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 - 기획자노트 릴레이
기획회의 편집부 엮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온 동안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손에서 놓지 않고 꾸준히 읽고 있다. 책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특정 저자에게 반해버려 그가 내놓은 책들을 모조리 사들여 탐독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저자에 대한 관심은 출판사에 대한 관심으로, 그리고 이제 출판사에 대한 관심은 편집자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구입할 때 일일히 특정 편집자를 찾아다니며 그가 만든 책을 골라 읽는 건 아니다. 유일하게 그런 편집자가 있다면 휴머니스트의 선완규 주간이랄까.

  나는 꽤 오래전부터 휴머니스트의 팬이었다. 타 출판사 모임에 가서도 대놓고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가 휴머니스트라고 말해왔다. 그땐 선완규 주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가 언제부터 휴머니스트에 몸담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책을 좋아하다가 - 그가 책임편집한 책을 애써 찾아 본 건 아니지만 - 속지(?)에 찍힌 그의 이름을 발견했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휴머니스트의 책은 신간이 나와도 껍데기 열어보지 않고도 산다. 이 책 괜찮을까 의심스러운데 하면서 오프라인 서점에서 일일히 벗겨(?)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는 이런 나의 책에 대한 관심, 출판사에 대한 관심, 편집자에 대한 관심에서, 첫 장이 넘어갔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시리즈로 기획한 책 중 하나로 보이는데 - 다른 책으로는 <책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 가 있다. - 출판사에서 몇 년씩 책밥을 먹어온, 이제는 어느 정도 '책 좀 만들 줄 아는' 중견(?) 편집자들의 '나의 책 만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획회의>라는 출판잡지에 연재된 글을 한데 모아 묶은 것인데, 이 책에 실린 많은 편집자들이 이 글을 시작할 때 어찌 써야할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난감해하는 듯한 표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 글을 쓴 편집자 중 아는 이는 하나도 없다. 대신 여기 언급된 책들 중 읽은 책은 꽤 있다. 편집자도 모르고, 읽은 책도 없는 독자라면, 이 책이 그다지 재밌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순수하게 막연한 책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이 책은 기존의 어떤 책에서도 보여주지 않은 출판 비하인드를 선사해 나름의 재미를 제공해주지만. 독자가 이들과 같이 책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재밌는 책 에세이'를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들이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아 이런 과정을 거치는구나, 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읽은 책들이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건 아마도 현장에서 책을 직접 만들며 애정을 쏟아부은 '책의 대리모'들이 느끼는 심정이 얼마간이라도 이 글을 통해서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소나무에서 나온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다>를 읽었고,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로서, 느리고 질긴 꼼꼼한 편집자와 저자가 조그만 사무실 공간에서 몇번이고 원고를 거듭 읽으며, 좀 더 좋은 책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책장에 꽂혀있는 '무수히 많은 책들 중 하나' 정도로 치부할 수 없어진다.  

  책 만든 이야기, 꽤나 재밌게 읽었고,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유익했다. 하지만 이런 점은 지적하고 싶다. 출판잡지에 실린 글을 모아 엮은 책이라고는 하지만, 원고를 좀 더 다듬고 보완해 '뒷이야기'뿐 아니라 책과 출판에 대한 그들의 깊이있는 철학까지 체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이 글 안에도 그들이 책을 대하는, 출판사에서 책밥을 먹으며 생각하고 느낀 점들이 드러나 있지만, 2% 부족했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중후하고 무게감있는 표지와 꽤 무거운 책 무게는 그 안에 담긴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용은 한결 가볍고 짧은 에세이의 엮음이었지만, 책의 물리적, 시각적 무게감은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게 숨어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외형과 내용이 언발런스했달까.  

p.s. 책을 만든 편집자가 중심이 아닌, 초판 예상 판매량을 적게 잡았으나 예상 외의 선전을 한 인문서들을 중심으로, 책이 주인이 되어 그 책이 어떻게 기획되었고,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는가 등 책의 스토리를 책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