는 마음 놓고 편히 잘 수 있었다. 가끔 연탄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도 했지만, 그건 우리에겐 으레 있었던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럼 가게에서 번개탄을 하나 사다가 연탄과 함께 집어넣기도 했다. 그럼 곧 살아나는 불꽃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밤 10시가 되면 우리집 네 식구는 좁은 방에 낑겨 누워 어두운 방구석을 환히 비추는 텔레비젼 화면만을 뚫어져라 봤다. 아버지는 제일 아래서 가로로 누워서, 나와 동생과 어머니는 세로로 누워서, 고개를 바짝 들고 티비로 눈을 모았다. 그땐 무슨 특공대 같은 외화시리즈를 밤 10시에 내보내줬는데, 나는 이걸 보기 위해 졸린 눈을 부비며 어떻게든 깨어있으려고 해봤지만 반은 보고 반은 보지 못했던거 같다. 티비는 유일한 놀이기구였다. 네 식구에게. 어머니는 드라마를 봤고, 아버지는 중국 무협 시리즈물이나 홍콩영화를 빌려와 매일같이 비디오를 봤고, 나는 딱히 보고자 하는거 없이 여기저기 끼어서 다 봤더랬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르고, 인터넷이란게 생기고 난 뒤, 내 개인 컴퓨터가 생기고 난 뒤, 나는 식구들과 함께 티비를 시청할 일이 별로 없었다. 내게 장난감은 이제 인터넷 되는 컴퓨터였으니까. 밖에서 어머니가 드라마를 보면, 난 그 시간에 다른 뭔가를 보기 위해 어머니를 조르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와 방송국 사이트에 접속해 온라인 팝업창을 띄우고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티비를 잘 안보지만 집구석에 홀로 남았을 때, 방에서 나가 과자 부스러기라도 먹을라치면, 입은 심심치 않아도 눈이 심심해 티비를 켜곤 했다. 주로 보는 채널은 케이블 영화채널이나 YTN. 며칠 전에도 나는 역시나 마찬가지로 빵 부스러기를 주워먹다 심심해 티비를 켰는데, 이게 웬일. 화면이 지지직 거리고 안나온다. 고장나있었던거다. 며칠전부터. 못해도 13년은 사용한 듯 싶다. 고장날 때 됐지. 암.
그날 저녁, 어머니에게 티비가 고장났다 말했다. 며칠전부터 그랬다고 한다. 고쳐야 되지 않겠느냐 말했다. 너무 오래 써서 고치기도 힘들거라 말씀하셨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봤지만 출장비를 일단 주고 와서 봐야하고, 그 다음에 진단을 내릴 수 있다 했다. 나는 혹시라도 싸게 수리할 수 있지 않느냐 했다. 어머니는 너무 오래써서 안될거라 했다. 어차피 수리비 주느니 그냥 이참에 새 걸로 사자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아침, 결국 우리집은 최신형 디지털 티비를 구입했다. 어머니가 일 나가시기 전 아침, 부랴부랴 내가 출력한, 인터넷 구매가가 인쇄된 종이를 들고, 함께 하이마트로 가서 티비를 구경했다.
인터넷가 보다는 확실히 비쌌지만, 점원은 유통구조가 다르고, 부품도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는 쓰여져있는 가격보다 몇 만원을 내려 불렀고, 결국 어머니는 삼성 29인치 디지털 티비를 고르셨다. 오늘 설치해주면 좋으련만, 물류창고가 인천에 있는 관계로 시간이 걸린다고 내일 아침에 설치해주겠단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우리집엔 13년 넘은 덩치 커다란 낡은 티비 대신 삐까뻔쩍한 29인치 디지털 티비가 들어온다. 2007년 봄에 나온 상품이니 최신형 티비다.
좁디 좁은 집안 구석구석의 낡은 전자제품들이, 지녀온 세월만큼이나 신호를 보내고 있다. 티비를 시작으로 서서히 하나 둘 그들을 대체할 새 제품들이 들어올테지. 정겨움이 낯섬으로 바뀌는 아쉬움 보다는, 옛 물건을 버리고 새 물건을 들여놓는 즐거움보다는, 이번엔 얼마의 목돈이 나갔을까 하는 계산이 앞선다. 내 돈은 아니지만 언제까지고 일할지 알 수 없는 어머니에게, 돈이 있어야, 나도 집구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깔려있달까. 그래서, 집안의 전자제품이 바뀌는건, 새로운 제품이 들어오는건, 내겐 별로 달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