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멜기세덱님 서재에서 화이팅에 대해서 댓글을 주고 받은 적이 있었는데, 멜기세덱님은 투쟁의 의미가 담겨있으므로 '화이팅'을 사용하지 말자고 하셨고, 나는 사용해도 괜찮다의 입장이었다. 조금 전 전에 가르쳤던 한 학생이 미니홈피에 와서 '화이팅!' 하고 남기고 갔는데, 대개 화이팅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투쟁과 싸움, 다툼의 의미가 아닌 '힘내자'의 의미로 사용하므로, 이걸 굳이 본래의 영어 'Fighting'으로 해석하지 말고, 그냥 '힘내자'의 다른 한국어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러니깐 'Fighting' 에서 시작하여, 한글로 옮겨 '화이팅'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이팅'은 'Fighting'의 의미를 담아내지 않고 있으므로, 아예 한글로 '화이팅'이라 적고 의미도 '힘내자'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바꿀 것도 없이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만. 언어는 감염되는 것이고, 굳이 자연스러운 이런 흐름을 막을 필요는 없다는 고종석의 입장을 수용하는 나는 이렇게 한번 생각해봤다.

예전 같으면 더 길게 주저리주저리 쓰고 싶다만, 지금 나는 매일같이 아침/밤으로 여러 책과 논문과 함께 씨름하며 컴퓨터 전자파를 하루 종일 받아가며 하얀 백지 워드에 한 문장 한 문장 추가하고 있어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 고로 -_- 그냥 간결하게 이렇게 뚝 써놓고 마련다. 쓰다보니 또 길어졌다. 원래 한 두 문장으로 쓰고 말려고 했는데. 모두들 잘자요. 벌써 자진 않으려나. 그럼 열심히 노세요. 나는 조금 더 하다가 조금 이따 사랑과 전쟁 봐야지. 이제 이러고 있는 것도 다음 주면 끝난다. 어휴. 끝나면 좀 놀아야겠다. 뭐 하면서도 밴드하고 영화도 보고 티비도 다 챙겨보고 그러지만. 그래도 마음의 짐을 덜고 노는거랑 짐을 등에 이고 노는거랑 다르니깐. 그래도 불안감은 통과! 하는 날까지 계속 될 터. -_ㅠ



>> 접힌 부분 펼치기 >>

 

아리아리 (부사) :

[Ⅰ]
아리아리하다 어근.
[Ⅱ][부사][북한어] 정신희미하거나 흐리어 명백하지 않은 모양.

아리아리하다

[형용사]『…여럿이 다 모두 뒤섞여 또렷하게 분간하기 어렵다.


남영신의 한 국어사전에는 아리아리는 안나오고, '아리아리-하^'는 나와있는데, 위와 다르지 않군요. 그렇담 화이팅의 우리말로 쓰는 '아리아리'는 무슨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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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7-11-0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무원 국어 수험서에는
파이팅을 아자, 힘내라, 아리아리, 지화자 뭐 이런 걸로 바꿔써야한다고 나오더군요.
어여 하던거 끝내고 다음 주 사랑과 전쟁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세요 ㅎㅎㅎ

이잘코군 2007-11-02 22:40   좋아요 0 | URL
움 국어사전에 '화이팅'이라고 넣고서 이렇게 풀이하는거에요.
1. 힘내라 혹은 힘내자
2. 아자
3. 아리아리 (얘는 뭐에요?)
4. 지화자

웽스북스 2007-11-0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우리 중 '파이팅'이라는 말을 읽거나 들었을 때 싸워라, 이겨라, 등의 전투적인 의미를 떠올려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그 말은 힘을 내라, 열심히 해라, 라는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말을 읽게 됐을 때, 어떤 결연한 의지, 혹은 공격적인 그 무엇보다는 나를 향해 힘을 주고 싶은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을 보게 된다. 언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이다. 그 대중에 의해 한 단어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그 단어의 원 의미를 들추어가며 그 단어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언어순수주의의 결과이다.
고종석놀이, 고종석 발끝에도 못미치지만요 ㅎㅎ 어제 감염된 언어 다 읽고 지금 밑줄 옮기러 알라딘 들어왔는데 너무 졸려 헤매이던 중, 이런 글을 만나니 반갑네요 ㅋㅋ 아프락사스님 남은 한 주도 화이링이요~

이잘코군 2007-11-02 23:39   좋아요 0 | URL
엇,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에 저런 문구가 있었나요. 왜 기억이 안나지. 아니면 문체를 달리해서 웬디양님이 쓴건가요? 그랬다면 길게 쓰려고 했던 제가 하고픈 말 다 해주셨어요. :)

저는 지금 케이비에스 제이티비 창 띄워놓고 놀고 있는 중. 오늘은 (논문) 그만 써야지. 웬디양님도 주말 화이팅.

웽스북스 2007-11-02 23:27   좋아요 0 | URL
당근 없었죠- 고종석놀이라니까요 ㅎㅎ 헷갈려해주시니 황송합니다 ㅋㅋ

이잘코군 2007-11-02 23:39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럴듯한데요? :)

멜기세덱 2007-11-0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론:)ㅋㅋ ① 댓글을 주고받은 기록이 없음. 내 페이퍼를 다시 찾아봤는데, 없던데요.ㅋㅋ ② 나의 주장은 '사용하지 말자'쪽이라기보단 '사용을 자제하자'에 가까우면서 이를테면 '사용하기에 알맞은 상황에서 다소 제한적으로 사용하자'였음. 다시 읽어보니 그렇더라구요.ㅋㅋ ③ 고종석의 언어학적 입장에 대체로 동의하며 인위적 언어순화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혐오하는 바임 ④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팅'에는 (다분히는 아니라할지라도) 호전적 성격을 담고 있지 않은가 생각됨. 그래서 이 말을 다양한 맥락에서 좀더 유효적절한 감탄사로 대체했으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임. '아리아리' 괜찮네요....ㅋㅋㅋ* 추천은 내꺼임....ㅎㅎㅎ

이잘코군 2007-11-03 07:56   좋아요 0 | URL
1. 어 있어요. -_- 제가 어느 페이퍼에 댓글 달았었는데 거기에 멜기님이 댓글 달았었어요.
2. 어 그럼 찾으신건가요? :)
3. 저도 인위적인 언어 순화는 혐오하는 편이에요. 그냥 냅두자, 가 기본이고, 외계어나 이런 것들은 다르게 취급해야죠.
4. ㅋㅋㅋ 아리아리 이건 뭐에요. 사전 찾아봐야겠다 정말 아리아리 란 말이 있나. 전 이런 말을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어색한데.
5. 추천은 땡큐 ^^

turnleft 2007-11-03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파이팅' 이라고 하면 미국 사람들은 "sorry?" 라고 한답니다.
저거 사실 한국말이었어요...;;

이잘코군 2007-11-03 07:57   좋아요 0 | URL
음, 원래 그렇게 사용되고 있죠 사실. :)

프레이야 2007-11-03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한달간 아리아리~~ 하세요!!!

이매지 2007-11-0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아리는 순한국말로 알고 있는데 확실한지 모르겠네요;

Jade 2007-11-0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프님 지금도 많이 노시면서, 끝나면 얼마나 노실려고....

다락방 2007-11-03 12:10   좋아요 0 | URL
댓글 추천! ㅎㅎ

이잘코군 2007-11-0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 저도 뭔지 모르지만 아리아리. ^^
매지님 / 음. 찾아봤는데 입안이 얼얼하다 이런거 밖에는... -_-
제이드님 / -_- 흥! 나만 미워해.
다락방님 / 추천은 또 머에요. 페이퍼에 추천해야지! 버럭!

Jade 2007-11-04 09:44   좋아요 0 | URL
ㅋㅋ 저한테 이쁨 받아서 뭐하시려구요 ㅋㅋㅋ

이잘코군 2007-11-04 09:46   좋아요 0 | URL
-_-a ......

Jade 2007-11-05 01:33   좋아요 0 | URL
ㅎㅎ 거봐요. 그러니까 계속 미움 받으셈 ㅋㅋ :P

이잘코군 2007-11-05 08:36   좋아요 0 | URL
-_-a 그래두... 뭔가 이상해.

여울 2007-11-05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림이들 사이에선, 화이팅!! 홧팅!!? 보다 압도하는 것이 힘!!!, 히 ㅁㅁㅁㅁ!!! 서로 마주치며 건네는 말이 느낌이 괜찮답니다. 화이팅은 열에 하나정도로 적은 듯 싶어요. 저도 힘!!!을 건네는데, 마음도 포스?도 전달되는 것 같아 자주 씁니다. 아자도 좋구요...힘내라는 좀 늘어지는 듯...ㅎㅎ

이잘코군 2007-11-05 10:54   좋아요 0 | URL
음헛, 달림이는 누구에요? -_-a
힘내라 보다는 힘! 이 더 메세지가 강력하건 사실이에요.
'화이팅'이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죠.
아자! 도 좋고, 으쌰! 도 좋고. 크크. :)

이매지 2007-11-05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urimal.org/scrpt/board/alrim_show.asp?board_no=53&serial_no=1
여기가니까 뜻이 있네요 :)

여울 2007-11-05 17:48   좋아요 0 | URL
음~ 그래도 살리자는 취지는 좋은데, 어감이 겹쳐, 살아날 확율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이잘코군 2007-11-05 19:41   좋아요 0 | URL
음 저도 봤어요. 좀 힘들거 같아요. 취지와 의미는 좋은데. 일단 '아리아리'는 A가 B에게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B가 못알아들으면 -_- 거시기하고 그러다보니.

가넷 2007-11-05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써보기는 했는데 어색 하더군요.(아리아리.. 요거;)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2
하승우 지음 / 책세상 / 2003년 6월
구판절판


"우리들은 우리가 억압하려 애쓰는 의견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할 정도로 확신할 수 없으며 설사 그렇게 확신한다 하더라도 그 의견을 억압하는 일은 여전히 악일 것이다...... 일체의 토론을 억압하려는 것은 자기의 절대무오류성, 즉 절대로 자기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존 스튜어트 밀)-51쪽

똘레랑스는 부정의 논리인 동시에 긍정의 논리다. 완전함을 부정하는 한편 자발성을 긍정한다. 절대적인 완전함이 없다고 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자발성과 독창성을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보편적인 진리가 무너졌다고 해서 개인의 자발성이 함께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똘레랑스는 완전함을 부정하면서도 자발성을 최대한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최대한 진리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은 소중한 것이다. 그래야 침묵하고 복종하는 사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52-53쪽

양심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자유로운 것이기 때문이다.(필리프 사시에)-54쪽

밀은 진리와 관련해 침묵을 강요할 수 없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논증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없기에 침묵을 강요하는 의견도 진리일 수 있다는 것, 둘째 침묵을 강요당한 의견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의 일부분을 포함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셋째 대중 사이에서 널리 인정받는 의견이 진리일 뿐만 아니라 진리의 전부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활발한 논쟁이 허용되지 않거나 실제로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의견은 편견처럼 비쳐져 그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기회가 상실되리라는 것, 넷째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가르침 그 자체의 의미가 상실되거나 약화되어 그 의견은 사람의 인격과 행위에 미치는 생기발랄한 영향력을 잃어버릴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다. -55-56쪽

'똘레랑스'에 부정하는 의미의 접두어를 붙인 형태인 '앵똘레랑스'는 표면적으로는 똘레랑스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앵똘레랑스는 인종, 피부색, 종교, 성적인 취향을 이유로 타인의 행동이나 신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비이성적이고 정당하지 않은 반대를 가리킨다. 그것은 "네 생각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따라서 네 생각을 파괴하고 네가 쓴 책을 불태우고 나아가 너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똘레랑스 속에 담긴 앵똘레랑스는 이성적인 반대를 뜻한다. 이때의 앵똘레랑스는 어떤 것은 더 이상 받아들이면 안될 뿐 아니라 그럴 수 없음을 의미하며 특정한 상황에서 도덕적 의무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똘레랑스 속에 담긴 앵똘레랑스는 일반적인 앵똘레랑스와 의미가 다르다. -56-57쪽

똘레랑스는 때로 공익을 위해 사적인 이익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지만 거기에 강압을 사용하면 안된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강제나 차별을 동원하면 강제하는 자나 차별하는 자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일로 비칠 수 있다. -62쪽

"똘레랑스는 비대칭 불균형의 태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에게 행해지는 악을 악 그대로 돌려주지 않아야 할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무장해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승 작용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방이 용인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먼저 용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환대'의 사상이 있습니다. 화합되지 않는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항상 적대하던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모험입니다." (필리프 사시에)-67쪽

똘레랑들은 극단을 부정하는 앵똘레랑스를 예로 들며 비폭력을 무조건 고집하지 않는다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그렇다해도 똘레랑들에게는 폭력이 앵똘레랑스라는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되는 반면 힘없는 약자에게는 일상이 폭력이다. 약자의 비폭력은 상대의 압도적인 힘을 감당할 수 없기에 나타나는 무기력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의 불평등한 모순을 지속시키려는 폭력이 아니라 그 모순을 없애려는 폭력은 야만스러운 폭력과 다르다. 폭력과 대항 폭력은 몸통이 붙어 있지만 머리가 떨어져 있는 샴쌍둥이와 같다. 어느 한쪽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도 같이 소멸해야 한다.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폭력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다. -93쪽

"참된 철학 운동이란 몇몇 소수의 지식인 집단 사이에 특수한 문화를 창조하는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상식'보다 우월하며 과학적 정합성을 갖는 사상 형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조차 '순진한' 대중과의 연관성을 결코 잃지 않고 또 바로 그 속에서 실로 자신이 탐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의 원천을 발견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그람시)-115쪽

똘레랑스는 공적인 토론에서 원칙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그 원칙은 상대방의 의견을 냉정하게 듣고 정직하게 진술할 것, 반대자에게 불리한 일을 과장하지 말고 그들에게 유리한 일을 감추지 말 것이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현실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 특히 극단주의자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잘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토론 자체를 거부하거나 설사 토론을 하더라도 자기들보다 약한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무식하다', '교양없다', '부도덕하다' 같은 딱지를 붙인다. 밀은 이런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에 "진리와 정의를 위하려면 우세한 편에서 욕설의 남용을 억제하는 것이 반대 의견을 가진 편의 욕설 남용을 억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116쪽

우리는 기득권 세력이 허위 의식을 만들기 시작할 때, 또는 그것을 체계적으로 퍼뜨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을 차별해야 한다. 즉 허위 의식을 기르는 말과 이미지를 쓰려 할 때부터 그들을 차별해야 한다. 그들의 선전을 가만히 놔둔다면 그들은 압도적인 돈과 힘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마비시킬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며 적당히 조절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전을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들을 차별해야 한다. -120쪽

" '정의'는 벌을 주는 것이 아닐세. '정의'란 각자에게 걸맞는 가치를 되돌려주는 것을 말하네. 각자는 거울이 비추어주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지. 그러므로 정의란 각자에게 자기자신을 되돌려주는 것을 모두가 동등해야 한다고 주장만 하는 것은 허위 의식을 심어줄 뿐이다. 오히려 동등함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올바르다.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차별은 정당하다. 차별하는 똘레랑스는 똘레랑스를 실천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121-122쪽

우리는 그 존엄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존엄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존엄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 속에 품어야 힘을 가진다. 결탁이 강자들의 추태라면 만남은 약자들의 희망이다. 존엄하게 사는 길은 끊임없이 존엄을 추구하는 것이고, 존엄을 위해 죽을 때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내 " '정의'는 벌을 주는 것이 아닐세. '정의'란 각자에게 걸맞는 가치를 되돌려주는 것을 말하네. 각자는 거울이 비추어주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지. 그러므로 정의란 각자에게 자기자신을 되돌려주는 것을 뜻하지. 죽음을 주고, 비참한 고통을 주고, 착취하고, 우월하다며 오만하게 굴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우쭐대고 잘난 체했던 이들에겐 그에 상응하는 불행과 고통을 주어 그들이 새로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고, 생의 활력을 주고, 일을 주고, 저항하게 도와주고, 형제가 되었던 사람은 그에 마즌 대가로 얼굴과 가슴을 환하게 밝혀주고 그가 걸어갈 길을 밝혀줄 빛을 얻게 되는 것이지." (안토니오 할아버지)-135-136쪽

우리는 그 존엄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존엄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존엄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 속에 품어야 힘을 가진다. 결탁이 강자들의 추태라면 만남은 약자들의 희망이다. 존엄하게 사는 길은 끊임없이 존엄을 추구하는 것이고, 존엄을 위해 죽을 때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내 영역에서, 당신은 당신의 영역에서,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때로 힘들어 쓰러질지라도 다시 일어서서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존엄은 그 길의 끝에 놓여있는 선물이 아니라 길 위에 뿌려지는 바로 그 땀이다.-138쪽

각주98) 조정환은 똘레랑스가 중도를 지향한다고 비판한다. "똘레랑스는 두 개의 앵똘레랑스 극단 사이에 놓여 있다. 그것은 중간의 지대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양극단을 배제하는 중도, 중용의 태도를 지향한다. 이 태도에서 양쪽 극단의 질적 차이는 무시된다. 똘레랑스는 오직 앵똘레랑스와의 차이를 통해서만 정의될 뿐이다. 똘레랑스는 앵똘레랑스와 마찬가지로 동일화를 향한 강한 추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다름을 확인하고 다름을 견디는 태도이지 다름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생산하려는 태도는 아니다." (조정환, <'똘레랑스'의 윤리 정치학 비판>,[모색] 3호, 122쪽)-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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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어볼 만한 구절 : 35절 불관용자에 대한 관용
    from 자유를 찾아서 2007-10-22 21:14 
      "지금부터는 과연 정의가 불관용자들에게도 관용을 베풀 것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어떤 조건 아래서 그러한지를 고찰해보기로 하자."   "몇 가지 문제가 구분되어야 한다. 첫째, 불관용하는 종파가 자기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할 명분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 어떤 조건 아래에서 관용적인 종파가 불관용적인 종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을 권리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제 그들이 관용을
 
 
 


 혹시나 어떤 변동 사항 있나 해서 수시로 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는데, 지금은 한창 학기중인데도 어떤 과목의 강사분이 바뀌었단 공지가 떠있었다. 물론 나는 이제 대학원에 가지 않고, 수업도 다 들은, 수료생 입장이지만 궁금하여 내용을 읽어봤더니, 내용인즉슨, "OOOO 수업이 OOO 교수님의 사망관계로 이 수업은 OO학과 OOO 교수님으로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라는.

  대개 수업 관련 공지는 강의실 변경이 대부분이고, 강사 변경은 흔치 않은 일인데, 그 사유가 또 사망이라니. 내가 모르는 사람이고, 듣지 않는 과목이지만, 그 짧은 문구가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분명 같은 날 같은 수업 시간엔 모르고 들어온 학생들도 많을텐데 바뀐 강사분이 돌아가신 그 분이 섰던 자리에 가서 여차저차해서 이제부터 제가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면, 말하는 강사분이나 듣는 학생이나 어떨까. 

  9월부터 함께 했던 정들은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앞으로 그 수업을 마무리지어야 할 그 분도, 사망소식을 전해들어야 하고, 같은 자리에서 다른 분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도, 침울하겠지. 글쎄, 내가 직접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건 아니고, 경험해 본 적도 없어서, 어떤 마음일지는 모르겠지만, 당황스럽고 우울할 것이다. 사인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면 굳이 누군가 묻지도 않을 것이고, 물을 생각도 못할테지. 당장 몸으로 느껴야 하는건 원인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결과이니.

  모르는 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은, 비록 모르지만 같은 시공간 내에서 함께 살아가던 사람이 차지했던 1/n 만큼 뻥뚫린 것 같은 기분이다. 영원히 메꿔지지 않는. 사진은 '존재의 부재 증명'이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그 분의 사진에서 느끼는 것은 '부재 증명'이 아니라, '상실감'일 것이다. 그와 언어를 섞고, 얼굴을 섞고, 살을 섞었던 사람들은 더더욱, ...  문득 한 때 내 곁에 있었던, 지금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후배 녀석과 대학 동기 녀석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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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7-10-1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을거고, 매일매일 죽음에 대해 한발짝씩 다가가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늘 그렇지 않은듯이 행동하죠....^^ 1/n이 뻥 뚫린만큼, 또다른 1/n이 채워짐으로 위로받으셔요. 어디선가 언어와 얼굴과 살을 섞은 사람이 이곳을 떠나는 동시에 누군가는 생활을 섞을 그이를 만날테니까...^^

다락방 2007-10-15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울컥,하잖아요.

이잘코군 2007-10-1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드님 / 모두 언젠가 죽을건 확실하지만, 주변에 알게 모르게 있던 사람의 갑작스런 부재는 뭔가 한구석을 휑하게 만듭니다. 비록 보지 못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뉴스에서 누군가의 사고소식을 접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다락방님 / 밤엔 그래도 괜찮아요. 가끔 일부러 그럴 때도.

아무개님 / 가까웠던 사람일수록 더 휑하고 오래 가는 듯 합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금방 사람들은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오죠. 가끔씩 주인 없는 홈피에 들러보며 잊지 않곤 합니다.
 


파르바티님 글 읽다가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누군가가 어떤 글에 추천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나 서재생활하면서 추천 버튼 안 눌러본 사람 없을 것이고, 각자가 어떤 페이퍼나 리뷰에 추천 버튼을 누르는 이유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간단하게 보면, 동의하거나, 동감, 공감하는 글에 추천을 누를 것인데, 그 이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내 경우, 서재 개편 이후부터 활용하고 있는 메뉴인 '브리핑 오늘은'이라는 곳에 그날의 소소한 일상을 정리해서 쓰곤 했는데, 보통은 페이퍼 하나에 짧은 글이 두 세개씩 들어가게된다. 거의 추천이 없긴 했지만. 후훗.

  혹시라도 추천을 받은 페이퍼는, 추천을 받은 당사자인 내가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경우도 있다. 혜교에 대해서 쓴 글에 추천을 누른걸까, 아니면 명동의 비오는날 핫초코에 대해서 추천을 누른걸까, 그도 아니면 요즘 게으름 피우느라 뒹굴 놀이 하고 있다는 것에 추천을 눌렀을까. 궁금한데, 추천을 누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고, 또 안다고 해도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고.

 아마 사진 속 혜교가 이뻐서라거나, 아니면 명동에서 비오는날 자기도 핫초코를 홀짝여봤다거나, 내가 게으름 피우는 동안 자기도 방바닥에서 뒹굴었다거나 해서 추천을 눌렀을건데, 이런 땐 아마도 공감했기 때문에 추천을 누른 거겠지. 한 페이퍼에 여러 주제가 섞여 있으면 이렇게 어디에 추천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추천이 세 개 라면 셋 다 각기 다른 곳에 공감해서 눌렀을 수도 있고. 

 한편 페이퍼에 글이 하나인 경우를 생각해보면, 대개는 단일 주제로 끝까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주제는 하나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용은 두 가지인 경우가 있다. 이번에 내가 쓴 글에서도, 한 주제로 주저리주저리 말했는데 마지막에 말 많아서 죄송해요, 라고 꾸벅 인사드린 별표 부분에 추천을 누르신 분도 있을테고(정말?), 글에 공감했기 때문에, 동의했기 때문에 누르신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복잡해지는게, 이런 논쟁 상황에서는, 자신의 필명 걸고 페이퍼를 쓰기는 귀찮고, 그냥 어떤 이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피력했다 싶으면, 댓글을 달거나 댓글로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다면 추천을 누름으로써 소극적으로 의견을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관련된 어느 페이퍼나 마찬가지일터.

  심지어는 글을 또박또박 다 읽지도 않고 추천을 누르기도 한다. 특정한 어떤 분이 글을 쓸 때마다 자연스럽게 추천에 손이 가는 경우이다. 나는 로쟈님 글에서 예전에 한동안 자주 그랬던거 같고 - 요새는 좀 뜸합니다. 로쟈님 죄송합니다. 꾸벅 - 어떤 분은 예전에 많이 활동하시다가 가끔씩 나타나시는 특정분의 글에는 자동적으로 추천에 손이 간다고 말한 바도 있다.

 논쟁시에는 아무래도 대놓고 페이퍼를 쓰지 못하시는 분들이나 댓글을 달지 못하시는 분들이, '추천'으로 의사표시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직접 참여하고 댓글도 달고 하는 분들도 추천을 누르겠지만.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또 그 중 어느 부분에 다소간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어떤 의도이고, 무슨 말을 하려는가, 에 의미를 부여해 누를 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p.s.

  개인적으로는, 페이퍼 혹은 댓글로 '본인을 드러내고' 의사표현을 하는게 제일 낫단 생각이다. '추천'을 통해서 소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도, '비로그인 댓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궁시렁궁시렁 거리는 '애들'보다는 한참, 훨씬, 많이, 더더더더욱 낫겠지만.

  정체를 숨긴채 '익명'으로 책임지지도 못할 자기 하고픈 말 툭툭 내뱉고 튀느니 그냥 '로그인 해서' 추천을 누르는게 낫겠다 싶다. 그게 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당당한, 스스로에게 미안하지 않은, 책임감 있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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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1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10-11 22:04   좋아요 0 | URL
므흐흣. "혜교는이뻐"라고 써있잖아요.

hanalei 2007-10-1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동뇨만이 추천의 기준입니다. 고로 이뻬빠는 추천할 수 없습니다.

다락방 2007-10-1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천에 대해서 만큼은 진정으로 마음을 담아요.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거나, 느끼게 한다거나 혹은 웃겨준다거나 하는 글에 추천을 하죠.

진지하게 읽다가 숨겨진 저 사진의 반전이라니!
'연예인 스럽지 않은' 바로 그녀군요. 흣.

바람돌이 2007-10-12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저는 깜박하고 추천해야할 글도 못할때가 훠얼씬 많은데요. ㅎㅎ
그래서 요것도 깜박하고 갈까 말까 고민중.... 제가 추천햇게요. 안했게요? ㅎㅎ

람혼 2007-10-12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접기와 펼치기 기능을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ㅎㅎ

잉크냄새 2007-10-12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의 표시로 댓글과 추천을 동시에 날립니다.

tonight 2007-10-1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쁘다. +_+

어쩐지 저는 추천은 잘 안하게 되던데요. 별로 습관이 안되서 그런가..

이잘코군 2007-10-1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님 / 명동뇨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잖아요. -_- 그젠가 또 명동 갈 일이 있어서 우리은행 문밖에서 기웃 해봤는데 없더라고요. 점심 먹으러 갔는지. 거기 갈 때마다 전 명동녀 생각이 아니라 스님 생각해요. :)
다락방님 / 다락방님 댓글 보니, 글 말미에 "여러분은 언제 추천하십니까" 하고 질문을 던져볼걸 그랬군요. 그 사진은 원 페이퍼의 저자에 따르면 "연옌 같지 않은 마크스"를 지닌 그녀랍니다. ^^
바람돌이님 / -_- 추천수를 보아하니 안했군요. 얼른 와서 하세요.
람혼님 / ^^ 접기 펼치기 저도 사진이나 짧은 P.S 글 같은 것만 넣어봤는데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활용할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잉크냄새님 / 잉크냄새님 같은 분들이 좋다니깐요. ^^ 아니 왜 추천을 달라는데, 추천을 안주는거에욧 다들.
시니컬앨리스님 / 이쁘죠? ^^ 일반셀카같은데, 따로 치장하지 않아도 저렇게 이쁘다니. "연옌 같지 않은" 자연스런 마크스의 보유자에요. (이렇게 말하면 자꾸 돌 날아오더라고요) 이런 이쁜 사진에 추천은 필수여요.

프레이야 2007-10-1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교는이뻐,에 추천이요^^
전 애정의 표시로 거의 80%정도는 추천을 눌러요. 아주 아닌 경우만 빼구요.

이잘코군 2007-10-12 10:16   좋아요 0 | URL
아, 이렇게 추천을 달라고 제목에 광고를 하고 있는데, 너무들 야박하세요. ㅋㅋㅋ 저도 추천을 잘 날리는 편이야요. 혜교는 이쁘죠. :)

비로그인 2007-10-1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습니다.
그러나 딱히 덧붙이고 싶은 말이 없거나, 말할 가치가 없는 자에게는 댓글을 달지 않죠.
그러나 너무 감동적이거나 너무 동감을 하게 되면 오히려 생각이 많아져서 아무 말도
남길 수가 없게 되고, 그것에 추천만 남기고 가는 경우가 있죠, 저 같은 경우는 ^^

비로그인 2007-10-1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연옌스럽다;;;

뽀송이 2007-10-1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요!!
송혜교 부산국제영화제 왔었는데 정말!! 이뿌더군요.^^
아프님이 좋아라 할 만 합니다.^^

tonight 2007-10-1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연옌 같지 않은'이 아니라 충분히 연옌같은데요??? -_-
정말 돌 던지고 싶다.. -_-ㅋㅋ

이잘코군 2007-10-12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 그렇군요! :) 음, 저도 어떤 글에는 댓글 달기는 뭣하고 추천만 누르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꽤 되죠.
테츠님 / -_- 안 연옌스러워요.
뽀송이님 / 거기 갔었군요. 연예 프로그램엔 왜 혜교는 안나왔었지. 김소연이 너무 관심을 받는 바람에... 근데 정말 이쁘더군요.
앨리스님 / 흐흐. 전에 올렸던 사진은 더 "연옌 같지 않은 마스크"였는데.
정아무개님 / 그러니깐 아무개님은 추천을 눌렀다는거죠? :)

비로그인 2007-10-1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제 글들은 댓글은 달아도 추천을 누르기엔 부족한 것들이군요. 췟.

이잘코군 2007-10-12 20:55   좋아요 0 | URL
아니아니. 너굴님 왜 삐지셨을까. 그런게 아니구. 중얼중얼.
 


  이래저래 나를 돌아볼 기회가 생겼고, 부족해도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혜도, 지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를, 나는 실제보다 더 이쁘게, 멋있게, 화려하게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등학교 때 교장선생님이 교장실로 불러 훈화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내가 철학과를 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인데, 그때 그 분 왈, 거기 나오면 다 꾸질꾸질 하게 하고 다니고 맨날 길거리에서 하늘 땅 쳐다보면서 어쩌고 저쩌고 그러셨는데, 철학과 못가게 하려고 그러신거지. 고등학교 1학년 짜리가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그대로 믿었을까.

  결국 고등학교 3학년 홀로 기나긴 방황이 대학에까지 이어지고, 고민 끝에 현실과 타협(?)해 경제학과에 갔던 나는 과감히 철학과로 전과를 했다. 철학은 내가 막연하게 원하는 것이었고, 뭔가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철학과'라는 타이틀 아래 나머지 대학 3년을 다녔는데, 사실 공부는 제대로 한 게 없다. 하지만 생각은 많았다. 내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다. 철학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믿고 있고, 후회하지 않는 길을 걸어왔노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요지는, '철학'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전과를 했고, 3년을 다녔지만, 그 타이틀을 내게 붙이기엔 내가 너무 부족한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 철학은 경쟁력 없고, 점수 안되는 애들이 오는 별거 없는 과인지 모르겠지만, 내겐 다가갈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내게서 철학이라는 레떼르를 떼기로 했다. 뗀다고 떼어지고, 붙인다고 붙여지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나에게서 떼어버린다. 작은 의미로 마이리뷰의 카테고리도 '인문/철학'이었던 것을, '인문'으로 바꿔버렸다. 마저 있는 '인문'마저 '인문/사회/과학'으로 통합시켜버릴까도 생각 중이다. 하나의 개인으로서, 하나의 사람으로서, 고민과 방황을 더 해야할 필요가 있단 생각이다. 부담스러웠던 딱지를 떼어버리니 한결 후련하다.

*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니고, 이번 논란에서 제게 속삭이는 여러 댓글, 또 어떤 공개된 댓글, 어떤 페이퍼 등에서 느낀 바가 많아 그런 거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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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7-10-1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고민과 방황말고 연애를 하세요! ㅎㅎ

이잘코군 2007-10-10 00:15   좋아요 0 | URL
연애는 머 혼자서 하나 =333

turnleft 2007-10-10 02:59   좋아요 0 | URL
맞아, 누구 소개도 안 시켜주면서 연애 하라는 분들 밉지 않아요?
(Jade 님, no offence~ ^^;)

이잘코군 2007-10-10 07:32   좋아요 0 | URL
그럼 제이드님이나 좌회전님이 소개시켜주는 일만 남았군요. ('' )( '')

Jade 2007-10-10 11:23   좋아요 0 | URL
ㅋㅋ 아프님은 눈이 너무 높아서 당최 소개를 시켜드릴수가 없어요!

이잘코군 2007-10-10 16:30   좋아요 0 | URL
'혜교'는 잊어. '혜교'는.

Jade 2007-10-10 19:36   좋아요 0 | URL
ㅋㅋ 혜교가 아니라도 페이퍼에 올라온 아프님 취향을 종합해보면.....사이보그를 만드시는게 어떠신지...??? :p

이잘코군 2007-10-10 20:22   좋아요 0 | URL
나는 이상형 같은거 없어욤. ('' )( '')

비로그인 2007-10-10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점수가 높고 낮은 과는 언어 계통에도 존재하기에, 중국어과에서(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 top이었어요) 독일어과로 전과를 한 친구가 참 신기하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뭐 어때요. 사람마다 호오의 차이가 나뉘고 그 경우가 내가, 혹은 내 주위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는 것을.
저의 이 댓글에는 철학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흐흐

이잘코군 2007-10-10 08:50   좋아요 0 | URL
^^ 저도 경제에서 철학으로 왔을 때, 과에서 역사상 두번째라고 했었어요. 신기하게 바라봤어요. 같은 시기 철학에서 경제, 경영으로 간 사람도 몇 있었거든요. 결국 맞트레이드한건가. 요즘엔, 독일어, 프랑스어의 인기가 더 내려갔다고 얼마전 기사를 본 거 같아요.

2007-10-10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0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10-10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그런데 어쩝니까. 저는 아무리 중국어의 인기가 드높다 하여도 당최 배우질 못하겠어요. 처음으로 `나 바보 아닐까' 심각하게 생각해 본 것이 중국어와 일본어였으니까요. 하지만 영원한 제 사랑은 독일어와 폴란드어, 영어입니다. 공부하고 있노라면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자신의 적성 아닐까요? 역사상 두번째 축하드립니다.

이잘코군 2007-10-10 09:43   좋아요 0 | URL
저도 당췌 영어엔 정이 안갑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뭣모르고 했고, 잘한다 소리도 들었지만요. ^^ 그렇담 독일어, 폴란드어, 영어를 하신다는거잖아요. 폴란드어를 하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재밌겠군요.

드팀전 2007-10-1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댓글 안달려고 했는데...이런 자학에는 또 안 달 수가 없어서요..^^
'철학을 공부하는 것'과 철학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도식적으로 나누자면 대학의 '철학과'는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지요.하지만 '철학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고 해야하는 문제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전 '철학'을 공부하진 않았지만 '철학하기'는 하고 있습니다.그렇기때문에 '철학'을 공부했는데 '철학'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철학'을 철회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또한 그런 자괴감때문이라면 '철학'에 대한 마음을 조금 너그럽게 가지시면 별 문제없을 듯 합니다.물론 이래저래해도 '철학'이러나 글자를 넣어서 부담스러우면 페이퍼에서 그것 삭제한다고 뭐가 큰 일이나겠습니까...본질적인 것은 그래도 유지되는데....(나 이제 진짜 잠수다.내 리뷰에 댓글도 안달아야지...아듀)

이잘코군 2007-10-10 09:47   좋아요 0 | URL
자학이라뇨. ^^ 네 저도 물론 철학을 '공부'하는 것과 '철학'하는 것의 차이야 알고 있죠. 대학에서 철학과 3년을 통해 제가 변화한건, 철학하지 않는 삶을 살다가 전과를 계기로 철학하는 삶을 살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는거랍니다. '철학'하는 삶은 누구나 해야하는 거죠. 근데 이 글을 쓴건, '철학'하는 삶을 살지만, 자기성찰력이나 지혜가 제가 스스로를 바라봤을 때보다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했기에 뺀거랍니다. 크크. 드팀전님 제가 댓글 달도록 자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2007-10-10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0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0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tonight 2007-10-1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중학교때 사촌언니가 대학생이었는데 그언니가 철학과였어요.
그때는 지루하고 인기없는 과! 막 비난-_-했는데
나중에 좀 커서 보니까 철학 너무 어려운 과목... -_-;;
(막 비난해놓고 저도 딱히 멋진-_-과 가지도 못했다는..)

이잘코군 2007-10-10 16:30   좋아요 0 | URL
음, 알고 보면 별 거 없는데,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죠. ^^
적어도 제게 있어선, 아직까지도 거대한 무엇으로 존재합니다.
과 이야기 나오니 무슨과인지 궁금해지는군요. :)

비로그인 2007-10-1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자들을 존경합니다.
평범한 이야기이겠지만 정치, 경제계의 인물들은 치지도외합니다.
김태길, 박이문, 윤사순 선생님..
부모님 빼놓고 제일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우연찮게도 세 분 모두 철학하시는 분들입니다.
윤리학, 분석철학, 유학..
아프락사스님도 철학을 하신다니 은근히 경외하지요.
젊은 학자, 아프락사스님의 장래를 기대합니다.
젊다는 것은 곧 가능성이므로..


이잘코군 2007-10-10 20:25   좋아요 0 | URL
한사님 오랫만이여요. 음, 근데 저는 학자의 길을 걸을 건 아닌지라 경외의 대상은 안될 듯 합니다. 하핫. 학자보다는 그냥 철학애호가로 머물고 싶어요. 김태길 선생의 <윤리학>은 유명하죠. 한편으론, 너무 지나치게 임용시험에 있어서 그 책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학계의 영향력이란게, 뛰어난 학자라서보다는 간판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서, 분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단 생각이에요. 박이문은 저도 좋아합니다. 윤사순 선생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 ^^ 다 유명하신 분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