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의 서평을 써주세요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 - 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대필 작가의 독백
배홍진 지음 / 멘토프레스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을 위안부 할머니들. 그들은 모두 꾸미지 않아도 이쁜 소녀에서 주름을 감출 수 없는 할머니가 되었고, 일부는 세상을 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강덕경 할머니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분이다. 그러나, 그녀의 육신은 떠났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마음은 아직도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 앞을 지키고 있다. 마음 편히 가셨으면 좋으련만 일본의 제대로된 사과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한스럽고, 외로운 세월을 보내다 가셨다.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그리고 그 분들의 아픔에 공감해주지는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도 많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몰랐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와 그 분들의 이야기는 뉴스나 기사를 통해서 들어왔지만, 내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신문이나 티비 뉴스 등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단편적인 사실, 딱 그만큼만 알고 있었다. 그 분들 개개인이 수십년 걸어온 삶길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다. 어쩌면 티비 다큐멘터리나 인생극장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공개됐을지도 모르겠다. 연이 없었던지,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솔직할게다, 그 분들의 삶을 들여다 볼 기회는 없었다.

  몇 해 전 일본계 미국인(?) 하원 의원의 노력으로 위안부 사건이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미국의 행정부가 압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보도는 일본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주었을 것이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운용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 갇힌 여자들은 한국과 동남아 등의 여러 국가에서 강제로 차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후에도 일본은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故 강덕경 할머니. 할머니가 아닌 소녀다. 이제 막 세상을 배울 나이에, 일본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배를 탔고, 그곳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탈출을 시도, 알 수 없는 산길에서 한 일본 헌병대 군인에게 잡혀가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우리가 '위안소'라고 부르는 그곳으로 끌려갔다. 그녀는 매일밤 문앞에 길게 줄을 선 일본군인들을 제 몸으로 열 명 이상씩 받아내야 했다. 수치심이나 모멸감 등의 감정은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몸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몸이 느끼는 고통은 마음이 느끼는 고통에 앞섰다. 당장 한 명이라도 덜 왔으면 하고 바랐다.  

  이 책은 강덕경 할머니 개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위안부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정확히는 강덕경 할머니를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랐는지, 글을 읽을 줄 모르고, 글을 쓸 줄 모르는, 안다해도 더 이상 말할 수도, 쓸 수도 없는 할머니를 대신해, 한 대필 작가의 손을 빌려, 말한다. 대필 작가의 손으로 쓰여진 이 글을 통해 할머니의 삶은 당신의 바람대로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얼마 전,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 때 뉴라이트 진영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자발적 매춘을 한 창녀라는 망언을 한 적이 있다. 어디 이런 발언이 한두번 있었던 것도 아니라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소위 이름있는 학자라는 사람들이 이따위 막말이나 하고 다니니 할머니들 마음이 어땠을까. 국회의원들과 학자, 정부가 힘을 합쳐 일본에게 사죄를 요청해도 일본이 들어줄까 말까한 마당에 내부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일본이 어찌 한국 정부를, 위안부 할머니들을 우습게 보지 않을 수 있으랴. 소녀에서 할머니가 된 분들이 점점 나이를 먹고 늙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분들의 작은 목소리는 너무나 외롭다. 현 정부에서는 더더욱.  

  에세이도 소설도 아닌 이 책의 형식은 처음엔 불편했다. 강덕경 할머니가 된 1인칭 시점에서 글을 써내려가다가도 어느 순간 작가 자신으로 돌아와 할머니가 경험한 것들에 대해 작가의 말을 늘어놓는다. 각각의 꼭지들이 각각의 다른 서술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읽어야 그 불편함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을 듯 하다. 또, 할머니가 경험한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작가의 감정과 마음이 반영된 어떤 수식어들로 인해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할머니가 경험한 것들을 작가의 시각에서 한번 걸러내 전달해주는 듯 했달까.

  작가 배홍진의 첫 책이다. 이 책의 맨 뒤에는 무경계 문화 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의 또다른 구성원인 김경주 시인의 글이 실려있다. 배홍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글이다. 주인공은 강덕경 할머니이지만, '유령 대필 작가'가 아닌 '실명 대필 작가'로 '배홍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첫 책이라는 점에서, 배홍진 또한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껏 누군가를 대신해 글을 써왔고, 다른 대필 작가들처럼 제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대필 작가가 끊임없이 일거리를 받아내기 위해선 '대필'했다는 사실을 드러내선 안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대필'했다. 그러나 이전과 차이점은 자신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대필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는 때로 유령 작가로 제 이름을 숨긴채 누군가를 대신해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으로 그는 작가로서 세상에 신고를 마친 셈이며, 앞으로 나올 그의 온전한 작품 <내 슬픈 상대성 이론 저편의 방콕>을 통해 '실명 대필 작가' 딱지 또한 뗄 것이다. 10년간 글을 써왔다고 한다. 글만을 위해서 삶을 살아온 사람 같다. 글이 안써지면 훌쩍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그의 예정작을 읽겠다고 약속할 순 없지만, 작가로서의 첫 작품 괜찮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 숙제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한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메세지를 전달한 점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봉선화가 필 무렵>(윤정모) -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림과 함께 쓴 역사 동화
<위안부 리포트1>(정경아) - 위안부 할머니들의 체험을 비롯 피해 사실을 종합적으로 전달한다.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이명박 이하 행정부, 한나라당 모두, 뉴라이트, 경찰, 검찰, 조중동 기자들+조갑제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연민이란 타인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슬픔에 대한 우리들의 상상력이다. 동정이 계급적 의식을 전제한, 타인의 불행에 대한 제도적이고 고양된 슬픔의 베풂이라면 연민은 너와 내가 같은 인간이란 사실에 대한 슬픔이다. 그러므로 동정엔 실천이 따르지만 연민엔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민은 사람을 주저앉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혐오를 낳기도 한다. 까닭에 연민은 너와 내가 같은 슬픔을 지니고 있다는 비극적 이야기에 끊임없이 경도되고 싶어하는 자아의 상상력이다. 나는 지금 강덕경 할머니를 연민하고 있다."(p.2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