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
하재근 지음 / 포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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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는 진보와 보수와 색깔 없는 모든 국민이 다 동의한다. 그래 불과 이십년전만해도 개천에서 용은 나왔다. 하지만 이제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은 나올 수 없다. 왜 일까. 불과 몇년전에 외고를 졸업한 지인도 동의한다. 더이상 외고엔 공부는 잘하지만 가난한 학생은 갈 수 없다는 것에. 지인은 평준화 반대 입장에 서있지만 더이상 공부 잘하면서 가난한 학생이 외고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엔 동의한다. 사실 '공부 잘하면서 가난한 학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려면 가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하재근은 444쪽 분량의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을 통해 끊임없이 말한다. 지금 이대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음을. 대한민국의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결국 문제의 해답은 교육에 있고, 입시경쟁이 아닌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고교평준화는 물론 대학평준화까지 이룩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이상적인 교육강국은 프랑스로 보인다. (이 책에선 중부유럽보다는 북부유럽국가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프랑스처럼 파리1, 파리2, 파리3대학 등 이름을 붙이고 - 이름을 이렇게 붙이든 저렇게 붙이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 대학 전체를 평준화시키고 학문을 특성화시키길 바란다. 그건 학벌사회를 비판하는 많은 이들이 이미 내놓은 주장이기도 하다.  

  정부는 일류대를 여럿 만들어서 돈 없는 자식도 그곳에 보낼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특목고와 지방 입시 명문고, 국제고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특목고에 자리잡은 학부모들은 더이상 특목고를 만들기를 거부하고, 아직 특목고에 들어가지 못한 '꿈많은' 학부모들은 더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어떻게든 제 자식에게 일류딱지를 붙이고 싶어서. 하지만 일류딱지는 그들에게 꿈일 뿐이다. 그들의 자식들 중 다수는 꿈만 꾸다 말 것이고, 운좋은 소수는 많은 특목고 중 한 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일류딱지는 '서울대'딱지를 얻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싸움은 더 치열해진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자살하고, 다수는 정서불안에 시달린다. (실제로 우리나라 다수의 학생들이 정서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들이 알지 못할 뿐. 아니면 알면서 모른척하거나.)

  나이를 먹을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싸움은 치열해진다. 싸움이 치열해짐에 따라 금액도 상승한다. 일부는 열의에 넘치지만 쩐이 없어 포기해야 하고, 일부는 쩐이 없음에도 과도하게 베팅하다 파산하고 만다. 처음에 10만원씩 들어가던 돈이 어느새 200만원이 되어있고, 1000만원을 퍼붓는 자신을 발견한다. 미친 짓이다. 가난한 자는 미친 짓에 동참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깨달았어야했다. 내가 뛰어들 싸움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싸움에 끼어들수밖에 없는 건 다른 자식들 못지 않게 내 자식에게도 좋은 교육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남은 것은 은행잔고와 눈물과 패배감 뿐. 부담없이 쩐을 투입한 승자는 서울대 간판을 획득하며 지배계층으로 올라서고, 부담 팍팍 가지며 쩐을 투입하다 만 패자는 지방사립대 간판을 손에 쥐고 앞으로 살 60년의 인생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을 부정하지 말자. 이게 현실이다.

  하재근은 이 책의 상당 분량을 교육 이야기보다는 자유주의와 시장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다. 처음엔 서론격인 이야기려니 하고 읽었는데 이건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것이다. 언제 교육 이야기가 나오려나 하고 읽는데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러나 처음에 나는 의아해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의 교육 문제는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와 동떨어질수 없고, 시장과 자유주의를 논하지 않고는 교육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은 시장과 자유주의의 일부 영역에 불과하므로.

  이명박이 광우병 쇠고기를 거부하는 국민들을 향해 그런 말을 날렸다. "먹기 싫으면 사먹지마." 이 말에 국민은 분노했으나 저 한마디는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고자 하는 사회를 한 눈에 보여주었다. 자유주의. 시장주의. 사 먹을 놈은 사먹고, 사먹기 싫은 놈은 사먹지마라.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과 함께 가자고 한 방법이다. 선택지를 마음껏 열어놓을테니 선택은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그러니까 교육 역시도 이렇게 많은 선택지를 줄테니 가고픈대로 알아서 골라가라는. 썩을. 그것은 '자유로운 거래'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아름답게(?) 이루어진다. 선택지는 널렸다. 근데 선택할 수가 없으니 문제지. 선택지를 많이 주면 뭐하냐. 서민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인데. 광우병 걸린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지방대,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삼류 인생.

  많은 국민들이 최근 3개월 동안 민주주의의 실종을 말했다. 5공을 넘어 박정희 정권으로까지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실종은 어젯밤 강제연행과 폭력사태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할 때, 자신의 사적 이익을 버리고 공적 이익을 추구할 때에야 인간 정신은 존엄성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겐 이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존엄하다고 치고, 악독해질 가능성보단 존엄해질 가능성을 끊임없이 조금씩이라도 높여가는 것이 인간사회의 발달입니다. 오직 이런 사회에서만 민주주의가 가능해집니다." 그래 그런때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다. 고로 민주주의가 실종되었다고 말하는 건 헛소리가 아니다.

  국가는 국민들이 아무런 걱정없이 잘 살 수 있도록, 그 누구로부터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불평등하게 살지 않도록, 개인의 자유를 억압받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가 국민에게 해주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국민들 대다수는 매일 같이 애새끼 대학보낼 때까지 들어가는 - 대학 등록금은 차치하고라도 - 비용을 계산하며 한숨쉬고 있다. 이천원짜리 떡볶이 팔아가면서, 새벽까지 택시 운전해가면서, 부잣집 파출부 다니면서, 새벽녁에 일어나 우유배달하면서, 노래방에서 엉덩이 만져지며 애새끼 학원비를 벌고 있다. 왜. 돈이 많이 드니까. 이렇게라도 해야 남들 뒤꽁무니라고 따라가니까. 그게 현실이다. 그게 사실이다.

  나는 적어도 '다양화'만큼은 동의했었다. 다양한 학교를 만들어 학교의 선택지를 늘리는 것에만큼은 적극 동의했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아이들이 자기 적성대로 학교를 찾아가야 한다고. 그러나 헛된 믿음이었다. 다양한 학교가 만들어져도 아이들은 자기 적성을 따라가지 않는다. 아니 따라가지 '못'한다. 그건 지난 3년간 공교육에 몸담으며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진로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고 깨달은 바다. 내가 학생으로서 다닌 10여년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선생으로서 다닌 지난 3년간의 현실 이야기다. 선생짓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들은 자기 적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자기 적성을 고려해서 학교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성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택은 상위 1%에게나 가능하다. 그러니 다양화는 헛소리다.  

  하재근은 대부분의 사회 문제가 학벌을 없앰으로써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대학평준화. 그것이 해결방안이다. 정진상이 이미 말한바 있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그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소한의 방법이고, 사립대학들은 그 다음 일이다. 국립대가 평준화되면 사립대는 알아서 따라올 수밖에 없다. 서울대와 제주대, 전주대, 전남대, 경북대, 강원대 등이 공동으로 학생을 뽑고, 학생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오가게 한다. 이건 하재근의 주장이 아니라 정진상의 주장이다. 하재근의 책엔 큰 그림은 있으나 작은 그림이 없다. 그게 이 책에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이미 나온 해결방안에 그가 동의하고 이 책을 썼다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결국 우리가 주장해야 할 바는 학벌을 없애달라는 것이다. 과거처럼 박정희식으로 위에서부터 명령해 모든 체제가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정부가 교육을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쥐어싸고 학벌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만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지고 깔짝댈게 아니라 대학을 손봐야 한다. 대학을 평준화해 아해들이 단지 학점을 어떻게 하면 잘 받을 수 있을까 따위를 고민하지 않고 제대로 학문에 관심갖고 자유롭게 - 자유롭다는 말은 이때 쓰는 것이다 -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졸업도 좀 까다롭게 하고 말이지. 토익 점수 몇 점, 컴퓨터 자격증 뭐 따야만 졸업시킨다는 짓은 좀 하지 말고.

  하재근은 공화국으로 나아가자 한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봉건시대로 가는 것이라면서. "봉건시대야말로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자유를 누렸던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힘에 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강자는 귀족의 삶을, 약자는 노예의 삶을. 그들 사이에 보편규제는 없었습니다. 그런 규제를 강제할 권력주체도 없었습니다. 완벽하게 분권화된 사회였지요. 각 분권화된 단위마다 강력한 리더십 주체(영주)가 있는 상태, 국가 전체로는 분권화 구조이지만 각 단위별로는 독재체제인 상태. 딱 자유화 개혁히 지금 추진하고 있는 자유시장의 구조입니다.공화국은 이런 질서를 거부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자유를 주면 결국 지배자까지 포함해 모두를 노예로 만들테니까요. 왜냐하면 본래적 의미의 공화국이란 예속당하지 않을 자유뿐만 아니라, 남을 예속시키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견 자유롭게 보이는 지배자들마저 진정한 공화국의 시각에선 모두 노예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막을 수 있다. 연대해야 한다. 연대해 우리의 '머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머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웃기지만 머슴이 주인을 패기도 하는 현실인데.) 주인이 머슴의 노예가 되는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려면. 주인의 노예화를 막으려면. 학벌을 없애자. 학벌을 얻기 위해 구덩이 속에서 서로 나가겠다고 싸우며 서로를 할퀴지말고, 서로가 밀어주고 당겨주며 따뜻한 햇빛을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길을 택하자. 시장의 자유가 아닌 진짜 자유의 길을 택하자. "나 하나만의 자유뿐만 아니라 모두의 자유를 염두에 두는 것은, 나의 정신이 나라는 육체적 유한성, 개체성으로부터 해방되어 모두에게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비로소 인간은 자유롭게 됩니다. 부자들이 제 자식만 귀족 만들겠다고 학교 선택권 요구하고, 입시 자율화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정신이 유한성, 개체성, 탐욕이란 감옥에 아직 갇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그들은 노예입니다."

  "그대는 자유로운가.그렇다면 그대는 행복한 것이다.그대는 행복한가.그렇다해도 나는 그대가 자유로운지 아닌지 모르겠다."(김용석) 그대는 자유롭지 않으면서 그대만 행복한 길을 택하겠는가, 그대와 다른 이가 함께 행복하며 둘 다 자유로운 길을 택하겠는가. 전자라면 난 더이상 그대에게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후자라면 우리 함께 생각해보자. 우리 함께 자유인의 길을 걷자.  

p.s. 전체적으로 신문짜깁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무턱대고 사면 실망하실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직접 서점에서 열어본 후에 구입하길 권한다. 학벌사회 문제에 깊숙히 들어가기 보다는 신자유주의라는 큰 틀에서 그것을 설명하고 있어, 구체적이지도 깊이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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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3-1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을거 같은데요...강준만의 <서울대의 나라>와 비스무리 할려나요??

마늘빵 2010-03-15 09:40   좋아요 0 | URL
섣불리 구입하시면 실망하실 수도 있는 책입니다. ^^ 저자의 글쓰기 방식에 좀 문제가 있어요. 그렇다고 드러내고자 하는 메세지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닙니다. 너무 본론을 이야기하기 앞서 한참을 에둘러 가는 경향이 있고, 두서없는 말과 반복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