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유일하게 눈 뜬 자는 눈 먼 자들의 왕이 되거나 눈 먼자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눈 뜬 여자는 그들이 갇힌 수용소에서 이같은 고민을 한다. 지금 나만이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나는 그들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하여, 그들의 더러운 몸을 씻기고, 빨래하고, 때마다 먹을 것을 받아다 갖다 바치고, 그들이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등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할 때 그녀는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에게 꼭 말해야 할 순간이 올 때까지 남편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앞이 보여요, 라고. 꼭 말해야 할 순간이란, 그녀 자신도 생각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시 눈이 먼 적이 있었다. 몇년 전 라섹 수술을 했을 때인데, 그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건지 몰랐다. (지금은 수술 방법이 개선되어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는 이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나의 고통은 눈이 멀었다, 는 것으로부터뿐 아니라, 수술 이후에 겪어야 할 고통까지 첨가된 것인지만, 눈을 뜰 수 없다는 것, 앞을 볼 수 없다는 건, 그 자체로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올 때까지, 집에 와서 화장실에 가거나 밥을 먹거나, 듣고픈 음악을 들으려하거나, 이불을 펴거나 하는 등 이전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사소한 행위들이 내게는 하나의 과제였다. 잠시 눈이 멀어 - 눈을 뜬 이후에는 세상을 더 선명하게 밝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이 멀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아보이지만 - 책도 읽을 수 없었고, 티비도 볼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내 앞에 차려진 한 끼 식사를 끝내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어떤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이 먼다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음과 동시에 세상의 추악한 모습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지 않음이 경험하지 않음과 같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설 속에서 각자 운전을 하다가, 남의 차를 훔치다가, 눈에 문제가 있는 이들을 돌보다가, 약을 팔다가,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팔다가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이들은, 비록 그들이 수용소에 갇혀있지 않다 하더라도, 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 국가와 사회의 모든 기능이 일시에 멈춰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경험하게 됐을 것이다.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 모두.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단지 어느 한 개인이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서히 눈이 멀고, 그들이 하던 모든 일들이 정지했다는데서 더욱 심각해진다.

  수용소는 하나의 사회와 같다. 먼저 온 자들과 나중에 온 자들, 주어진 좁은 공간과 이 안에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드는 많은 사람들, 맛은 차치하고라도 부족한 식량과 배고픔에 굶주리는 많은 사람들, 무기를 지닌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 원래 장님이었던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 기타 등등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을 여러 기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때론 여러 기준이 한데 묶여 상황이 발생한다. 수용소 안에서나 밖에서나, 눈이 멀었을 때나 그러지 않을 때나, 무기를 지닌 자는 언제나 왕이 되고, 그가 무기를 잃는 순간, 그는 더이상 왕이 될 수 없다. 눈이 멀었다 하여 성욕이 감퇴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에게 닦친 혼란을 다스리고 일상적인 평온함을 되찾은 뒤에는, 우리들이 느끼는 모든 기본적인 욕구들이 뒤따라 온다는 사실, 힘을 가진 자들은 힘이 없는 자들의 재산과 몸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 그건 변하지 않다.

  현실에서 눈 먼 자들은 약자로서 대우받아야 하지만,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 먼 자들은 현실에서 눈을 뜬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정상으로, 눈을 뜬 자가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눈 뜬 자가 비정상이라고 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인이 되거나 노예가 되길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쪽을 택할 수도 있다. "사모님은 눈이 멀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사모님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우리를 조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나는 명령을 내리지 않아요, 그저 최선을 다해 조직하려 할 뿐이죠,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눈일 뿐이에요, 자연스러운 지도자지, 장님의 나라에서는 눈을 가진 사람이 왕이니까, 검은안대를 한 노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눈이 보일 때까지는 내 안내를 받도록 하세요."  

  눈 먼 자들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모욕의 단계를 내려갔다.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타락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개인의 생존일 뿐이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그들은 지금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겪을 수 있는 온갖 수치와 모욕을 경험했고, 그들이 누리던 사회적 지위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스스로 짓밟았다. 더이상 인간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오로지 눈 뜬 한 사람만이 그 모든 것을 눈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아파했다. 눈을 뜬 것은 더 이상 그에겐 '특별한 혜택'이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 더해진 고통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눈이 멀었지, 당신들의 먼 눈이 내 눈도 멀게 한 거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나도 더 잘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소설에서 눈 먼 자들이 보이는 모든 행동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바를 상징한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라는 의사의 말은, 진리다. 사라마구는 두 눈 멀쩡히 뜨고 있으면서 보이는 것을 보지 않으려 하는 세상 사람들을, 현대인들을 풍자하고 있다. 진짜 눈이 먼 사람들은 우리들이다. 소설이니까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단 한 명의 눈 뜬 이는 다른 이들을 지배하지 않고 그들을 돕는다. 현실에서 대다수의 눈 뜬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지금도, 곳곳에서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고, 목적을 알 수 없는 전쟁으로 고통받는다.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다. 이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내 고통은 고통이지만, 타인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오로지 내가 경험하는 것만이 내게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다. 커다란 국가적, 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아주 가까운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받고 고통받으며 말 못하는 이들이 있다. 크건 작건 이들은 우리 주위에 분명히 있으며, 그들을 보지 않는 한, 우리는 두 눈을 뜨고 있지만 눈이 멀었다. 한편, 눈이 뜬 자들은 눈이 먼 자들보다 더 고통스럽다. 우리가 봐야 할 것들이 단지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보이는대로 믿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 사물을 제대로 보려면 우리는 알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우리가 대체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물의 질서가 뒤집혀 있어요, 늘 죽음을 나타내던 상징이 삶의 상징이 되어버렸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다. "자 이제 철학과 마법은 그만하면 됐으니, 손을 잡고 계속 살아가도록 해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법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ir 2009-01-1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책은 반복해서 자주 보는 편이지만,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다를 게 없어서 너무 무섭고 우울하거든요...

마늘빵 2009-01-18 01:4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은 단순히 소설로 재미삼아 읽어도 재밌지만, 작가가 드러내는 메시지가 참으로 마음에 와닿고, 그걸 눈 앞에서 경험하는 듯이 보여주는 게 더 아프게 하더군요. 오웰의 1984년, 카프카의 심판, 카뮈의 페스트와 비교를 하는데, 오웰 빼고는 읽어보지 못했어요. 나머지 심판과 페스트도 읽어보려고 보관함에 넣어놨답니다. ^^ 이어서 눈뜬 자들의 도시도 읽고 있어요.

드팀전 2009-01-18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보일 적에 나는 오히려 헛디뎌 넘어지곤 했다....세익스피어 <리어왕>
'두 눈을 온전히 뜨고 살아가기 위하여'에 비하면 재미없지요 ^^ 두 눈을 뜨려면 눈을 감고 오히려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될 지도 모르지요. 말장난같지요..^^ 역설은 진리를 만드는 한 방법중에 하나일겝니다.doxa와는 다른 어떤 진리의 조각이 있어요.

제가 요즘 정신병 증상이 아닌가 심하게 걱정되고 있답니다.자가진단하면 분명히 초기 증상은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려니 하시구,,,푹 쉬어야되는데...

마늘빵 2009-01-18 09:21   좋아요 0 | URL
새벽에 깨어계셨군요. 아직 주무시지 않으신건지, 아니면 일찌감치 깨신건지. ^^ 저는 내내 자다가 밤에 깨서 새벽에 잤습니다. 이런 시간도 아주 오랫만이었죠. 얼마전 세익스피어 <햄릿>을 읽으셨더라고요. 햄릿의 그 대목은 제가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쵸, 때로 역설은 진리를 드러나게 해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인 건 맞습니다.

요새 직장 안팎에서 많이 힘드실 줄 압니다. 결국 KBS에서 몇몇을 징계하기에 이르렀는데, 부디 몸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