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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4월
평점 :
5월초부터 시작된 광우병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다음주면 한 달이다. 참으로 질기게도 국민의 머슴이기를 자처한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들의 재협상 요구를 무시하고 있고, 단지 소통의 문제로 치환해 그간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내가 잘 알려주마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니들이 잘몰라서 그랬으니깐 내가 알려주겠다고. 근데 내가 보기엔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건 국민들이고, 잘 모르고 - 아니면 모르는 척 하거나 - 있는 건 정부다. 정부가 잘 모르는 내용을 시민단체와 언론, 국민이 제대로 알도록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지 소통의 문제로 치환해 대충 얼버무리겠다는 것에 화가 난다.
출판사들은 나날이 새로운 광우병 관련 서적을 내놓고 있다. 벌써 5월 한 달 사이에 신간 소개에서 본 것만 해도 너댓가지는 되는 듯 하다. 그만큼 국가 전체의 관심이 광우병 미국소 수입에 쏠려있다는 것이고, 예전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출판사들이 속속 번역해 내놓는 관련 서적들은 꽤나 잘 팔리고 있는 듯 하다. 광우병 관련 서적과 함께 또 주목받는 것이 채식주의에 관한 책인데, 가장 적절한 시기에 나온 - 예상하고 때를 맞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이다. 피터 싱어는 오래전부터 채식주의와 동물해방을 주장해왔고, 많은 이들에게 익히 그의 주장은 알려져있다. 그런 그가 농부 변호사와 함께 내놓은 <죽음의 밥상>은 전혀 철학책 같지 않게 쉽게 왜 우리가 채식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그래 이것은 철학책이 아니다. 철학자가 쓴 책이라고 다 철학책은 아니다. 매우 쉽다. 왜냐하면 싱어와 메이슨은 최대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기들과 같은 채식주의자가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렵게 쓰면 많은 이들을 동참시키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주장과 그에 이어지는 근거'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그들이 직접 농장에서 경험하고 보고 느낀 바를 풀어놓으며 그냥 보여주기만 한다. 보여주는 모습이 많아질수록, 책장이 뒤로 넘어갈수록, 독자는 육식을 혐오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채식주의를 선택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역자 함규진은 이 책의 '옮긴이의 말'에서 자신은 결국 육식을 포기하지 못했음을 고백했지만, 이 책을 읽은 나는 최소한 육식을 피하려는 노력은 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타인들보다 육식을 '자주' '많이' '다양하게' 즐기지는 않는 것도 어느 정도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고기를 매우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즐기는 사람이기는 했고, 소불고기와 돼지갈비, 소갈비, 소시지 안주 등을 즐겨왔다. 닭은 무슨 기억 때문인지 원래 잘 먹지 않았고, 기껏 먹어봐야 계란과 닭갈비 정도다. 닭도리탕이니 삼계탕이니 양념통닭이니 하는 것들은 나에겐 기피대상이었다. 기타 오리나 개 등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AI 때문이 아니라. 그러니 내가 즐기는 육식은 소와 돼지에 국한되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로 난 식탁에 오르는 반찬 중 소와 돼지에 관한 품목들에도 젓가락을 대지 않고 있다. 나의 이러한 결단은 '육식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 그랬으면 더 좋겠지만 - 먹거리의 윤리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건 자연의 약육강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다.
피터 싱어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주장해왔다. 윤리의 대상을 인간이 아닌 살아있는 동식물에게까지 적용할 것을. 그것을 생물학적으로 내가 속한 인간종과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것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가며 상대적으로 윤리를 적용해가는데 인간, 그리고 인간과 닮은 영장류뿐 아니라 인간과 닮은데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오래전부터 인간에 의해 먹거리로 간주되어왔던 동물들에게까지도 윤리를 적용해 그들을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개체로서 바라보자는 시각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육식을 멀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식단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난 육식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가령 회사에서 다 같이 고기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나의 견해를 피력해가며 모두의 식단을 바꾸어버리기엔 너무 피곤하다. 사실 그래야 하겠지만 나의 충분한 의견 피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별종취급뿐일 것이다.
싱어는 오히려 이걸 바라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육식을 멀리하기를 바라고, 그런 이들이 늘어나 다 함께 식사를 해야할 때 육식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고, 그들까지 설득시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싱어의 입장에 동의하고 동참하는 나는 친한 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견해를 피력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나를 별종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그러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육식을 멀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일부 사적 영역에서뿐이지 모든 영역에서 실행할 수는 없음을. 이건 마치 내가 정치적인 이유에서 스타벅스를 가지 않는 것과 같다. 친한 이들에겐 간략히 설명해 함께 있는 이들이 최소한 그 자리에서 가지 않도록 할 수는 있지만, 이런 입장을 피력하기 어려운 이들과 있는데 스타벅스를 가자하면 가지 않을 수는 없는.
싱어는 이 책 곳곳에서 우리가 심지어 닭대가리라고 놀리는 그 닭이 그만큼 멍청하지도 않다는 것을, 소나 돼지나 기타 동물들이 인간과 같은 이성을 지니지는 못하지만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가 토실토실하게 살쪘다고 그것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토실토실하게 살찐 돼지와 소를 맛있게 먹는다. 왜일까. 강아지는 나와 함께 세월을 함께 하며 교감을 나누었지만 소나 돼지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얼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먹거리의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정도 차이에서 먹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면, 우리가 먹게 될지도 모르는 소나 돼지를 한번씩 농장에서 보고 오는 건 어떨까. 나중에 소나 돼지를 먹을 때 그 소나 돼지가 떠오르도록. 어쩌면 지금 내가 닭을 먹지 못하는 건 - 계란을 먹게 된 것도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거 같은데 - 어릴 적 키운 병아리가 떠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고양이에게 잡혀 먹혀버린.
수요가 많으면 공급은 자연히 따라온다. 사람들이 육식을 많이 할수록 소나 돼지나 닭은 더 많이 키워지고, 도살되며,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소나 돼지나 닭은 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생명체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들마저 박탈당한 채 한낮 장난감처럼 다루어진다. A4용지 크기도 안되는 공간에 닭들은 부리를 잘린 채 옴싹달싹 못하고 자라며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돼지는 새끼를 낳고 젖을 드러낸 채 눕혀져 움직이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의 사체로 만들어진 사료를 먹고 자라고, 그렇게 도살된 고기는 우리의 입으로 들어온다.
AI니 광우병이니 하면서 닭, 오리, 소 등을 잔혹하게 집단학살하는데 그건, 그들이 자초한게 아니라 인간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내몬 것이다. 인간이 비상식적인 사육방식으로 동물을 키우고, 잘 키워지면 죽여서 먹고, 문제가 생기면 목숨을 끊어 파묻어버리는 방식으로, 그들을 대해왔다. 미친소, 미친소 하면서 나도 소에게 참 미안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미친소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도 한다. 나는 '미친소'라는 말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부각시켜주니까 그렇게 계속 쓰고 있는데, 미안하긴 하다. 소에게. 소가 미친게 아니라 사람이 미쳐서 그렇게 된 건데 말이지.
우리가 육식을 멀리 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여럿이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피해인데, 더 싼 고기를 소비자에게 팔기 위해 월마트 같은 대형 마트에서는 직원 월급을 줄이거나 해고시킴으로써 남아있는 직원들의 노동량을 증가시키고, 그 대신 제품 값을 싸게 매겨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 소비자는 싼 고기를 사는게 아니라 해고된 직원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셈이다. 이것을 인식하고 싼 고기를 사는 소비자는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달리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많은 대형 마트들이 그렇다.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형 마트에도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알바로 뛰고 있고, 우리 어머니도 그 중 하나다. 연세가 많으셔서 그나마도 구하기 힘든 형편인데 어떻게 쉬지 않고 옮겨다니면서 일을 계속 하시고 계시다. 월급 정확히 모르지만 100만원이나 될까. 사람에 대한 윤리 문제는 육식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형마트뿐 아니라 도살장이나 각종 고기 공장도 마찬가지일테니.
이 책을 읽고나면 당장 내일 아침에 밥상에 오르는 각종 고기성분이 들어간 반찬들이 달라 보일 것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정말 고기성분이 들어간 반찬을 빼면 먹을 게 없을 정도로 고기는 식료품 곳곳에 숨어 들어가 있다. 하다못해 짜장면이나 볶음밥을 먹으려고 해도 그렇고, 미역국을 먹어도 그렇다. 육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러나 최소한 주재료가 되는 고기반찬들을 멀리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싱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참, 싱어는 물고기까지도 윤리의 범주 안에 넣고 있지만, 차마 물고기까지는 내가 어찌 하질 못하겠다. 지금 현실에서 고기 들어간 먹거리를 피하는 것만도 내겐 너무 벅차다. 물고기는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베건 식단은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삶과 윤리뿐 아니라 지구 환경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다음 밑줄은 보너스다.
"시카고 대학교의 기든 에셸과 파멜라 마틴은 동물성 식품 생산 과정에서 방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조사했으며, 전형적인 미국의 식단(그중 28퍼센트가 동물성인)은 같은 양의 칼로리가 포함된 베건 식단에 비해 한 명이 1년에 약 1.5톤의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시킨다는 결과를 얻었다. 대조적으로, 보통의 운전자가 미국의 전형적인 자동차 대신 좀 더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꾸었을 때 1년에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방출량은 1톤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억제하는 데는 차를 바꾸기보다 베건 식단으로 바꾸는 편이 더 효과적인 것이다.(물론 두 가지 다 하면 더 좋겠지만.)"
p.s. 이 책의 주장은 엄밀히 말하면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 둘 다의 것이지만, 편의상 저자의 이름을 이야기해야 할 때 싱어만을 언급했음을 알린다. 이건 둘 다 언급하기엔 문장이 너무 난삽해지고 길어지기 때문이며, 하나 더, 싱어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싱어를 좋아함)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