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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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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지금은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여자 선배 하나가 방학에 인도를 다녀왔다고 했다. 동기 하나도 인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했다. 그 맘때쯤 나이면 한번씩 해외여행을 꿈꿔보는 시절, 나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있으면서, 한번도 실천에 옮겨보지 않았다. 여행을 위해 특별히 알바를 하지도 않았고, 돈이 야금야금 생기는 족족 음반과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데 썼다. 만약 내가 여행을 간다면 인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철학의 나라 독일과 그리스, 예술의 나라 프랑스, 음악의 나라 영국, 그리고 인도와 북유럽 국가 중 한 곳에 가보고 싶었다.  

  인도에 다녀온 선배가 그 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절대로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호의를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그네들은 사유재산의 개념이 희박해서인지 일단 제 손에 들어간 물건은 자기 것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그래서 살짝 무섭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가방을 잃어버리면 국제 노숙자가 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어이쿠.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삶의 여유를 느꼈고, 참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 때 직접 들은 이야기 외에 내가 인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가고픈 여행지 중 하나로 인도를 손꼽은 것은, 인도가 또한 철학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선배가 느꼈던 그들의 삶의 여유란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도 철학은 동국대 말고는 정규 교과로 개설하지 않는 것 같다. 정규 교과도 아니다보니 접할 기회가 없었고, 한번쯤 접해보고 싶다 막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늘 주변부에서만 맴돌았던 탓에, 아직까지 인도 철학은 모른다. 인도 철학이 정리되어 나온 단행본 책은 있기는 하다. <인도철학>(민족사)나 <인도 철학 산책>(정우 서적), <인도 철학 입문>(동문선), <인도 철학사>(이문출판), <인도 철학사>(민음사), <인도 철학사>(한길사)와 같은.  

  <맛살라 인디아>는 현직 외교관이 직접 인도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쓴 현장 보고서다. '지금 인도'를 보여주는 가장 현장감있는 책이라고 할까. ('가장'이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관련 서적을 널리 읽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에도 '가장'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그만큼 오늘의 인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은 인도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인도의 고유의 전통 문화와 그들의 삶의 가치관을 빠뜨리지 않으면서 깊이를 더해주고, 더불어 인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인도를 가로지르며 보여주기도 한다. 단순히 인도의 역사나 시대적 배경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책이 아닌, 굳이 분류하자면 여행서나 여행 안내서, 혹은 에세이쯤이 되겠다.  

  여기 '맛살라'라는 말은 인도의 향신료에서 나온 말로, "단순한 향신료의 의미를 넘어 인도 문화를 대표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오늘날의 인도를 지칭하는 용어라고나 할까. 전통 인도 음악과 서구의 팝이 어우러지고, 끊인 우유에 짜이 잎을 우려내 설탕과 생강즙을 적당히 가미한 짜이도 있다고 한다. 그들이 먹는 음식이나 즐기는 음악, 또 건축 공학, 정치 등에 이와 같은 인도 특유의 '맛살라' 문화가 있다는 말이다. 책은 크게 1부 인도를 움직이는 힘, 2부 인도는 지금, 3부 인도 이모저모, 4부 인도에서 한국을 만나다, 로 나누어져 있다.

  '인도를 움직이는 힘'에서는 자동차 시장에서의 인도와 문화 사업, IT와 BT, 우주 산업 등을 이야기 하면서, 왜 인도가 이 분야들에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또 더불어 한국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할 영어 교육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2부에서는 인도의 카스트 계급과, 그들의 연애와 결혼관, 일본과 인도의 외교 관계를 이야기하고, 3부에서는 인도의 영화와 종교, 음식 등에 대해서, 4부에서는 인도에서 자리잡은 한국 기업과 한국 전쟁, 한국 문화를 이야기한다. 각각의 작은 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나 모습이 있어 글 한편, 한편이 흥미롭게 읽힌다.  

  인상적인 부분은, 인도 안에서도 힌두계와 무슬림계가 대립하며 힌두계의 무슬림에 대한 잔인한 학살극이 장기간 지속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경찰이 모른 척하거나 심지어는 폭도에게 넘겨주었다는 부분이다. 마치 지난 촛불 정국 때 우리네 경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단지 죽거나 강간 당한 자가 없었을 뿐. 죽지는 않아도 멀쩡한 대낮에 회칼에 맞아 피 흘렸던 사람은 있었다. 그 잔인한 현장에 경찰들이 있었다고. 그네들은 인종으로, 우리는 당파성 혹은 명령으로 그 같은 일을 겪었다.  

  교육 측면에서는 "2006년에는 인도 정부가 23.5%로 되어 있던 하위 카스트의 대학입학 특례 비율을 49.5%로 확대하려는 과정에서 큰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상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하위 카스트들에게 그네들이 인도에서 차지하는 비율만큼 대학 입학 비율을 할당해주려고 한 것인데, 상위 카스트들이 크게 반발했던 것이다. 그때 극렬히 반대한 이들은 인도 유명 대학의 의과와 공과 대학생들이었다고. 교육의 정도에 따라 향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현격히 다르고, 빈부의 격차가 큰 만큼, 그들은 기득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내놓는 데 인색하다. 반면 없는 자들은 내놓을 것이 없고 그들이 의당 받아야 할 것을 받으려 한다. 한편 이 부분에서 부러운 것은 정부가 나서서 그 비율을 할당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상황을 잘은 모르겠다만 개념이 제대로 박힌 정부다. 소위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정부에 몸담고 있을텐데, 그들이 나서서 하위 카스트들을 위해 비율 조정을 하려 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한국의 공직자들에게서는 절대로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정부에 서민이 없다보니 서민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는 이들도 없다. 그들은 그들이 보는 것만이 현실이라고 믿으니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라톤 경주에서 상위 카스트나 좋은 가문 출신의 자녀들이 이미 반환점에 서 있다고 한다면, 소외계층 자녀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불공정 게임과 같은 이치이다. 인도 교육 불공정 게임의 근저에는 대부분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소수 상류계급이 독점하고, 이를 대를 이어 세습하려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책이나 치유책이 없는 상황이다." 만약 롤즈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역시 저자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출발이 다른 불공정 게임에서는, 공정한 게임을 위해 약자들의 출발선을 앞당겨주는 등의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 무지의 베일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본다면 그들에게 그 정도의 '배려'를 해주는 것을 '혜택'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또 그 시작점이 다르다고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급제 사회인 인도가 한국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계급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계급이 눈으로 보이게끔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에 쓸데 없는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인식이 되어야 그 다음에 그럼 우리 약자들을 위해 출발선에서 배려를 좀 해주자, 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텐데,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아니 왜 출발선이 다르냐고 묻는다. 교육의 기회를 똑같이 주었고, 똑같이 공부하는 데 왜 출발선이 문제냐고. 이러니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차라리 인도처럼 계급제였다면 인식 논란은 불필요할텐데 말이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인도는 물론 한국에서도 교육의 균등한 기회 보장을 위해 국가의 책임, 사회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교육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는 국가와 사회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과 대학 발전을 이유로 고등학교까지 서열을 매겨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일부 한국 대학들의 태도는 인도의 비인간적인 교육 양극화를 연상시켜 씁쓸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있는 계급도 모자라 그 계급차를 더 벌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정부는 상위 5%가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를 바라는 듯 하다. 거기에 그 하위 95%가 적극적으로 동조해주고 있으니 어찌 속 터지지 않으랴.

  다른 나라의 모습을 빌어 우리네 모습을 관찰하는 건 필요하다. 그 나라가 비록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살거나, 정치적으로 후진 국가라 하더라도 말이다.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이 사이버 모욕죄 이야기를 하면서 짐바브웨 사례를 꺼내려 하자 전원책 변호사가 아니 왜 다른 나라의 예를 비교하려 드느냐고 '호통'을 쳤는데, 납득이 안가더라. 왜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면 안되는건가. 진중권은 한국의 오늘이 짐바브웨의 과거보다 못하다는 걸 말하려는 데, 그게 짐바브웨 국민들을 모욕하는 거란다. 얼마나 기분 나쁘겠냐고. 진중권은 짐바브웨를 칭찬하려 했는데. 비교 국가가 어떤 대상이건 그게 꼭 소위 말하는 OECD 경제 선진국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교육을 인도와 비교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앞에 인용했듯 인도는 적어도 정부가 나서서 그 격차를 줄이려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이런 모습을 제발 좀 보고 싶다.

  

* 숙제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오늘날의 인도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관련 도서를 안 읽어봐서 패스.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인도 여행을 계획중인 이들, 오늘날의 인도에 대해 알고픈 이들.
마음에 남는 '책 속에서' 한 구절 :  위 리뷰에 인용했음. (별도로 올린 밑줄긋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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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1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민족분쟁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인도 하면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유혈참극이 떠오릅니다.특히 펀잡 지방의 시크교도들이 힌두교도와 사이가 안 좋지요.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도 시크교도인 자기 경호원에게 암살당했고 그 소식을 듣고 격분한 힌두교도들이 무고한 시크교도들까지 살해했구요.
그리고 우리는 걸핏하면 서구,미국,일본의 사례를 거론하는데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제3세계 나라들의 사례도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마늘빵 2009-01-18 23:02   좋아요 0 | URL
아 인도도 생각보다 민족 분쟁이 심각한 것 같더라고요. 이 책에서도 인도의 정치 상황에 관해서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는데, 그쵸 인디라 간디 얘기도 나왔어요. 간디 얘기는 전에 한겨레21 구독할 때 접했는데... 무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